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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인생에서 난이도 높은 교과, 법

by Spacewizard 202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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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는 통계자료에 기반하여 보험상품을 출시하는데, 그 전반적인 과정에서 보험계리사가 관여한다. 계리(計理, actuary)는 위험보장(보험료 산출, 책임준비금 계상의 적정성 확인 등)과 관련하여 보험사의 수입·적립하는 금액을 통계적·수리적 방법으로 계산·평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실무에서 보험계리사는 기본적인 계리업무 외에도 보험사의 전반적인 위험을 분석·평가·진단하고, 보험상품 개발에 대한 인허가 업무도 수행한다. 보험업은 확률을 다루는 대표적인 업종으로, 아래의 말이 있다.

"보험의 통계의 예술"

 

보험상품은 과거 통계치를 바탕으로 하지만, 미래의 가정을 전제된다. 설계변수들의 예상경로 이탈로 보험사가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이전 글 <정책적으로 변신하는, 의료실비>에서도 계리사들이 가입자들에게 유리한 보험을 잘못 설계하여 보험사들이 지속적인 손실구간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언급했었다. 특히 금리상품·실비보험·암보험과 같이 손해평가가 수월(명확)한 보험상품의 경우가 그러하다. 하지만 배상책임보험과 같이 손해평가가 애매한 보험상품은 피보험자가 보상금을 받는 일이 쉽지 않아, 보험금에 대한 분쟁이 잦다. 오늘은 보험금에 대한 분쟁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소송회피성향을 가진, 보험소비자

 

보험사가 보험소비자를 다룰 때 소송이라는 무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 이는 확률적으로 지급보험금을 낮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보험금에 관한 분쟁에 있어서 보험사는 약관(보상기준)을 엄격히 적용하여 보상금을 줄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체로 재판을 통한 판결금액이 보험사가 제시한 합의금보다는 높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민사소송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음에도, 대다수의 보험소비자들은 소송을 꺼려하기 마련이다. 소송 자체에 대한 낯섦·두려움도 있겠지만, 소송비용(변호사보수·인지대·신체감정비용·시간비용·정신비용)의 부담이 더 크다. 결국 보험소비자들은 적정 보상금을 다투는 싸움에 뛰어들기 전에, 보험사가 제시하는 최소한의 보상금에 만족하게 된다.

 

그렇다고 다수의 보험소비자로부터 얻은 보험금 절감액이 전부 보험사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보험사의 의도를 파악한 소수의 보험소비자들은 망설임 없이 소송을 전개함으로써, 더 많은 보상금을 받아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보험금은 정보·부의 비대칭에 따른 보험소비자들 간의 유사 제로섬게임이며, 매개역할을 한 보험사는 중간에서 남은 이익을 취하게 된다. 물론 아무리 날고기는 보험소비자라도 보험사로부터 만족할 만한 보험금을 가져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보험사들의 실적은 매년 사상최고치를 달성하게 된다.

 

보험사도 내심 피하고 싶은, 소송

 

보험사의 업무프로세스(매뉴얼)은 소비자심리를 잘 활용하게끔 체계화(시스템)되어 있을 것이다. 우선 소장을 받은 보험사(피고)는 소송의 소가가 적절하다면, 재판 전에 소취하·보상합의를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 소가(訴價)는 원고가 청구취지로서 구하는 범위 내에서 전부승소할 경우에 직접 받게 될 경제적 이익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정한 금액을 의미한다. 이 때의 합의조건은 소제기 전에 비해 높아질 수 있는데, 보통 보험사들이 소제기 전에는 보험소비자의 소송회피성향을 간파하여 최소보상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소제기로 인해 2라운드에 돌입한 보험사는 소송편익·합의편익을 비교형량하게 될 것이고, 이전의 보상금보다 높은 수준의 균형보상금을 제시할 것이다. 균형보상금은 통상 예상판결금액(내지 화해금액)의 70~90% 수준이라고 하는데, 보험사는 이를 판결금액과 유사한 수준라고 설명한다. 명목금액은 상이한 것을 사실이지만, 피해자가 부담해야 할 소송진행비용(소송비용·시간비용·정신비용)을 할인한 금액인 것이다. 사실상 소송에 돌입하기 전의 마지막 (deal)이다. 피보험자(원고)가 2라운드에서 제안된 합의금액에 만족하지 못하면, 3라운드(재판)에 돌입하게 된다. 만약 소가가 너무 높은 수준이면, 보험사가 소송 전 합의를 포기하고 바로 소송에 돌입할 수도 있다.

 

상해 관련 보험금 소송의 필수, 신체감정

 

상해에 관한 보험금 소송이 진행된다면, 법원은 신체감정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장해의 여부·정도와 함께 향후치료비 등을 객관적으로 확인받기 위함인데, 개인적 경험으로는 소장을 접수한 날로부터 6개월 뒤에 감정촉탁병원이 지정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소송의 당사자는 소장에서 주장하는 사실을 입증·반증하기 위해 증거조사를 신청하게 되는데, 보통은 소장이 제출된 직후에 신청한다. 이는 손해배상소송에서는 변론기일 전에 모든 증거조사를 완료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신청이 없는 경우에는 법원이 증거신청을 촉구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변론기일 이후에는 추가적인 증거조사·증거제출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소송기간의 지연을 막기 위함이다. 가장 많이 신청하는 증거조사로는 문서송부촉탁신청(수사기관 조사기록, 진료기록 등)과 신체감정촉탁신청(감정촉탁병원 장해감정)가 있다.

