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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력과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 심해

by Spacewizard 2023.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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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일본에서 유학 중인 삼촌이 현지에서 유행하던 전자기기들을 한국으로 보내주곤 했었는데, 그 중 파나소닉(panasonic)의 비디오 카세트 리코더(Video Cassette Recorder, VCR)가 있었다. 이전 글 <기술발전으로 형체가 없어진, 레이블>에서는 음악산업에서 1960년대 카세트 테이프가 등장하였고, 1980년대 CD가 등장할 때까지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다고 언급했었다. 비디오산업에서도 VCR은 일정기간 동안 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거실에 VCR을 설치하고 몇 일 뒤 아버지는 비디오 「영웅본색」을 빌려오셨다. VCR이라는 기기도 신기했지만,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컨텐츠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까지 대중문화라 해봐야 주로 영화관람이였는데, 영화관에 직접 가야하고, 연령제한·상영기한으로 인해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VCR 기술의 발전과 비디오가게의 등장으로 문화적 경험은 한 단계 점프를 하였다. VCR은 가사일로 분주하신 어머니에게도 간간히 소녀감성을 일깨워 주었는데, 바로 「사랑과 영혼」이었다. 어머니는 그 비디오테이프를 반복해 보면서 감동을 받곤 했었다. 이후 감성 충만한 어머니는 또 하나의 콘텐츠에 열광했는데, 그건 「타이타닉」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었지만, 어머니는 타이타닉을 영화관에서 2번 이상 본 것으로 안다. 감동적인 시나리오, 예술적 감각과 최첨단 특수효과를 통해 구현된 탁월한 영상미, 그리고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과 귀에 감기는 영화음악은 당시 사람들에게 이전에 없던 감동을 선사했다.

 

2023년 6월 22일 해저 4000m에 가라앉은 미국 오션게이트 익스피디션(OceanGate Expeditions) 소유의 잠수정 타이탄(Titan) 잔해를 발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래 전 침몰한 여객선 타이타닉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타이탄은 1인당 약 3.4억(25만 달러)의 비용으로 8일 동 심해체험을 제공하였다. 한번의 체험비용으로 수억원대를 지불 가능한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모험과 베팅을 선호하지 않기에, 영화 속에서의 타이타닉호를 굳이 바다 깊이 내려가서 목도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일부 부유한 사람들은 달리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서는 타이탄 사고와 익스트림 관광에 대해서 알아보자.

 

전설로 남은 침몰선, 타이타닉

 

타이타닉(Titanic)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고급스러운 여객선으로,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미국 뉴욕으로 최초의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4일 후에 빙산과의 충돌로 침몰하면서 약 2,200명의 승객과 승무원 중에서 700여명만이 생존하게 되는데, 이는 구명보트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부분은 빙산에 관반복적 경고가 있었지만, 이를 외면한 채 흐린 날 밤에 전속력으로 유빙을 향해 돌진하였다는 점이다. 16개의 방수구획으로 나눠진 선체는 4개까지는 물이 차도 항해가 가능했지만, 빙산과의 충돌은 안타깝게도 5개의 방수구획에 물이 찼다고 한다. 침몰 직후에 발신된 구조신호도 공기 속의 온도 변화로 인해 무선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1985년 9월 미국 해양학자 로버트 발라드(Robert Ballard)는 침몰된 타이타닉을 발견했는데, 원격조종 심해잠수정 아라고(Arago)와 최첨한 소나와 카메라 장비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발라드는 "대부분 사람은 우주를 최후의 개척지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엄청나게 많은 미개척지가 바로 지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복해서 외면된, 경고

 

2023년 6월 18일 오전 8시 타이탄은 미국 동부 케이프코드(Cape Cod) 해안에서 약 1450km 떨어진 지점에서 잠수한지 1시간 45분 만에 통신이 끊겼고, 4일 후인 22일 심해 원격조종 로봇에 의해 일부 잔해가 발견되었다. 타이탄이 파괴된 원인으로 해저압력을 견디지 못한 치명적 내파가 거론되고 있다. 해저압력을 견디지 못한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일단 설계과정에서 티타늄과 함께 사용된 탄소섬유가 지목되고 있다. 탄소섬유는 압축강도인장강도보다 훨씬 약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강력한 압력이 사방에서 가해지는 심해잠수정에는 사용이 적합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소재와 이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수압변화에 더 취약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압축강도(compressive strength)는 압축하중에 저항하는 힘이며, 인장강도(tensile strength)는 장력(당기거나 당겨지는 힘)에 견디는 힘을 말한다. 그리고 타이탄과 같은 원통(실린더) 형태의 잠수정은 (sphere) 태의 잠수정에 비해 수압에 견디기에 비효율적이다. 이렇듯 타이탄이 심해잠수 안전규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오션게이트의 전 임원이 반복적으로 경고를 해왔다고 하는데, 이런 부분을 감안하면 타이타닉과 타이탄은 모두 안전위험에 대한 경고를 외면하여서 발생한 인재로 볼 수 있다.

