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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복잡계가 만들어 낸, 사피엔스

by Spacewizard 202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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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시간에서 볼 때, 현생인류의 출현은 민망할 정도로 가까운 시기에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지구상의 생명은 매우 다양하며, 이 다양성은 기후변화, 대멸종, 신종 출현, 진화라는 반복된 과정을 통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진화론은 생명의 다양성과 복잡성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이는 인간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갑자기 등장한 개체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인간은 영겁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단세포 유기체로부터 시작하여, 현재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가 더 나은 진화의 길을 선택하여 현생인류까지 왔을 것이다. 현생인류는 스스로를 '완전히 진화한 종'으로 여길 수는 있으나, 여러 연구에서는 현생인류도 진화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미래인류가 현생인류의 진화를 이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 대량정보에 의해 커져가는 뇌, 인스턴트에 적응해가는 소화시스템, 미세먼지에 적응해가는 호흡기 등. 여기서는 과거의 인류가 어떻게 진화하여 왔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원숭이에서 유사인류을 거친, 인간의 진화

 

유인원(apes)이 인류로 진화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며, 동물분류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인간을 분류한다.

 

목(order) : 영장류(Primate)
아목(suborder) : 앤스로포이(Anthropoid)
초과(superfamily) : 호모노이드(Hominoid)
과(family) : 호미니드(Hominid)
속(genus) : 호모(Homo)
종(species) : 사피엔스(Sapiens)

 

라틴어로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에서 파생된 용어가 많다. 호미노이드는 인간 또는 인간과 유사한 원숭이(영장류)을 총칭하는 단어로, 이는 호모(인간), 팬(침팬지), 고릴라, 퐁고(오랑우탄), 긴팔원숭이과라는 5개의 속으로 분화된다. 영장류와 구분되는 특징으로는 꼬리가 없다는 것이다. 호미니드(사람과)는 호미노이드 중에서 긴팔원숭이과를 제외한 4개의 속을 의미하며, 이 중 인간과 침팬지는 호미니니(Hominini, 사람족)이라고 한다. 쉽게 호미노이드와 호미니드 모두 유인원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호미닌(Hominin)현생인류는 물론 멸종한 원인(猿人)·고생인류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포괄적인 호모라고 할 수 있다. 현생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sapiens sapiens)이라는 호모 사피엔스의 하위종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은 약 700만년 전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면서, 간단히 아래와 같은 호미닌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약 700~600만년 전 : 사헬란트로푸스(sahelanthropus)
약 700~600만년 전 : 오로린 투게넨시스(orrorin tugenensis)
약 400~200만년 전 :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약 240~150만년 전 : 호모 하빌리스(habilis)
약 200~150만년 전 : 호모 에르가스터(ergaster)
약 200~10만년 전 : 호모 에렉투스(erectus)
약 70~20만년 전 :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eidelbergensis)
약 40~4만년 전 :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neanderthalensis)
약 20만년 전 ~ 현재 : 호모 사피엔스(sapiens)
약 4만년 전 ~ 현재 :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sapiens sapiens)

호미닌의 진화 출처 Britannica
호미닌의 진화 [출처:Britannica]

 

직립보행하기 전에는 나무 사이를 잘 타기 위해 팔을 다양한 방향으로 흔들 수 있는 유연한 볼-소켓(ball socket) 형태의 어깨관절이 필요했었다. 게다나 나무를 잘 잡기 위해서 손과 발이 발달했었다. 약 375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인류 루시는 직립보행에 적합한 다리와 엉덩이뼈 형태를 갖췄으며, 살짝 구부려진 발가락뼈는 나무타기에 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 아프리카 초원에서 생활하면서도 야간에는 야생동물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직립보행으로 인간의 손과 발은 변화되었다. 빠르게 달리기 위해 발바닥은 길고 좁아졌으며, 발로 나무를 탈 일이 없어지면서 발가락은 짧아졌다. 이동에 있어서 손의 역할이 없는 만큼, 손은 도구를 자유롭고 능숙하게 사용하게 되면서 손가락은 더 길어졌다.

 

호모의 특징으로는 뇌용량의 증가와 도구사용을 들 수 있다. 실제 호모라는 명칭은 도구를 사용하는 '능숙한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하빌리스부터 붙는다.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발견되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흔히 네안데르탈인으로 불리는데, 복잡한 도구를 사용하였고, 불을 다룰 줄 알았으며, 아마도 간단한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강한 체격을 바탕으로 추운 기후에 적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상당한 시간 동안 겹치는 기간이 있었고, 그 기간 동안 두 종 사이에는 문화적 교류와 유전자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실제 현생인류의 유전자 중의 일부는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조상들을 가진, 현재의 나

 

