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우주를 떠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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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누구나 알지만 대부분 모르는 내용이 많다. 태극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으면, 초등학생도 그릴 줄 안다. 하지만 태극기의 디자인 원리나 만들어진 계기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국민의 정신이 담긴 태극는 마치 무속이나 우주적 원리로 치부되면, 이해하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사주명리(四柱命理)은 간지를 사용하여 사람이 태어난 사주(四柱, 4개의 기둥, 연월일시)를 바탕으로 인간의 운명을 추론하는 것으로, 간지(干支)는 오행(목화토금수)을 분화하여 십간(十干)·십이지(十二支)를 조합한 것으로, 육십갑자(六十甲子)라고 한다. 사주명리를 주역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역은 춘추시대 이후 등장한 사주명리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주역과 다른, 사주명리
주역(周易, 주나라의 역)은 주나라의 점서(占書)로, 문왕이 괘사를 짓고 주공(문왕 아들)이 완성했다. 원래 책이름은 역(易, 바뀜·변화)이었는데, 훗날 경(經, 경전)을 붙여 역경(易經)으로도 불렸다. 주역은 「두루 통하는 역」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는 연산역(連山易, 하나라), 귀장역(歸藏易, 은나라) 등 주나라 이전의 점서들을 아우르는 보편성을 보여준다. 공자는 죽간을 엮은 가죽끈이 3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주역을 많이 읽었다고 전해지며, 진한 이후 유교경전으로 여겨졌다.
주역은 팔괘(八卦, 하늘·땅·바람·물·산·호수·불·번개)로 구성되었다고 바라본다. 제사장이 독점하던 하늘의 뜻을 8개의 기호(괘)로 점을 통해 길흉을 판단한 것으로 보아, 신정일치를 벗어나는 시점에서 신(하늘)의 뜻을 집단지성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주만물은 생성→성장→노쇠→죽음이라는 4가지 과정을 반복·순환하면서 변화하는 것을 설명하는데, 그러한 변화가 미래를 예측하는 근거가 된다. 우주·자연·인간이 일정한 변화의 사이클 내에 있다는 전제 하에, 점괘로 인생사에서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사주명리학의 기본, 오행
사주명리는 주역에서의 8개(팔괘) 요소를 5개(오행)로 단순·통합했고, 주역과 달리 하늘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제거함으로써 유물론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우주는 오행(五行, 5가지 기운, 목화토금수)으로 구성되며, 이 기운들은 서로 관계(상호작용)를 맺고 있다. 오행은 물질이 아닌 기운(행동양식)이며, 행(行)은 운행방향·운동성향을 의미한다. 오행의 관계는 자연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패턴으로, 계절과 그에 따른 생명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오행관계에서 출발한 것이 동양철학(도가·유가)과 사주명리이다. 동양철학이 넓은 범위의 접근인 반면, 사주명리는 개인의 삶 차원에서의 해석이다.
오행은 오랫동안 다양하게 활용되어 왔는데, 풍수지리·한의학·굿·한글이 대표적이다. 무당이 굿을 하듯이, 한의사를 한무당으로 비하하는 표현도 추상적인 오행에 근거하기 때문일 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설명하는 한글의 음성원리에 따르면, 자음·모음은 각각 오행·음양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전 글 <조선여성의 핫플레이스, 숙정문>에서는 조선시대 굳게 닫혔던 북문들이 음양오행설에 따라 개방되기도 했었다고 언급하면서, 오방에 따른 오행·음양을 표로 나타냈었다. 이를 순서를 바꿔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오행의 관계, 생극
오행의 관계는 다음 2가지로 구분되는데, 이는 사주명리학의 기본이다.
생(生)하는 관계 : 살려주고 받쳐주고 토대가 되는 관계
극(剋)하는 관계 : 제어하고 억제하고 다스리는 관계
생하는 관계는 순차적이라서 이해가 수월한데, 이는 목생화·화생토·토생금·금생수·수생목이다. 하지만 극하는 관계는 하나씩 건너 뛰면서 관계를 맺는데, 뭔가 부자연스러움을 연상하면 된다. 누군가가 나를 극한다면, 나도 무의식적으로 다른 대상을 극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흔히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이 맞지 않고 충돌하는 것을 상극(相剋)이라고 표현하는데,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를 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상극은 다음과 같다.
