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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용산에서 태동한, 제과업

by Spacewizard 2025.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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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용산구는 조선시대 한성(5부 43방)에서 용산방(서부)·둔지방(남부)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만초천(蔓草川, 넝쿨풀이 무성한 하천)이 용산방·둔지방의 경계였다.

 

용산방(만초천 서쪽) : 용산(龍山)

둔지방(만초천 동쪽) : 둔지산(屯之山)

 

1876년 개항 직후에는 일본인들의 국내 거주가 엄격히 제한되었지만, 1882년 제물포조약이 체결되면서 개시장이 허용되었다. 개시장(開市場)은 내륙에서 외국인의 상업활동을 허용한 공간으로, 한성 인근에서는 양화진이 개시장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좁은 양화진을 대체할 공간을 요구했고, 남대문까지 수레가 다니기 좋은 용산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한강을 가로지르는 주된 인프라는 다리이지만, 과거에는 뱃길을 잇는 3대 나루터(송파진·한강진·양화진)였다. 양화진(楊花津, 버드나무꽃이 피는 나루) 근처 들판에 형성된 마을을 양평(楊坪)이라 불렀다. 대부분이 농지·모래밭이었던 양평은 일제의 공업화 정책에 따라 공장지대(섬유·식료품·음료)로 변모했고, 서울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다시 주거·상업·업무지역으로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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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은 남산의 남쪽(용산)을 수용하였는데, 신용산(군용지, 일본인 거주지역)을 개발하기 위함이었다. 둔지방의 서쪽은 신용산이 되었고, 둔지산 일대가 군용지가 되었다. 둔지산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은 현재의 용산가족공원 자리로 이주했다가, 1917년 일본군 기지 확장에 따라서 다시 보광리로 이주했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문제는 이주 보다는 분묘였을 것이다. 조선인에게 분묘이전은 아주 예민한 문제였는데, 조선시대 민사소송의 대부분은 묘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무력 앞에 조선인의 주장은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동안 한성 내의 산지는 벌목·채석·투장이 일체 금지되었기에, 도성 내의 주검들은 광희문을 빠져 나가서 서쪽으로 돌아 남산 기슭에 묻었다. 그래서 광희문은 시구문(屍口門,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 불렸다.

김정호의 동여도(좌), 신용산과 구용산 [출처:용산구청]

일제강점기 고소득자 밀집지역, 용산

 

신용산 내 민간인 거주구역을 원정(元町, 모토마치)라 붙였는데, 이는 일본인들의 으뜸가는 동네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도성 내의 본정(本町, 혼마치)와 비교하여 지어진 것이다. 1946년 10월 가로명제정위원회는 서울시내 충무로·을지로·원효로 등의 이름을 지었는데, 원효로는 원(원정)과 효(효창원)이 합쳐진 이름이다. 개인적으로는 원효대사와 연관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제과회사 중에는 본사·공장는 본토에 둔 채, 경성에 판매대리점을 두기도 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1899년 설립된 삼영(森永, 모리나가)제과와 1916년 세워진 명치(明治, 메이지)제과이다.

 

다음 8개의 제과업체는 경성부에 본사·공장을 두고 있었는데, 모두 신용산에 위치했었다.

 

영강제과 : 남영동(해태제과 모태)

풍국제과 : 삼각지(동양제과 모태)

경성제과 : 갈월동

장곡제과 : 후암동

대서제과 : 용문동

궁본제과 : 용산경찰서 앞

기린제과 : 공덕동

조선제과

해태제과 남영동 공장 [출처:매일경제]

이전 글 <일제가 들여온 주전부리, 빵집>에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주전부리(떡·약과류)가 점차 서구식 빵·양과자 내지 일본식 화과자·사탕들로 대체되었다고 언급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과자수요의 대부분은 군부대와 소득수준이 높은 일본인이었는데, 이에 제과업체들은 본사·생산시설을 신용산에 둘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철도시설(용산역)으로 통해 제품을 전국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당시 교통수단은 과자를 배달시켜 먹기에는 너무 큰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적산을 불하받은 제과회사들은 자연스럽게 용산에서 기반을 닦았는데, 과거 제과업계 3사(롯데제과·오리온·크라운해태)의 본사는 용산에 위치했던 적이 있었다.

 

일부 제과업체는 일본군에 양갱과 카라멜을 납품했다고 하는데, 완전히 수긍되는 부분이다. 군대 내에서는 주식보다 부식(과자·빵·냉동식품 등)이 사기진작에 큰 도움이 되는데, 개인적으로 선임들이 자기 돈으로 부식추진을 해줬던 기억이 고맙게 남아 있다. 1999년 12월 이등병 시절, 어둑한 막사 뒤에서 급하게 롯데샌드 파인애플을 털어 넣고 우걱우걱 씹어 먹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시장이 반찬이고, 고립감은 당(sugar)에 대한 욕망을 극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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