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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중동] 강대국이 그린 국경, 중동

by Spacewizard 2025.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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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관련하여 헷갈리는 용어가 아랍·무슬림·이슬람인데, 이는 명확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아랍(Arab)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으로, 주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한다. 종교가 아닌 언어·문화·민족적 개념이기에, 아랍인이라도 다양한 종교(무슬림·기독교·유대교)를 가질 수 있다. 아랍어 이슬람(Islam, 복종·순종)알라(유일신)에게 복종하는 종교로, 꾸란(Quran)을 경전으로 삼고, 무함마드(Muhammad)를 마지막 예언자로 믿는다. 아랍어 무슬림(Muslim, 복종하는 사람)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으로, 무슬림 중에는 아랍인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겠지만, 아랍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슬람교은 다음 5개의 기둥을 핵심으로 한다.

 

신앙고백(샤하다) : 알라 외의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

예배(살라) : 하루 5번, 정해진 시간에 메카를 향해 예배

자선(자카트) : 자신의 재산은 빈자에게 나눔

금식(사움) : 라마단 기간 내 낮 시간

순례(하즈) : 일생 1번 성지순례

레반트(Levant)오늘날 키프로스·이집트·이스라엘·레바논·시리아·터키·요르단·이라크 등지를 의미하는데, 동쪽을 의미하는 프랑스어(lever) 또는 이탈리아어 르반떼(levant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레반트는 과거 지중해 동부 연안(현 이스라엘·요르단·레바논·시리아 등)을 지칭했는데,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농업·도시가 최초로 발생한 공간이다. 르반떼는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고급스럽고 이국적인 이미지를 살려 자동차(마세라티 SUV모델) 이름으로 붙여지기도 한다.

지중해와 레반트

석유를 탐한, 승전국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제국은 독일 측에 가담했고, 결국 패전하면서 중동의 영토와 재배력을 상실했다. 그 전까지 오스만 제국가 수니파의 수장 역할을 한 반면, 사파비 왕조가 시아파를 대표했다.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던 아랍인들은 독립을 염원했고, 이를 위해 민족주의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하지만 1916년 영국·프랑스가 러시아 제국의 동의 하에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을 비밀리에 체결했는데, 이 협정은 오스만제국의 붕괴시 중동의 분할 방안을 다음과 같이 담고 있었다. 참고로 사이크스와 피코는 각각 영국과 프랑스의 외교관으로 협상의 책임자였다.

 

영국 :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라크 남부
프랑스 : 레바논, 시리아, 터키 남동부

 

러시아 혁명 이후 볼셰비키 정부는 사이크스-피코 협정 사실을 폭로하였고, 오늘날의 중동지역 국경선은 사실상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의해 정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인위적인 그어진 국경은 민족·종교·부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그 여파로 오늘날까지도 중동지역에서 민족·종교·부족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20년 4월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산레모(이탈리아)에서 회의가 개최되었다. 산레모 회의(San Remo conference)에서 국제연맹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식민지를 승전국이 통치하는 위임통치제도를 도입했고, 중동지역은 영국·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을 확정되었다. 또한 밸푸어 선언의 이행을 확인했다. 영국·프랑스이 아랍인에 대한 독립약속을 외면하면서까지 중동지역을 차지하려 했던 배경에는 석유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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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을 향한 러브콜, 밸푸어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 이었던 1917년,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 당시 영국 외부장관)은 로스차일드 경(시오니스트 지도자)에게 서한을 보내는 형식으로 밸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온주의자들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으며, 이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결정적이 역할을 했다. 시온(Zion)원래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다윗 왕의 성채(시온산, Mount Zion)을 의미했지만, 이후 예루살렘 전체를 상징하게 된다. 뿔뿔이 흩어졌던 유대인에게 시온은 향수 어린 고향이었고, 가슴 한 켠에는 시온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염원해 왓었다. 기독교에서도 시온은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는 천국(하나님의 나라)을 상징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계적으로 정치·금융·언론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영국은 전쟁자금을 확보하고 연합군에 대한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온주의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영국 입장에서도 팔레스타인에 우호국이 위치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했는데, 수에즈 운하가 팔레스타인과 지리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은 철저한 자국이익에 기반하여,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설립을 지지했던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인도주의를 크게 내세웠는데, 2000년 동안 유럽에서 심각한 차별·박해를 받았던 유대인이 워낙 강력한 영향력을 지녔던 시대였다. 박힌 돌(팔레스타인)을 빼낸 굴러온 돌(이스라엘)은 현재까지도 중동 화약고의 심지로 남아 있다.

 

중동에 꽂은 빨대, 석유회사

 

중동의 위임통치 이후, 영국의 앵글로-페르시아 석유회사(APOC, Anglo-Persian Oil Company, 현 BP)가 중동의 석유산업을 장악했다. 중동은 농업경제에서 석유수출경제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다. 석유소비가 영원할 것이라 여겨졌던 20세기 후반, 중동국가의 경제구조는 석유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태였다. 21세기 들어 4차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중동국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석유의존도를 낮춰야 했다. 축구산업 육성이나 네옴시티(사우디·맥킨지) 등이 그 일환이다.

 

1901년 윌리엄 녹스 다시(William Knox D'Arcy)가 페르시아(현 이란)에서 석유 탐사·판매에 대한 60년의 양허를 받았고, 1909년 버마오일회사는 윌리엄 녹스 다시의 탐사를 지원하고 석유개발을 위해 APOC를 설립했다. 버마오일회사(Burmah Oil Company)는 1886년 설립된 스코틀랜드의 석유회사로, 주로 버마(현 미얀마)에서 석유를 탐사·생산했다. 1914년 영국정부는 APOC의 주요 주주가 되었고, 1935년 사명을 AIOC(Anglo-Iranian Oil Company)로 변경했다.


1954년 사명을 British Petroleum Company로 변경한 후, 1965년 북해에서 최초로 석유를 발견하게 된다. 1979년 영국정부는 BP를 단계적으로 민영화 했고, 1998년 Amoco와 합병하면서 BP Amoco가 되었다. 2000년 버마오일회사를 인수한 후, 2001년 사명을 BP로 변경했다. 자회사가 90년 만에 모회사를 인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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