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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

바나나 공화국이라기엔 원래부터, 스위스

by Spacewizard 202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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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부패한 소국, 바나나공화국
2008년 금융위기에서 살아남은, CS

UBS가 CS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외면한, 채권자 손실

중립국 스위스가 추구하는 자국이익, 그 일환으로 비밀보장

과거 권력자들의 풍문 꼬리표, 스위스 비밀계좌

때로는 필요한 이기적인 선택, 신뢰보다는 생존

[Shorts] https://www.youtube.com/shorts/glCvfT9e1Yo

 

얼마 전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스은행(Credit Suisse, CS)의 2022년 실적보고서가 나왔는데, 그 보고서에서 막대한 손실이 드러나면서 파산의 우려를 자아냈다가 결국 스위스 최대은행 UBS에 매각되었다. 하필 이전 글 <금리인상이 서서히 죄어온, 은행 파산>에서 언급한 SVB가 영업정지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의 일이라, SVB의 영업정지가 CS 위기의 직접적인 트리거라는 말도 나온다.

 

초연결시대에서 미국의 한 은행이 유럽 여러 은행들에게 복합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두 은행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결이 다른 부분이 있다. SVB는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스타트업 업계의 자금조달 경색과 스마트폰 뱅크런이라는 단기적이고 돌발적인 요소가 주효했다면, CS는 금융위기 이후 계속해서 실적이 좋지 않았고 최근 COVID-19 국면에서 큰 규모의 손실들로 인해 2022년 말에 신용부도스왑(Credit Default Swap, CDS)가 정점을 치면서 부도위험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 최근 스위스를 바나나 공화국으로 빗댄 보도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스위스 은행과 스위스 정부의 대처에 대해서 알아보자.

스위스 양대 은행 UBS와 CS 출처 SBS
스위스 양대 은행, UBS와 CS [출처:SBS]

비밀로 명성을 유지해온, 스위스 은행

스위스 은행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큰 명성을 누려 왔는데, 특히 금융 안정성, 높은 수준의 서비스, 그리고 강력한 금융비밀 보호로 유명하다. 스위스 은행은 강력한 자본 기준과 엄격한 규제로 인해 안정성이 뛰어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불안정한 시기에도 고객들의 자산을 비교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했다. 그리고 높은 품질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 왔는데, 여기에는 자산관리, 투자자문, 그리고 비즈니스 및 개인 금융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또한 스위스는 은행비밀을 엄격하게 보호하는 법률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고객의 개인정보와 금융거래 내역을 외부와 공유하지 않는 것 의미한다. 물론 불법행위 내지 국제협력과 관련된 정보는 예외이다. 비밀 보장 정책은 세계적인 금융센터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스위스의 비밀 보장 정책으로 인해 세금 회피, 불법 자금 및 부정한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국가 수반들의 사례에서도 나타나는데, 한국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78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가 작성한 「프레이저 보고서(Fraser Report)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박정희 정부의 스위스 비밀계좌이다. 이 보고서는 1976년 재미사업가 박동선의 미국 의회 로비사건, 이른바 「코리아게이트」를 계기로 작성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는 이동훈(중앙정보부장 이후락 아들), 박종규(비서실장), 서정귀(흥국상사 회장)의 명의로 최소 3개 이상의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만들어 관리해왔다고 한다. 이후락은 박정희에게 전달되는 돈을 모아 스위스은행 계좌에 예치했으며, 필요시 인출하여 박정희에게 건넸다고 한다. 이 돈이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책상 뒤 캐비닛에 보관됐다는 상세한 진술도 확보했다. 10.26 이후 합동수사본부 요원들이 대통령 집무실을 수색하던 중 발견한 개인금고 안의 9억도 그 비자금일 수 있다. 당시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은 9억 중 6억을 평소 친한 동생으로 지내던 박근혜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 중인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출처 민족문제연구소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 중인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좌) [출처:민족문제연구소]

스스로는 변화할 수 없었던, CS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스위스 최대은행 UBS는 구제금융을 받은 반면, CS는 구제금융 없이 독자적으로 민간자본을 조달하면서 극복했다. 이후 구제금융을 받은 경쟁사들은 내부통제를 강화하면서 보수적인 스탠스를 지니게 된 반면, CS는 허술한 내부통제 속에서 고수익을 위한 공격적인 스탠스를 고수하였다. 결국 COVID-19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1년 3월 CS는 큰 손실을 입게 되는데, 공급망금융(SCF, Supply Chain Finance)을 주로 하는 영국의 핀테크업체인 그린실 캐피탈(Greensill Capital)의 파산과 빌 황이 이끌던 미국 헤지펀드 아케고스(Archegos Capital Management)의 마진콜 사태가 원인이었다. 이로 인해 CS가 가지고 있던 부자 자산관리의 명성에 금이 간 것은 물론, IB로서의 경쟁력 없는 투자·관리 역량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되었다. 한번 잃은 신뢰는 되찾기가 쉽지 않았으며, 결국 15년 전에 매를 맞지 않은 CS은 먼저 매를 맞은 UBS에게 흡수되었다.