목극토 : 나무가 흙을 파헤치고 빈곤하게 한다
토극수 : 흙으로 제방을 쌓아 물을 가둔다
수극화 : 물이 사방으로 요동치는 불을 잠재운다
화극금 : 뜨거운 불이 쇠를 녹인다
금극목 : 쇠도끼로 나무를 자른다
결국 생이든 극이든 모든 관계는 순환·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오행을 생극으로 연결한 관계를 상생상극이라고 한다. 사주명리는 생극의 조화·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이는 생이 넘치는 사람에게 극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극에 치우친 사람에게 생하는 방법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오행의 생극을 인간이 삶에 맞춰서 탄력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대립하면서도 의존하는, 음양
사주해석에 있어서 음양의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음양이라 하면 로맨스를 쉽게 떠올리지만, 우주의 기운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노자는 세계의 존재형식이 새끼줄 모양처럼 대립되는 두 가닥의 꼬임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대립되면서도 의존하는 두 가닥이 음양이다. 음양은 대립되는 고정개념(흑백·선악·고저)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대편을 향해 나아가는 변화개념이다. 극단으로 치우친 음양은 이내 균형점을 향해 움직이는데, 이를 표시한 문양이 태극무늬이다. 태극(太極)무늬는 탄생·성장·죽음이라는 순환고리를 담고 있는데, 달이 차면 기울고,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송나라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태극도설(太極圖說)은 도학에서의 형이상적 사유와 도덕론의 기본방향을 제시하였는데,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무극이면서 태극), 음양, 오행, 인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극(極)은 진(盡, 행하여 다함)하여 일도에 달(達, 닿은)한 곳인 반면, 무극은 진하였음에도 오히려 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태극은 현상의 궁극·존재의 배후에 있는 원인이다.
음양의 상징하는, 태극기
1875년(고종 12) 강화도 근처에서 일어난 운요호 사건 이후, 1876년 1월 강화도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조선은 국기(國旗)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일본은 일본국기가 게양된 운요호를 강조했던 것이다. 결국 운요호가 출현한 지 8년이 지나서야, 조선은 국기를 제정했다.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조선조정은 다음의 방일단을 꾸렸으며, 점차 일본과의 교류와 서구열강의 개항에 대한 압박을 받았다. 이에 조선조정은 국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876년 : 1차 수신사
1880년 : 2차 수신사
1881년 : 일본시찰단(신사유람단)
1882년 : 3차 수신사
1881년 9월 이종원(충청도관찰사)이 고종에게 국기제정에 대한 장계를 올렸고, 1882년 5월 제물포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과정에서 국기제작이 구체화되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마젠중(馬建忠, 청국특사)는 속국인 조선에게 청국기(황룡기)와 유사한 청운홍룡기(靑雲紅龍旗)를 게양할 것을 강요했으나, 슈펠트(Shufeldt, 미국 전권특사)는 조선대표에게 국기를 제정·사용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은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김홍집은 이응준(역관)에게 즉각적으로 국기제작을 명했고, 최초의 태극기 도안은 스와타라(Swatara, 미국선박) 내에서 급박하게 제작되었다. 결국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에서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가 나란히 게양되었다고 한다.
그 전까지 왕조국가 조선에는 국기 대신 어기(御旗, 태극팔괘도)가 있었는데, 태극기는 태극팔괘도를 일부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1882년 미 해군부이 「해양국가의 깃발들 : Flags of Maritime Nations」를 발간했는데, 여기에는 당시 세계 49개국 154점의 깃발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 태극기로 추정되는 문양 위에는 Corea와 아래에는 Ensign(선적기)이라는 표기가 있다. 선적기는 선박의 국적을 나타내니, 국기라고 볼 수도 있다.
1882년 8월 22세의 박영효는 임오군란의 피해를 수습하기 위해 특명전권대신(겸 제3차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했다. 박영효는 일본으로 가는 선상에서 태극기를 제작했으며, 디자인은 해외 각국 깃발에 대한 지식이 많은 영국인 선장과 의논했다고 한다. 영국인 선장은 시각적 단순화와 수월한 모방을 위해 8괘를 4괘로 줄이자는 제안을 했고, 이에 3개의 시안을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받은 고종은 1883년 3월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하였다. 이응준과 달리, 박영효는 4괘의 좌우 위치를 바꿨고, 이는 오늘날 태극기 원형이 된다.
태극기는 다음과 같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
흰색 바탕 : 평화
태극 문양 : 음양의 조화
4괘(건곤감리·乾坤坎離) : 하늘·땅·물·불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국기가 사용된 이유는 공포할 당시 국기제작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공식적이지만, 이상재가 1년 먼저 태극기를 제작했다는 설이 있다. 1881년 1월 이상재는 일본시찰단(신사유람단)에서 박정양(단장)의 비서로 동행했는데, 일본으로 가는 선박에서 박정양의 지시로 깃발을 도안했다는 것이다. 박정양은 일본에 입국할 때 조선을 대표하는 깃발이 있기를 바랬을 수도 있다. 이상재는 구한말 문신으로, 주역과 태극도설에 조예가 깊었던 만큼 태극기 제작원리에 대한 이해가 깊었을 가능성이 있다. 주역은 여전히 하늘을 존귀한 존재로 여긴다는 점에서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훗날 사주명리라는 한 단계 발전한 유물론적 사고가 등장하는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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