심해잠수정 타이탄 스펙
심해잠수정 타이탄 스펙

지상과는 차원이 다른 압력, 바다

 

우주와도 비견되는 심해의 극한환경은 해저탐사를 어렵게 한다. 인류가 탐험·이해하는 바다는 수심 200m 이내의 얕은 해역으로, 이는 빛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깊이라 하여 광학영역(photic zone)으로 불린다. 광학영역에서는 광합성이 가능하여 대부분의 해양생물이 여기서 발견된다. 실제 바다의 대부분은 광학영역보다 훨씬 깊은데, 평균 해양깊이는 약 3,800m이며, 가장 깊은 부분인 마리아나 해구(Mariana trench)는 약 11,000m 이상이라고 한다. 수중의 압력은 지상보다 훨씬 큰데, 이는 물의 밀도는 공기의 약 1000배 수준이며, 수심이 깊을수록 물체 위의 더 많은 물로 인해 큰 압력이 작용한다. 1기압은 1㎠의 면적에 1㎏의 힘이 가해지는 수준의 압력으로, 수심 10m 하강할 때마다 1기압씩 상승한다. 사람의 몸이 버틸 수 있는 압력은 30기압 수준으로, 수심 300m 깊이라고 한다. 타이탄의 잔해가 발견된 수심 4000m은 400기압으로 지상 대비 약 400배의 더 큰 압력이 작용한다. 마리아나 해구의 최저점인 챌린저딥(Challenger Deep)의 압력은 지상의 1000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심해의 높은 압력을 극복해야 하는 심해잠수정은 우주선에 버금가는 최첨단 기술이 요구되는데, 실제 수심 6000m 이상까지 잠수가 가능한 유인잠수정을 보유한 국가는 우주강국 5개국(미국·일본·러시아·프랑스·중국)에 불과하다. 엄청난 수압을 분산시키기 위해 탑승공간은 완벽에 가까운 구의 형태여야 하고, 골조는 티타늄(내지 합금), 창은 고분자 수지를 사용한다. 수중은 중력만 작용하는 지상과는 달리, 물 밖으로 밀어올리부력이 작용한다. 이는 잠수하는 물체의 무게중심을 정밀히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파 대신 음파를 이용해야 하고, 광학영역을 벗어나는 구역에서는 첨담조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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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폭발과는 다른, 내파

 

외파(explosion)내파(implosion)는 유사한 에너지 변환 과정을 가지지만, 그 방향성과 결과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외파는 고압에너지가 갑자기 방출되어 주변으로 빠르게 확장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이 과정에서 큰 에너지와 함께 소리와 빛, 열, 충격파 등이 방출될 수 있다. 화염이나 연기를 동반하는 폭탄, 엔진의 배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내파는 물체가 내부로 압축되는 현상으로, 주변의 압력이 물체의 내부압력보다 클 때 발생하며 물체의 부피가 감소하고 밀도가 증가한다. 내파도 그 과정에서 큰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 내파는 자연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과학·기술적 연구에서 종종 활용된다. 이전 글 <인공태양이라는 이름으로, 핵융합>에서는 초고온·초고압 환경을 조성하여 수소원자 핵들을 융합시키면 빛과 열의 형태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된다고 언급했었다. 이때 핵을 합성하기 위해 내파를 사용한 것이다. 타이탄의 선체도 심해압력에 의한 내파로 찌그러지듯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공학과 물리학에서 다뤄지는 치명적 내파(catastrophic implosion)는 물체가 특정조건에서 내부로부터 매우 급격히 붕괴하는 현상인데, 대표적인 예로 기압차에 의한 수중에서의 붕괴·파괴나 별이 중성자별이나 블랙홀로 붕괴하는 천문학적 현상 등이 있다. 사회·경제 체계가 급격하게 붕괴되는 상황을 치명적 내파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경제체계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규모의 금융위기나 대공황, 내란 및 전쟁 등으로 인해 사회체계가 기능을 상실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

 

반복의 힘, 피로균열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치명적 내파는 결과적으로 '급격히' 발생하게 되지만, 아마도 그 이전에 보이지 않은 힘과 충격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되면서 임계치에 다달았을 가능성이 높다. 재료에 반복적인 응력이 가해지면서 재료의 피로강도를 초과하게 되면 비로소 피로균열(fatigue crack)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생긴 재료 내부의 작은 균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져서 최종적으로 파손을 일으키게 된다. 대부분의 피로균열은 표면과 가까운 지점에서 시작되며, 재료·구조물의 수명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는 피로균열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비행기 날개나 자동차 프레임과 같은 구조물은 반복적인 응력에 노출되며 피로균열의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설계·제작 과정에서 재료의 선택, 디자인 설계 등을 통해 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피로균열은 사람의 정신·감정적 상태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번아웃(burn out)이 그것이다. 번아웃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나 부하에 노출되어 더 이상 일상적인 요구사항에 대응할 수 없는 심리적 상태를 말하는데, 이는 근무환경이나 사생활을 처리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 번아웃의 상황에서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며,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번아웃을 예방하기 위해 개인적인 스트레스 관리, 적절한 휴식과 운동, 영양, 그리고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찾아야 한다. 우리 삶의 재료자신을 유지·보호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조치이다.

