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도시59 일본 혼란기에 등장했던, 영웅 1868년 일본 메이지유신의 주역은 원래 쇄국파였는데, 10년 만에 완벽한 변신을 꾀했다. 1853년 미국 흑선(黑船, 검은 증기선)의 등장은 일본인에게는 말 그대로 블랙스완이었다. 1854년 막부는 천황과의 상의없이 미국과 화친조약을 체결하였고, 이에 하급무사(사쓰마번·조슈번)들이 존왕양이(尊王攘夷, 천황을 옹립하고 오랑케를 물리침)를 내걸고 막부타도에 나섰다. 하지만 서양군대의 무력은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으며, 이에 1863년 사쓰마번·조슈번은 적극적으로 개항파로 변신했다. 국가개조의 시작, 유신 당시 토막파(討幕派, 칠 토)는 막부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인 반면, 좌막파(佐幕派, 도울 좌)는 막부를 돕는 세력이었다. 메이지천황을 앞세운 토막파는 좌막파를 누르고, 1867년 대정봉환(大政奉還, .. 2025. 4. 4. 탈인간적이면서 인간적인, 이이 1575년(선조 8) 이조정랑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심의겸(서인)·김효원(동인)이 충돌은 당쟁의 시작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중재했다고 알려진 이이는 서인의 종주로 역사에 남았다. 서인의 표면에 이이가 있었다면, 그 뿌리에는 송익필이 있었다. 삼현수간(三賢手簡, 보물 1415호)은 현재 삼성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서한집으로, 여기서 삼현(3명의 현자)은 송익필·성혼·이이를 말한다. 이들은 젊은 시절부터 주요 사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이며, 놀라운 점은 삼현과 그들을 후원하던 심의겸(명종비 동생)이 모두 파주에서 살았다는 사실이다. 인재가 머무는 마을, 파주 송익필(1534년생) : 교하현성혼(1535년생) : 눌노리심의겸(1535년생) : 광탄이이(1536년생) : 율곡리 이전 글 .. 2025. 2. 27. 조선인 엘리트의 산실, 고보 최근까지도 국내 최대 학연집단은 KS(경기고·서울대)였으며,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관료·정치권에서는 KS출신이 허다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인상 깊은 인물은 이회창·한덕수가 있는데, 1953년 경기고를 졸업한 이회창은 아버지·형제가 모두 경기고를 졸업했다고 한다. 실제 1970년 경기고 졸업생 80% 이상이 서울대학교에 진학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인데, 명문학교로의 명성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었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성제일고보)은 경기고의 전신으로, 일제강점기 내내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가장 많은 합격생을 배출한 학교가 경성제일보고였다. 1973년 고교평준화가 시행되기 전까지 경기고는 국내 최초·최고의 명성을 이어왔다. 조선인 중등교육기관, 고보 일제강점기 조선인 엘리트를 언급할 때, 고.. 2025. 2. 16. 이권이 많았던 계약직, 별감 오늘날 사용자·피고용자는 노동에 대한 대가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그 지급시기도 근로계약에 따라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물론 최근 MZ알바에 대한 폄하도 많은데, 능력·책임감·예의도 없으면서 권리만 찾는다는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노동의 가치가 지금처럼 높이 평가받는 시대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노동에 대한 대가가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급여를 화폐로 받지 못했던, 조선 우선 화폐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은 만큼, 대부분 토지수조권·현물로 지급받았다. 이 또한 일부 정규직만 지급받았으며, 상당수의 관리들은 대가없이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녹봉제는 백성으로부터 거둔 현물을 관등에 따라 관료에게 지급한 보수체계로, 녹봉(祿俸)은 주로 녹(쌀·보리.. 2025. 2. 12. 이전 1 2 3 4 ··· 1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