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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근대 문화공간, 극장 1980~90년대 창동(마산)의 밤은 화려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청소년 시절 창동은 학교로부터의 해방구였다. 창동 뒷골목에 위치한 콜라텍과 피카디리극장 자리의 나이트클럽은 젊은이들을 무아지경에 빠트렸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저 폐허로 남아 있다. 1990년대 마산에는 많은 영화관이 있었지만, 연흥극장에서 흥행작을 많이 상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 보여 준 깐느극장의 모습에서 과거의 추억이 많이 떠올릴 수 있었다.조선 최초의 극장, 인천 협률사 1895년 정치국이 인천에 협률사(協律社)을 설립했는데, 이는 조선인이 세운 조선 최초의 민간극장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장·영화관이 결합한 형태로, 주로 인형극·창극·신파극·남사당패·연극이 공연되었다. 협률(協律, 서로 협력하.. -
[금융] 끊임없이 빈틈을 노리는, 헤지펀드 1973년 조지 소로스와 짐 로저스가 퀀텀펀드(Quantum Fund)를 설립했다. 초창기에는 정치적 이슈(닉슨 사임)와 글로벌 위기(유가파동)으로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이후 글로벌 전략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게 된다. 대표적인 전략은 국가별 환율·금리과 글로벌 자금흐름과 관련된 페그 붕괴와 통화투기였다. 페그 붕괴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글로벌자금 유입 : 저금리(선진국) → 고금리(신흥국)환율 고평가글로벌자금 유출 : 금리인상, 환위험 회피외환보유고 고갈페그 포기 순으로 전개 1980년까지 퀀텀펀드의 8년 수익률이 4,200%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로저스의 딜소싱 능력과 소로스의 거시전략과 모멘텀 철학이 결합한 결과라고들 한다. 하지만 소로스는 로저스를 직원으로 여겼던 것으로 보이며, .. -
[조선] 정치의 DNA, 비타협 현대정치에서도 이념 불문하고, 집권세력이 정적을 인정(흡수)하지 않은 채 독선에 치우치면 필히 부패(더 나아가 분열)하게 마련이다. 현대사의 정치판을 보고 있으면, 조선시대 관료들의 고집스런 행태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현대 정치인들이 조선정치를 깊이 공부했을 가능성이 낮다고 전제하면, 그냥 민족성이 그런가 싶다. 이전 글 공천권을 두고 시작된, 붕당정치>에서는 선조대에 이조전랑의 자리를 두고 사림파 내 선후배 간 갈등으로 동서분당이 되었다고 언급했었다. 처음이 어렵지, 분당은 계속되었다. 동서분당에 이은, 남북분당 선조대에 세력을 키우면서 위기를 극복한 기득권(동인)은 정적(서인)에 대한 처벌논조를 두고 다시 분열되는데, 이 때 동인은 다음과 같이 남북분당되었다. 강경파 북인(조식.. -
[골프] 볼의 왼면에 집중, 다운블로우 드라이버 슬라이스의 원인은 임팩트 구간에서 페이스가 열린 채로 아웃인 궤도를 가지기 때문이다. 쉬운 처방은 페이스를 닫고 치는 것인데, 이 상태에서는 아웃인 궤도를 그리기 쉽지 않다. 슬라이스의 2가지 문제점이 모두 치유될 것이며, 릴리즈도 수월해지게 된다. 10도 정도 닫은 채로 그립을 잡고, 오른쪽으로 틸트를 하면 페이스면이 스퀘어로 보이게 된다. 전환동작·다운스윙에서 왼어깨의 위치는 중요한데, 결론적으로 왼어깨는 뒤로·위로 가면 안된다. 왼어깨는 최대한 앞으로·아래로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이 하는 드릴이 오른팔이 왼팔의 아래로 지나가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왼팔이 오른팔을 덮고 지나가면, 어깨가 크게 돌게(풀리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공을 맞출려고 하다보니, 왼어깨가 위로.. -
[조선] 조작을 통한 신분상승, 송사련 2015년 2월부터 방영된 KBS 드라마 징비록에서는 송익필(박지일 분)이 서인의 모사꾼으로 등장하는데,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己丑獄事, 정여립의 난) 이후 동인에 대한 복수를 주도한 인물로 평가된다. 모사(謀士)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제후를 위해 정책·전략을 제시했던 지식인을 의미했지만, 오늘날에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모사꾼은 교묘한 꾀로 일을 꾸미거나, 이간질하는 사람을 의미하다. 신분역전을 노렸던, 고변사건 1519년(중종 14) 중종의 주도로 남곤·심정이 일으킨 >기묘사화(己卯士禍)에서 수많은 사림들을 숙청되었는데, 당시 안당은 조광조를 두둔하다가 좌의정에서 파직당했다. 안당의 아들(안처겸·안처근)은 아버지의 일에 불만을 품고, 남곤·심정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152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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