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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평화를 외교적으로, 중국

by Spacewizard 2023.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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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국제관계 내지 외교는 생물이라고 표현하는데, 국가 간의 관계는 항상 거래를 주고 받으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의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매우 다양한데, 국가 간의 대립과 갈등, 무역 전쟁, 기술 경쟁력, 기후 변화, 환경 파괴, 인권 등의 요인들이 국제정세에 대한 경우의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면서 복잡계를 형성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 주목할 만한 국제관계의 이벤트가 있었는데, 2023년 3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발표된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의 관계정상화 합의(이하 '베이징 합의')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저히 섞이지 않을 것 같던 국가들의 조합이 혼란했던 중동정세의 안정과 중동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서 최근까지 중동, 중국, 그리고 미국의 국제관계 동태에 대해서 살펴보자.


눈 녹듯이 사라진중동 긴장

이슬람 양대파 종주국인 사우디(수니파)와 이란(시아파)은 오랫동안 앙숙이었다. 1979년 란혁명(이슬람혁명) 이후 혁명이념을 주변국으로 확산시키려는 이란의 움직임을 수니파 왕정국가들(사우디·요르단·모로코·브루나이)이 심각한 체제 위협으로 간주했다. 2016년 사우디가 시아파 인사들을 테러 혐의로 처형한 일이 있었는데, 분노한 이란 시위대가 주이란 사우디 대사관을 습격한 직후 사우디는 이란과의 단교를 선언했다. 이후 최근까지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사우디의 내부적 상황은 빈 살만 왕세자의 확고한 영향력 안에서 안정권에 접어 들었다는 평가가 많다. 빈 살만이 추진 중인 국가개혁프로젝트 「사우디 비전 2030」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국내외 위협요소의 제거가 전제돼야 한다. 이에 따라 가장 큰 외부적 위협의 핵심인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는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한편 2018년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 복원 이후, 이란은 더욱 악화된 경제난에 처했다. 이란 입장에서는 이슬람 혁명 확산을 통한 중동지역 패권 확보는 잠시 유보하고, 사우디와의 관계개선을 통해 실질적 경제이익을 택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목숨을 부지해야 훗날을 도모하든 말든 할 것이 아닌가. 베이징 합의 이후, 사우디는 10년 넘게 단절했던 시리아와의 관계 복원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준비, 일대일로

2013년 8월 중국은 국제정세가 신냉전으로 흘러갈 것에 대비하여, '하나의 띠, 하나의 길'(OBOR, One Belt One Road)이라는 의미를 가진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을 발표한다. 이 계획은 중국에서 아프리카까지를 육해공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을 통해, 미국 중심의 서방국가에 대항하여 세력균형을 맞출 수 있는 중국 중심의 국가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일대일로 실크로드 출처 서울신문
일대일로 실크로드 [출처:서울신문]

목표 1) 군사 전략

2000년 초부터 중국은 인도양 주변(파키스탄·미얀마·방글라데시)에 대규모 항만건설 전략을 세웠다. 한·중·일 3국이 사용하는 원유의 80%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 둘러싸인 말라카 해협(Strait of Malacca)을 통과해야 한다. 만약 미국과의 전쟁이 발생하면 말라카 해협은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미국이 말라카 해협을 봉쇄함으로써 중국으로의 에너지 공급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라카 해협을 에워싼 친미국가들을 우회하려는 중국의 OBOR 경로 고민을 계속 이어졌었다. 하지만 OBOR 육상경로는 아프가니스탄-이란-시리아-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지나고, 해상경로는 말라카 해협과 해적 출목지역들을 지나도록 계획되었다. 이렇게 갈등이 고조된 지역들을 지나는 경로들은 이해관계의 전복으로 인해 언제든 폐쇄될 위험이 있다.

목표 2) 경제 전략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중국은 글로벌 생산기지의 역할을 해오면서, 최종 생산품을 선진국에 수출하면서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서방수요의 한계(심지어 유사시 적대국)로 인해 경제성장은 정체되었고, 서방 외의 새로운 수요처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물색한 대안국가들이 개발도상국이며, 중국은 개발도상국에 자본을 제공하여 사회기반시설 (Infrastructure, Infra) 개발을 통한 성장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애초에 중국은 개발도상국과의 윈-윈(Win-Win)할 의도는 없어 보였다.