 

법원이 신체감정촉탁신청을 받아들이면, 법원은 지정한 감정촉탁병원을 당사자에게 통보한다. 최근 의료파업으로 신체감정일의 지정이 지연되는 경향이 있지만, 감청촉탁병원에서 방문일·담당의사를 문자로 보내준다. 이외로 메이저병원이 지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분당서울대병원이 지정된 바 있다. 신체감정결과가 법원에 회신되면, 피해자는 감정결과를 근거로 보상청구의 변경·확장을 하게 된다. 이후 재판부에서는 변론기일을 지정·통보하고, 당사자들은 변론기일 전까지 준비서면을 작성·제출한다. 변론이 1회 이상 진행되어 종결되면, 보통은 재판부에서 화해권고·강제조정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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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에 앞서, 중재

 

인간사회에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갈등·분쟁이 빈번함에 따라, 누군가의 중재·조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특히 성인들 간의 갈등·분쟁 상황에서는 법률적인 중재가 필요하다. 소송실무에서 화해·조정은 아래와 같다.

 

화해 : 당사자 간의 합의

임의조정 : 판사의 조정안에 대해 당사자들의 합의

강제조정 : 판사가 강제적으로 조정안 제시

화해권고 : 판사가 화해안 권고

 

화해를 제외하고는, 판사가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화해·임의조정은 사실상 소송종결이기에, 당사자들이 판사실·법정을 나선 후에는 더 이상 이의신청·항소·상고를 할 수 없다. 화해권고결정·강제조정은 판사가 결정하여 결정문을 당사자들에게 보내면, 당사자들이 14일 동안 이의여부를 고민하게 된다. 이의신청기간 내에 일방이 이의하면 그 결정은 없던 것으로 되어 재판이 다시 진행되지만, 양쪽 모두 이의하지 않으면 그 결정대로 사건이 확정된다. 참고로 결정문에는 화해권고는 「화해권고 결정」, 강제조정은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으로 기재된다. 2002년 개정된 「민사소송법」에서 화해권고결정이 신설되었는데, 결정기일 지정과 상관없이 소송 중 언제라도 화해안을 권고할 수 있게끔 하였다. 더 나아가 화해권고결정에 이의가 있어도 곧바로 결심·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재화해권고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손해배상소송에서는 90% 가까이 강제조정·화해권고가 진행된다고 하는데, 이는 신속한 분쟁해결이라는 명목상 목적이 있다. 실무적으로는 판결문을 쓰지 않아도 되는 편의성과 판사들의 인사고과와도 연관된다고도 한다. 화해권고·강제조정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이의신청이 있다면, 법원은 최종적인 판결을 선고한다.

 

소송기간은 소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장해이슈가 소가를 높이는 요인이 되는데, 법원이 장해도·과실·손해액를 책정함에 있어 수사기관·감정기관의 자료가 필요하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보통 소장 접수 후 10개월 이상의 소송기간을 염두해 둬야 하는데, 이는 감정촉탁병원·감정담당의사의 지정까지 6개월, 신체감정에 2개월 가량 소요되기 때문이다. 만약 일방이 신체감정에 대해 사실조회(이의)를 하게 되거나, 재감정을 하는 경우에는 1년을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재감정은 법원에서 거의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소송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과거에는 화해로 풀릴 만한 사소한 문제들도 법원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점차 커지고 있다. 따라서 삶에 대한 예지력을 높여주기 위해, 분쟁을 공적(법적)으로 처리할 줄 아는 능력이 요구된다. 물론 필수역량은 아니지만 충분역량이다. 일생동안 고소·고발에 휘말릴 일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막상 일이 닥치고 대응하려면 늦고, 시간·비용·정신적으로 감수해야 할 비용이 커진다. 오늘날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시켜주는 법률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에 매우 정제되고 표준화되어 있다. 채 100년도 되지 않은 법체계가 수천만명을 통제하려다 보니, 아무리 쉽게 정제시키려해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변호사가 필요하다. 변호사 비용은 법을 활용하지 못함으로써 놓치게 되는 기회수익을 고려하면 비싼 편이 아닐 수도 있다. 고도화된 법률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혹시 모를 소송에 대한 비용도 염두에 둬야 한다. 요즘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학부모로부터의 고소에 대비하여 법률자문에 관한 보험을 많이 가입한다고 들었다.

 

소송을 막상 진행하면 추후 패소시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까지 부담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 걱정이 생긴다. 대부분의 판결문에는 비용정산 주문이 기재되어 있다. 합의·화해권고·조정에 의해 소송이 종료된 경우에는 소송비용를 별도로 정산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변호사 비용은 각자가 부담한다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판결은 소송에 이른 책임에 따라 부담시키는데, 보통 상호 간의 일정비율(청구금액 대비 판결금액)을 부담하게 한다. 대체로 원고의 소가에는 자신의 과실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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