신체와 정신이 균열되는 번아웃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반대로 반복적으로 가해지는 응력이 삶에서 한 순간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이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티핑 포인트 : 작은 아이디어는 어떻게 빅트렌드가 되는가」는 소문, 행동, 새로운 제품 및 아이디어가 어떻게 갑자기 대중적으로 퍼져 나가는지를 말하고 있다. 아이디어와 제품, 메시지, 행동이 대중에게 퍼지는 것을 전염병의 전파와 비교하면서, 서서히 확산되는 현상이 티핑포인트에 도달하면 바이러스 확산과 같이 급격히 확산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확산을 다음 3가지 법칙으로 설명되는데,

 

법칙 1) 소수의 법칙

대부분의 현상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소수(the few)의 인간이 존재하며, 티핑포인트에 도달하고 싶다면 유행을 퍼뜨리는 소수를 찾아 그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소수의 대표적인 3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연결자(connector) : 사람을 수집

전문가(maven) : 제품·아이디어에 해박

세일즈맨(salesman) : 대중이 행위를 하도록 유도

 

연결자·전문가는 정보의 전달자로서의 역할에 한정되며, 정작 중요한 누군가를 설득하는 역할은 세일즈맨의 몫이다.


법칙 2) 고착성의 법칙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티핑포인트에 도달할 수 없으며, 정보가 대중에게 각인되고 그것들이 끊임없이 유지되고 지속되어야만 정보의 유행이 가능하다. 따라서 가능한 한 많은 실험·조사를 통해 풍부한 정보를 취합하여, 사람들이 잘 기억되게 하는 형태로 고착성(stickiness)을 가진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야 한다.

법칙 3) 상황의 힘 법칙

인간은 인간의 능력·성격·행위·태도 등이 인간 자체에 내포된 본성과 기질에 기인한다는 기본적 귀인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특성은 내재된 기질이 아니라 상황적 맥락(context)에 좌우다고 한다. 따라서 누군가의 행위를 예측하고 통제하고 싶다면 그 사람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놓여있는 환경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자들의 위험 재분배, 익스트림 액티비티

 

일부 부유층들스릴치는 익스트림(extreme) 관광·스포츠를 즐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미지의 세계(고도, 심해, 우주)로 그 관광의 범위를 확장시켜 왔다. 도전과 모험의 추구, 자기통제와 적응력, 스트레스 해소, 자아(존재감)의 확인 등 다양한 유인들은 일부 부유층의 소비를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업가들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주어진 경계와 일상를 넘어서는 경험을 즐기곤 한다. 이러한 도전정신은 그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개인능력을 시험함으로써 자기통제력·적응력을 강화시켜 주기도 한다.

 

흔히 부유층들은 세상 편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들은 가진 것을 유지·확대하기 위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에 따라 부유층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뭔가 더 특별한 활동을 찾을 수 있다.부자들이 가진 재산과 성공은 자신감과 인정감을 안겨줄 수는 있지만, 이것이 항상 자존감을 확립시켜 주지는 않는다. 자신을 증명하고 존재감을 확립하는 대체수단으로 익스트림 액티비티가 필요할 수 있다. 위험의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도 재정적으로 안정성(낮은 리스크)을 확보하였기에, 재정 외의 분야에서는 위험 감내도(tolerance)가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위험을 추구하는 새로운 스릴이 가져다주는 쾌감에도 내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전 글 <프로포폴에 이어, 해리성 약물>에서 마취유도제 프로포폴과 같은 약물은 복용량과 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내성(tolerance)가 생길 수 있다고 언급했었다. 감각적 쾌락 추구도 반복적으로 행해지면 신경을 자극·억제하는 약물과 마찬가지로 점차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쾌감을 느끼기 어렵게 된다. 결국 더 높은 수준의 위험과 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가끔가다 인생의 허무한 광경을 목격하는 경우가 많다. 죽은 타이타닉을 직접 보기 위해 깊은 바다로 내려간 타이탄과 부자들은 작은 흔적만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부자들 가운데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나아감으로써, 스스로를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차별성을 확인하고 싶은 일종의 특권심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닌 인간이다. 타이탄과 함께 허무하게 죽은 부자들은 첨단기술의 결과물을 큰 비용을 들여 소비하려 했지만, 인간의 안일함에 속았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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