OBOR 투자의 기본원리는 중국정부가 자본을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인프라 건설 등의 사업권을 중국기업이 획득하는 것으로, 이렇게 수주한 중국기업은 중국산 건설자재와 중국인 노동자를 동원하여 공사를 진행한다. 인프라 사업이 종료되는 시점에서의 정산표을 보면, 중국정부와 중국기업은 각각 채권과 자본, 개발도상국은 부채와 인프라가 남게 된다. 결국 현금흐름상 중국정부의 자본이 중국기업으로 흘러가면서, 중국정부는 채권을 챙기게 된다. 여기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중국기업은 공사비와 인건비를 과대하게 부풀린다면, 중국투자를 받은 개발도상국은 막대한 부채를 안게 된다. COVID-19로 인해 부채를 못 갚으면서 인프라 마저 중국에 빼앗겼는데, 결국 중국은 채권·자본·실물(인프라)까지 다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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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군비경쟁 유도, 미국의 전략

말라카 해협은 태평양에서 중동까지 연결된 최단거리 항로이며, 그 항로 중간에 위치한 남중국해의 난사군도(Spratly Islands)는 전세계 석유 매장량의 1/4 가량이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전략적 요충지다. 난사군도는 중국·베트남·필리핀·브루나이 등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해관계가 복잡한 해역으로, 중국은 인공섬을 건설하면서까지 난사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은 난사군도가 중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취지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여, 중국이 패배했다. 하지만 중국은 국제법을 무시하고 남사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한편, 미국은 국제법을 내세우며 전략자산을 전개하는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 작전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의도는 중국을 향해 군사적 압박을 가하면 중국이 불가피하게 해군력을 강화하면서 군비경쟁 레이스(Arms race)에 동참할 것이라는 것이다. 과거 소련을 무너트린 전략으로 중국도 자멸하게 할 의도인 것이다. 최근 중국의 대만침공 이슈와 관련해서도, 미국은 참전 늬앙스를 던지면서 군비경쟁 레이스의 참여를 더 자극하고 있다.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 영토분쟁지역 출처 매일경제 서울신문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 영토분쟁지역 [출처:(좌)매일경제,(우)서울신문]

 

신의 한수, 중국의 외교적 기습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위해 중동 정세에 관여해 왔으나, 셰일오일이 생산된 이후부터 중동에 관여를 줄이면서 공백이 생겨왔다. 최근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신재생 에너지에 밀려 셰일오일 생산이 불안정해지자, 미국은 다시 중동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2022년 2월 시작된 러우전쟁으로 인해 신냉전 상황이 생각보다 빠르게 도래하면서 중국은 다급했겠지만, 이번에 성공적인 외교 수완을 통한 베이징 합의로 미국의 공백을 메운 형상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자발적인 후퇴로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처를 확보한 것이다. 현재 중국정부의 영향 아래 있는 미얀마의 항구에서부터 중국 국경까지 송유관만 건설한다면, 미군이 지키고 있는 기존 수입 루트인 말라카 해협을 거치지 않더라 우방으로 변한 중동으로부터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에 중국이 OBOR 사업을 하면서 Infra 투자를 해주고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지워서 획득한 스리랑카의 항구 등에 중국의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된다면, 중국은 전시에도 원유 공급선을 방어할 수 있게 되어 미국의 영향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의 아시아 장악력은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베이징 합의로 가장 큰 수혜를 본 나라는 중국인데, OBOR Infra 투자·개발의 결실을 활용하여 중동 자원의 안정적 공급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동 관여를 줄이면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자 추진 중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에 큰 충격과 부담을 안겨줌으로써 중동지역 내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미국은 중국의 역할을 평가절하하는 수준으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지만, 서둘러 대책을 수립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에너지 패권과 경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가지고 나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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