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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법

금방 끝나지 않는, 신체감정

by Spacewizard 202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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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여름 분당서울대병원에 신체감정을 다녀왔다. 매번 느꼈지만, 9~15시 동안 대형병원의 주차는 만만치가 않다. 자차를 이용한다면 진료시작 1시간 전에는 도착한다는 마음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특히 분당서울대병원은 주차장에서 병원본관까지 동선이 꽤 길다. 다행히 예약시간 30분 전에 진료실 앞에 도착했는데, 외래환자들의 대기로 인해 30분 늦게 담당의와 만났다.

 

여러 측면을 평가하는, 신체감정

 

법원에서 건네받은 자료(서면·영상)을 살펴보더니, 현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X레이 촬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감정촉탁병원에서는 별도의 영상촬영을 요구하는데, 이는 신체감정서에 보완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신체감정은 과목당 40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이는 해외사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준이라고 한다. 추가비용은 개인적으로는 10만원 상당의 X레이에서 그쳤지만, CT·MRI가 필요할 경우 비용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다. X레이 촬영 후에는 감정의사가 직접 부상부위를 요리조리 돌려보면서 관절의 운동각도를 측정하면서, 사고상황에 대한 몇 가지 질의응답으로 신체감정은 마무리되었다. 신체감정서에 기재되는 항목들은 다음과 같다.

 

부상정도와 현재 상태

기왕증 또는 체질적 소인이 있는지 여부

사고와 관련이 있는지

신체적 장해 정도·잔존기간(영구·한시), 여명단축 여부

향후치료가 필요한지와 그 금액·치료기간

개호가 얼마나 필요한지와 개호기간

보조기구 등이 필요한지와 보조기구의 내용연수 등

 

직업에 따라 달라지는, 노동능력상실율

 

발목관절의 꺾이는 각도는 2가지 방향(상하·좌우)에서 측정하는데, 각도제한에 따라 「장해없음」 내지 장해율(10·12·14·23%)로 평가된다. 발목골절에서 가장 많이 채택되는 장해율을 14%이라고 하지만, 감정의사의 마지막 멘트가 의미심장했다.

"근데 혹시 무슨 일을 하시나요?"

 

감정촉탁회신은 신체감정일로부터 보름도 채 되지 않은 빠른 시일 내에 변호사 사무실에 도착했다. 경험 많은 감정의사에게 발목골절과 같은 흔한 장해를 평가하는 일은 어렵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체감정서 내용 중에서 전혀 예상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직업계수였다. 동일한 신체부위라도 사람마다 직업·경제력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달리 평가하여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 정당하다. 이를 위해 직업계수를 감안하여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데, 맥브라이드 장해평가방법에만 적용된다.

 

이전 글 <아는 만큼 보이는, 배상책임보험>에서도 맥브라이드 방식은 인체의 노동능력 상실에 대한 평가를 직업·장해부위를 백분율로 세분화·도표화한 것이라고 언급했었지만, 실제 직업계수를 확인하면서 그 정의에 대해서 실감하게 되었다. 맥브라이드 방식은 279개의 직종에 따라 신체부위에 따른 직업계수를 달리 규정하고 있는데, 30세의 일반육체노동자를 기준으로 취업의 가능성을 판단하여 나이 1살 당 0.5% 내지 1%를 가감하도록 한다. 하지만 복잡하고 번거로운 탓에 실무에서는 연령에 따른 증감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맥브라이드 방식은 279개 직종이 직업 이외에 ​직종들(사무직·서비스직 등)에 대해서는 직업계수가 잘 반영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기대보다 낮은 노동능력상실율을 평가 받았다면, 직업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니 참고해야 할 것이다. 특히 노동집약적 직업을 가진 이들은 신체감정서에 표기된 직업계수의 적정성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도 있다. 신체감정결과 회신에 따라 손해액을 확정하게 되는데, 이를 「청구취지 확장 및 변경신청」이라 한다.

 

법원에서 절대적이지 않은, 감정의견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소제기 전에 사적합의 차원에서 발급받은 장해진단서는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인데, 합의불발 후 소송에서는 오직 법원이 지정한 병원의 장해진단서만 의미가 있다. 의사가 발급하는 장해진단서·신체감정서는 다양한 평가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행해지지만, 감정의사의 주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동일한 상해 부위라도 감정의사에 따라 다른 평가결과가 나올 수 있다. 대법원은 노동능력상실률(장해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입장이다.

 

노동능력상실률을 적용하는 방법에 따라 일실이익을 산정할 경우, 노동능력상실률은 단순한 의학적 신체기능장애율이 아니라 피해자의 연령, 교육 정도, 종전 직업의 성질과 직업경력, 기능 숙련 정도, 신체기능장애 정도 및 유사직종이나 타 직종의 전업가능성과 그 확률 기타 사회적·경제적 조건을 모두 참작하여 경험칙에 따라 정한 수익상실률로서 합리적이고 객관성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노동능력상실률을 정하기 위한 보조자료의 하나인 의학적 신체기능장애율 및 그에 대한 감정인의 감정결과 등은 사실인정에 관하여 특별한 지식과 경험, 통계치 등을 요하는 경우에 법관이 이용하는 참고자료에 불과한 것으로...

 

하지만 법원은 직접 촉탁한 감정의사의 신체감정서를 대체적으로 신뢰·수용하는데, 이는 의학적 전문지식이 없는 판사는 전문가의 견해를 근거로 하여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피고측에서 재감정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또한 판사가 직권으로 노동능력상실률·장해기간을 조정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감정의견에 대한 불만, 사실조회

 

보험사는 보험금청구소송에서 신체감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최대한의 인프라를 동원하여 유리한 자료를 수집·제출할 것이다. 또한 회신된 감정서에 불리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있다면, 피고는 사실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조회기 제출된 감정서에 대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로, 감정주체에게 재평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보험사와 계약된 로펌은 왠만하면 사실조회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은데, 조치할 수 있는 모든 법적 행위를 취하고 있다는 인상을 발주사(보험사)에게 비춰줘야 하지 않을까. 사실조회 항 사항에 유도질문을 넣는 경우도 많다. 

 

실조회 회신서(재회신)」를 통해 감정결과가 간혹 바뀌기도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감정의사를 설득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의 보강이 필요하다. 사실조회가 효과적인 경우는 감정의견이 과도하게 애매·부실하거나 의견제시를 거부할 때이다. 대부분의 감정의사는 10페이지 이상의 충실한 감정의견을 제시하기 때문에, 재회신에서 감정결과가 바뀔 가능성이 낮다. 또한 감정인은 이미 제출된 자신의 감정서에 대하여 방어적 성향을 가지게 마련이므로, 탄핵효과는 크지 않다. 결국 부실한 감정의사는 여전히 부실한 의견서를 제출할 가능성이 높고, 충실한 감정의사는 충실한 의견서를 고수할 것이다.

 

사실조회를 명분으로 변론을 속행할 경우, 소송기간이 2개월 이상 늘어나게 된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사실조회가 끝나면 재판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드는데, 이후 재판장은 화해·조정을 권하게 된다. 교통사고·산재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소송 대부분은 조정을 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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