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

무너진 후에야 뒤늦은 견제 ,미국 조선업

by Spacewizard 2024. 6. 29.
728x90

2024년 6월 21일 한화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 지분 100%를 약 1억 달러에 아커로부터 인수했다고 공시했는데, 한화시스템·한화오션이 각각 지분 60%와 40%를 인수한다. 국내기업으로는 최초로 미국 조선업에 진출하게 되었다. 노르웨이 석유·가스·재생에너지 전문기업 아커(Aker)의 자회사였던 필리 조선소는 1997년 필라델피아의 미해군 국영조선소 부지에 건립된 이후, 미국 연안에서 운항하는 대형상선을 포함한 다양한 선박을 전문적으로 건조해왔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사업포트폴리오에 해군 소송함의 수리·개조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2018년 이후 6년 연속 적자로 인해 부분 자본잠식 상태임에 감안하면, 인수가격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60%의 지분을 확보한 한화시스템은 군함의 전투체계·레이더 등을 공급하는 업체라는 점에서, 미해군 유지·보수·운영(MRO, Maintenance Repair Operation)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국내 방산기업이 미해군 MRO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2024년 2월 방한한 미국 해군성 장관이 HD현대중공업의 함정 건조역량을 직접 시찰했는데, 당시 미국은 포화상태에 있는 본토의 미해군 MRO 물량의 일부를 해외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를 대비하여 2023년 HD현대중공업은 미해군 MRO 자격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몰락한 미국 조선업에게 필요한 건, 동맹국

 

해양강국으로 인식되고 있는 미국이 조선업에서 몰락하게 된 배경에는 1920년 제정된 「스법 : Jones Act」이 있다. 이 법은 미국이 생산·소유·운항하는 선박만이 미국항구에서 타 항구로 승객·물품의 운송을 가능하게 했다. 언뜻 강한 해군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조선업·해운업이 밑받침되어야 할 것 같지만, 정작 미국의 사정은 다르다. 1970년대 세계 1위의 미국 조선업은 50여 년이 흐른 지금 세계시장 점유율이 1%에도 못미친다. 그 사이 정부의 전략적 지원을 받은 중국 조선업이 1위 자리를 탈환했다. 미국 조선소들은 존스법에 따라 사실상 경쟁없이 수주물량을 나줘가지다 보니, 규모·혁신·효율성·기술경쟁력·가격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국제경쟁에서 뒤쳐진지 오래다. 현재 미국이 건조한 유조선 가격은 타 국가 대비 4배 이상 비싸며, 최근에는 베이비부머 은퇴에 따른 인력난으로 인해 납기지연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2023년 1월 미해군 전투함들 간에 수리부품를 돌려서 막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는 미국 내부의 평가가 있었는데, 이는 미해군 MRO의 취약한 현실을 보여준다. 부품 재활용(돌려막기)는 사고·고장 비율을 증가시킬 것이고, 또한 정비기간도 길어지면서 임무수행·훈련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미국내 조선업체들이 제공하는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의미라고 하면, 미국은 동맹국을 통해 공급망을 보강해야 할 것이다.

728x90

2024년 6월 한화의 미국 조선업 진출은 인력난·기술부족으로 생산경쟁력이 떨어진 미국 조선소와 북미의 생산거점이 필요한 한국 조선소 모두에게 윈윈이다. 한국 조선사들의 북미시장 진출전략은 우선 현지 조선소를 확보한 후, 점진적 시장개척을 기본방향으로 한다고 한다. 선박제조기술 전수를 통해 원가경쟁력을 높여 미국 현지 상선수주를 확대한 다음, 방산시장으로 점차 확장해 간다는 전략이다. 미해군 MRO사업에 진출하여 방산인프라사업에서 입지를 굳힌 후에, 군함·잠수함까지 수주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군함사업을 위해서는 조선업과 별도의 추가적인 허가가 필요하다.

