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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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같은 조직에 근무하는 동료가 이직하는 경우, 흔히들 '배신자' 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동료를 비난하곤 한다. 최근 국회에서는 야당 당대표의 체포동의안 부결과 관련한 이탈표 사태가 있었는데,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나 방송패널들은 이탈표를 선택한 국회의원들을 가리키며 '배신자'라는 표현을 쏟아냈다. 개인적으로 회사조직 구성원들과 술 한잔을 기울이며 진솔한 대화를 할 때면 가끔 하는 얘기가 있다. "난 너네들을 언제든지 떠나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속세에서의 배신은 당연한 디폴트값이라 생각한다." 사실 훌륭한 부하들이 오래도록 곁에 남아서 사회적 성공을 이루고 그 기쁨과 성과를 함께 했으면 하는 것이 리더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부하직원들도 각자의 삶의 목표와 신념을 가지고 행동할 자유가 있다는 점을 존중하게 되었다. 과연 현대사회에서 배신이 죄악시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시대에 따른 배신의 관념 변화와 현대사회에서 배신이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신뢰(TRUST)의 분열, 배신 [출처:Center for healthy change]

 

시대에 따른 배신의 관념 변화

배신은 신뢰나 충성을 위배하는 행위로, 인류역사를 통틀어 존재해 온 복잡한 개념 중의 하나다. 배신의 기본적인 정의는 시간이 지남에도 변함이 없지만, 사회·문화적 이유로 인해 전근대의 배신과 현대의 배신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전근대사회는 확고한 계급구조와 가족·공동체에 대한 구속적인 의무를 특징으로 하는데, 이 시대의 배신행위은 사회적 규범·가치를 위반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추방이나 심지어 죽음과 같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반면에 현대사회는 전통적 가치에 덜 얽매이며 개인주의적 경향과 함께 인권을 중시하는 사법체계가 확립되었는데, 이에 따라 현대에는 배신을 한다고 하여 신체적 피해나 심각한 처벌을 초래할 가능성이 낮아졌다. 다만 여전히 신뢰의 상실, 관계·평판의 손상과 같은 중대한 사회정서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 다른 차이점은 기술·통신의 역할다. 전근대사회에서는 대면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작은 공동체 안에서 배신이 발생했다. 하지만 현대의 발전된 기술은 더 빠르고 광범위한 통신을 가능케 하면서 배신의 속도와 범위를 증가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현대에서 배신의 결과는 가까운 공동체를 넘어 더 넓은 사회정치적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가기밀이나 정치적 동맹에 대한 배신은 국제관계와 세계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기업기밀에 대한 배신은 국가경제에 치명적 손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현대사회에서의 배신이 죄악이 아닌 3가지 이유

이유 1) 개인의 자유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분위기는 조직의 성폐보다는 개인의 이해관계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만들었다. 개인 본인이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 개인은 그들의 가치관과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을 결정할 것이며, 목숨을 바치거나 무리해서까지 조직·타인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이유 2) 조직의 문제

일반적으로 배신이 발생했다면 해당 조직내부의 문제와 연관된다. 배신을 저지른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이는 조직의 문제를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배신한 개인을 비난하는 것 보다는, 또 다른 배신의 확대로 이어지기 전에 조직내부의 문제에 대한 더 큰 관심과 개선이 요구된다. 가령 오랜 기간 연구개발에 투자한 회사의 연구원들이 제품출시를 앞두고 동반퇴직한 후, 그들끼리 만든 새로운 회사에서 동일제품을 출시하여 성공했다고 해보자. 여러 복잡한 상황들이 있겠지만, 결국 기존 회사나 대표이사의 인사관리 부실이 가장 주된 문제이다. 이후 조직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직원을 신뢰하기 보다는, 인사관리를 시스템적으로 운영하여 조직 내에서 다시는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유 3) 복잡한 윤리적 문제

상황에 따라서 배신이 옳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배신이 윤리적으로 옳은건지의 여부를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따라서 배신을 단순히 죄악으로 분류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매우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배신의 긍정적인 효과

배신은 당한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관계, 우선순위, 그리고 가치를 재평가하도록 한다. 이는 배신을 경험한 사람으로 하여금 예측 가능한 경계를 설정하게 하고, 자기인식을 발달시키면서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질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배신의 경험이 용서·치유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용서는 원한을 풀어 내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배신을 둘러싼 여러 감정들을 인정함으로써 개인 간의 관계를 치유하고 강화할 수 있다. 또한 배신자의 입장에서는 배신을 결정하는 과정이 자신과의 투쟁과 고통의 결과일 수 있기 때문에, 배신은 공감·이해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배신의 근본적인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기를 수 있고, 이는 더 깊은 연결과 이해로 발전될 수 있다.

 

배신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배신을 그저 죄악시만 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오히려 배신이 성장, 용서, 치유, 그리고 공감을 위한 촉매가 될 수도 있다. 배신에 대한 관점을 재구성함으로써, 개인은 부정적인 경험을 오히려 관계의 성장을 위한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주변인들에게 과한 충성을 기대하거나 집착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