변덕과 이기심을 드러낸, 스위스 정부

수 십년 간 투자자들의 안식처로 여겨졌던 스위스는 CS의 붕괴를 계기로 바나나공화국이란 오명을 쓰게 되는데, 스위스 정부가 CS 인수를 UBS에 중개하는 과정에서 개방경제시장의 2가지 핵심요소(독과점 규제, 주주권리)를 무력화 하는 긴급입법의 필요성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의 기본원칙은 주주보다 채권자를 우선하지만, 이를 깨고 170억달러(약 22.5조원) 상당의 AT1채권을 전액상각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스위스 정부는 CS발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법치·평판을 훼손하였고, 외국인 투자자들도 법치가 적용되지 않는 바나나공화국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AT1채권(Additional Tier1)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납세자가 아닌 투자자가 손실을 부담하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채권으로 위기상황에서 자본을 완충시키는 역할을 한다. 유럽의 다른 은행에서는 AT1 유형의 부채에 보다 많은 보호장치를 두고 있는데, 오직 스위스 UBS·CS가 발행한 AT1에만 약관에 자본으로 전환하지 않고 채권의 전액소멸을 허용하는 문구가 있다. 투자자가 AT1 채권 매입 당시 해당 약관의 위험성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들 스위스은행이 발행한 AT1 만의 예외성은 채권자가 주주보다 우선인 일반원칙에서 벗어나 있다. CS가 발행한 AT1 상각 규모는 유럽 AT1시장 사상 가장 큰 손실로 보고 있다.

 

바나나 공화국, 스위스?

일반적으로 바나나공화국(Banana Republic)원래 중앙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들이 미국의 바나나회사(특히 United Fruit Company)에 의해 경제적으로 지배당하며 정치적 불안정을 겪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겉은 멀쩡하여도 속은 썩기 쉬운 바나나의 성질에 빗대어 부정적인 비유로 사용되었는데, 주로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부패한 소국을 의미하고 있다. 보통 정치적 부패, 자유의 제한,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공통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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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를 바나나공화국이라 비유하기에는 그 정의에서 크게 벗어난다. 경제적으로 지배를 당하는 입장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거나 부패하지도 않은 편이다. 다만 자국이익을 위해 외국인 투자자의 입장·이익을 외면하는 경향이 강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스위스는 과거부터 국가의 존립을 위해 독특한 스탠스에 가져왔다. 26개의 주로 구성된 연방주의 국가로 각 주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한다. 1291년 스위스 연방은 방어동맹으로 처음 설립되었으며, 1499년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했다. 1815~1848년까지 스위스 각 주는 복수의 주권을 유지하는 국가연합체(Confederation, 스위스 연합)을 구성해 왔으며, 1848년 새로운 헌법은 단일주권에 기반하는 중앙집중식 연방정부(Federation)로 바꾸어 갈등기간을 종식시켰다.

 

스위스는 로마시대부터 주변국들의 전쟁에 시달려 왔으며, 이는 현상변경 의지를 가진 강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요인에 따른 것이다. 스위스는 1500년대부터 중립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 끝에 300년이 지난 1815년 비엔나(빈) 회의에서 영세중립국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공식적인 중립국이 되면서 국제갈등에 참여하지 않으며, 다른 국가들 간의 외교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주 맡았다. 이러한 중립성이 바탕이 되었기에, 스위스는 지금의 국제적 평판과 금융센터로서의 역할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자국이익 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라고도 평가받는 은행비밀 보장 정책을 취하면서, 악용(세금회피, 불법자금 및 부정거래)의 여지를 제공했다.

 

스위스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이기적인 생존전략으로 극복해온 국가인 만큼, 이번 금융리스크를 봉합하기 위해 신속하고 파괴적인 대응으로 나오고 있다. 이전 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배신>에서 현대에서의 개인은 자유로운 선택을 할 권리가 있다는 언급을 했었는데, 이번 스위스의 결정을 그 범위를 국가 단위로 확장한 것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번 일로 국제적인 신뢰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지만, 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존해 온 저력을 이번에도 보일지 누가 아나.

 

[Music] 나만의 세상

https://www.youtube.com/watch?v=d0PbmSX8QxE

My Own World #나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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