 

가만히 있으면 뒤쳐지는 세상, 붉은 여왕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계속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은 경쟁상대를 이기지 못해 도태되는 현상을 말하며,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 :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에서 나온 개념이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이다. 은 여왕이 사는 곳에서는 제자리에 멈춰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뒤로 처지며, 현상유지를 위해서라도 쉴새 없이 달려야 하고 더 앞으로 나가려면 더 빨리 달려야 한다. 마치 빠르게 움직이는 무빙워크를 거꾸로 타는 느낌일 수도 있고, 무거운 바위를 가파른 언덕 위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Sisyphus)의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앨리스의 손을 잡고 달리고 있는, 붉은 여왕

COVID-19 팬데믹이 있었던 2020~2021년에 「벼락거지」라는 단어가 유행했는데, 전염병 유행에 따른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자산가격이 폭등하자 자산 미보유자들이 느낀 상대적인 박탈감을 표현한 것이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으나, 주변의 자산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상실감·도태감을 빠진 것이다. 생명체는 물론 기업들도 주변 환경과 경쟁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화·적응해야만 스스로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 흔히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살아남은 자는 진화·적응한 자를 의미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거대자본으로 쌓아 올린, 중국 조선업

 

중국은 남부해역(남중국해·대만해협)에서의 임무수행을 위해 함정(강습상륙함·수륙양용함 등) 수요가 크게 증가했으며, 이를 위해 조선능력을 양적으로 확충해야만 했다. 1951년 미 국무장관 고문이었던 존 덜레스(John Foster Dulles)는 공산권에 대한 해양봉쇄를 위해 도련(島鏈, 섬으로 이어진 사슬) 전략을 펼쳤고, 1980년대 류화칭(중국 해군사령관)은 이에 대응하여 아래와 같은 3단계 도련전략을 내놓는다.

제1 도련 :수역 통제권확립(일본 - 류큐 - 대만 - 필리핀 - 보르네오)
제2 도련 :수역 통제권 확장(오가사와라 - 괌 - 사이판 - 파푸아뉴기니)
제3 도련 : 항모전단을 이용한 미 해군 차단(태평양·인도양)

중국해군은 류화칭의 도련전략을 기반으로, 21세기 초까지 적극적인 근해방어를 해양전략으로 추구해 왔지만, 갑작스런 경제성장으로 축적된 자본은 해양전략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근해방어(섬 활용)에서 원해작전(항모 활용)으로 전략수정이 일어난 것이다. 엄청난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적 진보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중국해군이 운용 중인 2개 항모(랴오닝함·산둥함)은 구소련의 항공모함 제작기술이 적용되어, 증기식 사출로 스키점프대에서 이함하여, 어레스팅 와이어(arresting wire)로 착함하는 방식이다. 가끔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우스깡스러운 스키점프 방식의 이륙은 중국의 조선기술이 아직 멀었다는 인식을 심어 왔다. 하지만 중국이 자체 개발한 전기식 사출장치가 장착될 향후의 중국항모는 진일보된 기술의 집합체일 수도 있다. 중국국영조선공사(CSSC)는 글로벌 조선시장을 지배함은 물론, 인민해방군을 위한 군함을 생산하는 민군융합전략의 핵심기업으로, 미국안보에도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은 한동안 잊고 있던 알프레드 머핸(Alfred T. Mahan) 제독의 해양력(Sea Power)의 개념을 깨닫고, 조선시장에서 입지를 굳힌 중국를 뒤늦게 견제하려 하고 있다. 미국 내 노조단체들(철강노조 포함)의 청원을 받아들여「Super 301」로 불리는 「무역법 : Trade Act」 301조에 따른 조사를 시작했는데, 목표는 중국 조선역량 약화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국 무역압박만으로, 미국의 조선경쟁력이 복원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전 글 <뜻밖의 평화를 외교적으로, 중국>에서는 미국은 중국을 군비경쟁 레이스에 동참시키기 위해,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압박한다고 언급했었다. 근데 조선업 만큼은 미국이 중국과의 비용경쟁력에서 비교우위에 있다고 보기 힘든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국은 중단기적으로 아시아 동맹(한국·일본·대만 등)의 자본·기술을 끌어들여 미국 조선업을 장기적인 회복시키려 할 것이다. 언뜻 동맹국에게 지정학적 위기와 주도국(미국) 산업의 취약점이 불안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기회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미해군이 MRO를 넘어 해군자원의 생산까지 동맹에게 의지해야 할 수도 있기에, 이 기회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도의 산업전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