과연 나는 어떤 몇 명의 조상을 거쳐서 여기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가끔 한다. 언뜻 철학적이면서 종교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계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개체가 자라서 자식을 번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세대시간(generation times)이라고 한다면, 이는 시대에 따라 문화·사회·환경적인 요인들로 인해 변할 수 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의 발표에 따르면, 25만년 간의 평균 세대시간은 26.9년이었다. 부계(30.7년)의 세대식간이 모계(23.2년)보다 훨씬 길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긴 남성의 생식가능연령과 남성 위주 문화 등이 이유로 꼽힌다. 현생인류의 세대시간은 마지막 최대 빙하기(Last Glacial Maximum, LGM) 전인 3.8만년 전에 29.8년으로 고점을 찍은 후, 계속 감소하여 고대문명이 시작되는 6400년 전에 24.9년으로 저점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후 현재까지 세대시간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계산의 편의상 세대시간을 27년, 현생인류 출현시기를 20만년 전(플라이스토세), 영장류 출현시기를 6000만년 전(팔레오세)으로 가정하자. 현생인류가 출현한 이후 약 7400세대, 영장류가 출현한 이후 약 222만 세대를 무사히 거쳐서 '현재의 나'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이 수치는 매우 단순화시킨 결과이며, 수 많은 세대를 거쳐오는 와중에는 자연선택, 유전자 변이, 기후변화, 갈등과 전쟁 등의 요인들 복잡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싫든 좋든 나의 조상들이 저렇게까지 많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며, 더군다가 대부분의 시간이 열악한 생존환경이었다는 점에서 '나의 존재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앞서의 계산은 영장류로 진화하기 전까지의 확률은 배제하였다는 점에서 그 존재가치는 더 높다고 봐야겠다.

 

진화의 원동력, 기후변화

 

이전 글 <익숙하기에 몰랐었던 오래된, 지구>에서는 지구의 대멸종들을 가져온 주된 원인들 중의 하나로 기후변화가 빠지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했었다. 대멸종은 기존 생물의 다양성을 저해시키기도 했지만, 새로운 지배종의 등장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어류, 양서류, 파충류, 공룡, 포유류, 영장류, 고생인류,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지배종은 기후변화를 전후로 계속 바뀌어왔다. 기후변화는 호미노이드가 나무에서 내려와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분기·진화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약 700만년 전(마이오세 말기)에 이르자, 아프리카 대륙은 현저히 건조해지면서 열대우림(숲)이 줄어들고 사바나(초원) 식생이 늘어났다. 숲과 초원의 경계에 살던 영장류들은 점차 초원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축소된 숲에서의 치열한 먹이경쟁 내지 호기심과 모험심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나무에서의 생활과는 달리 초원에서는 직립으로 다니는게 유리했다. 직립보행은 에너지를 덜 소모하여 먹이를 찾아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으며, 높아진 시야로 인해 멀리 있는 먹이나 맹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초원을 거니는 호미노이드 중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잘 걷는 개체들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고, 이들의 후손이 사헬란트로푸스 내지 오로린 투게넨시스였을 것이다. 이 둘은 직립보행의 흔적을 가지고 있으며 '최초의 인류' 후보로 꼽히는 종들이다. 이후 최강 지배종인 호모종은 지난 240만년 동안 수 차례의 빙하기와 간빙기 등 기후변화와 이에 따른 자연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해왔다.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초기 호모종은 초원과 관목지대 등 개방된 환경에서만 살았지만, 이후 등장한 호모종들은 유럽과 아시아로 진출하면서 낯선 환경에 적응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사막과 냉대지역까지 거주지를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도구의 활용과 사회성 등이 있었다.

 

 

진화 과정에서 높아진 위험, 출산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뇌가 커지면서 두개골(머리)도 커졌는데, 이는 문제해결능력, 언어사용, 사회적 상호작용 등을 가능하게 하는 복잡한 인지기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머리가 커지는 것은 출산에 어려움을 가져왔다.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인간의 골반은 그에 걸맞는 형태로 변해왔는데, 이러한 골반형태로 인해 산도가 좁아졌고 이를 통과하기 위해 태아는 출산과정에서 머리를 돌려야 했다. 이를 회전출산(rotational birth)이라고 한다. 또한 인간의 뇌는 출생 후에도 계속해서 성장하게 되는데, 이는 머리가 작은 상태에서 산모의 골반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이다. 흔히 신생아는 출생 후 12~18개월까지 머리뼈 조각들이 열려있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는 생후에도 계속 커지는 뇌용량이 자리잡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현재에도 모든 생명체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진화의 시간은 천문학적인 시간이 지나야 확인이 가능한 만큼, 현재를 사는 우리는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현생인류는 진화의 복잡계가 만들어 낸 기적이고, 우리는 그 진화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면서 살고 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타이핑 중인 손가락을 보니,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는 머나먼 옛기억 속의 나무가지 잡던 손가락의 모습이 언뜻 스치는 듯하다. 또한 마냥 귀여운 아기를 보고 있으면, 동물원에서 어미 몸에 붙어 있는 아기 침팬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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