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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법

금수저를 스스로 놓은, 싯다르타

by Spacewizard 2024.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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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무슨 종교를 믿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불교라고 대답했는데, 이는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신자이기 때문이었다. 근 30여년 전부터 매월 초파일이면, 어머니는 대구 팔공산으로 기도를 다니셨다. 아버지의 사업번창을 기원하고 하셨을 것이고, 자식들의 학업성취와 가족·친지의 건강도 기원했을 것이다. 어쨎든 40대 중반인 현재까지도 그럭저럭 잘 살아오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불심·공덕 덕분이라 여겨진다.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에서는 킬러 이성조(서현우 분)가 사람을 죽이기 전에 '성불'하라는 말을 건네는 장면들이 나온다. 수 많은 사람을 죽인 킬러인 만큼, 지옥에 갈 운명을 가진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일지도 모른다. 「부처가 된다」로 직역되는 성불(成佛)깨달음을 통해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며, 깨달음에 완전히 이른 존재부처라고 한다. 부처와 함께 많이 쓰이는 보살 부처가 될 조건을 갖췄지만, 아직 세상에 남아서 중생들을 살피는 존재이다. 즉 자의적으로 성불을 하지 않는 존재이다. 보통은 사찰에서 법회를 마친 후에, 불자들끼리 "성불하십시오"라고 인사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사찰에서 예배를 드린 후, "성불하십시오"하라는 인사말은 그저 형식적인 안부말에 그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일체 중생에게는 다 불성이 깃들어 있으니,
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니다"

 

오늘날 예배를 위해 교회를 찾듯, 사찰을 찾는 많은 불교도가 많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에서는 자족(自足)의 삶을 강조하는데, 물론 다른 종교에서도 스스로의 개척을 강조하긴 하지만, 상대적에서 불교가 더 강조하는 듯하다. 자족은 흔히 하는 말로 '잡은 물고기가 아닌,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미 불심이 깊은 불교도들은 장소(사찰)에 연연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든 성불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석가모니도 남을 예배하기 보다는, 스스로가 불성이 되기 위해 정진하라고 아래와 같이 말했다.

"나를 믿지 말고,
그대 자신을 의지처로 삼으라"

 

불교의 모태, 고대 인도

 

아리아인은 중앙아시아 코카사스 북부를 원거지로 하는 유목민족이다. 훗날 서쪽으로 이동한 아리아인은 유럽의 여러 종족을 이뤘고,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아인은 파키스탄의 초원지대에서 유목민이 되었다. 동아리아인은 오늘날 인도·이란의 선조이며, BC 13세기 일부 동아리아인(훗날 인도-아리아인)은 다시 인더스강 상류로 이동·정착하게 된다. 부족 중심의 사회를 형성한 인도-아리아인은 최고지도자를 라잔이라 불렀으며, 집대성한 베다(veda)경전을 바탕으로 바라문를 만들었다. 인도-아리아인들은 다시 동남쪽으로 이동하여 갠지스강과 야무나강 사이의 평원지대에서 바라문교 사제를 중심으로 한 씨족농촌사회를 형성했다. 제식의 발전으로 제식규정 범서(梵書, 브라흐마나)가 편찬되고, 사제는 전문지식을 통해 직책을 세습했다. 베다에 능통한 사제는 신과 같은 존재로 인정받을 정도로 제식이 만능화되어 갔고,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사회적으로 사성계급이 정립되었다.

 

브라마나(Brahmana, 바라문·婆羅門) : 제사장(아리아인)

크샤트리아(Kshatriya) : 왕족(아리아인)

바이샤(Vaishya) : 평민(아리아인)

슈드라(Shudra) : 노예(피정복민)

불가촉천민 : 계급 외

 

역사상의 부처, 고타마 시다르

 

약 2,600여년 전 붓다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artha)는 석가족의 성자」라는 의미를 가진 샤키아무니(Sakyamuni, 석가모니)로도 불린다. 참고로 「우수한 소」라는 의미를 가진 고타마가 성이다. 당시 히말라야산 기슭(현 네팔 남부)에는 석가(Sakya, 샤키아)족이 세운 몇 개의 작은 왕국(성)이 있었다. 범어 붓다(Budha)는 원래 「진실하고 어진 사람」을 의미하는데, 불교에서는 중생과 대비하여 「깨달은 자」를 의미한다. 중국으로 전해진 붓다는 불타(佛陀, 부처)로 음역되었고, 이를 더 줄여 (佛)이라 했다. 인(人, 사람)과 불(弗, 아닐)의 합성어로, 사람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부처는 여래(如來, 여실히 오실 자) 내지 세존(世尊,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으로도 불린다. 석가모니 이전에 다음과 같이 6명의 붓다가 있었다고 하는데, 장업겁(莊嚴劫)에 나타난 3불과 현겁(賢劫)에 나타난 3불이다.

 

비바시불(毘婆尸佛) : 장업겁

시기불(尸棄佛) : 장업겁

비사부불(毘舍浮佛) : 장업겁

구류손불(拘留孫佛) : 현겁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 현겁

가섭불(迦葉佛) : 현겁

 

BC 624년 고타마 싯다르타는 카필라성(석가족 왕국 중의 하나) 성주 슈도다나과 마야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카필라성은 코살라국에 복속되어 있었다. 훗날 석가모니가 죽기 전에 카필라성은 코살라국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석가모니는 3차례에 걸쳐 침공길에 가로막고 앉아서 회군시켰지만, 4번째 침공에서는 석가모니도 인과응보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싯다르타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더니 양손으로 하늘·땅을 가리키며 아래와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는데, 범상치 않은 인물이 될 복선으로 「천하의 내가 가장 존귀하며 괴로움으로부터 편안케 하겠다」는 뜻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개계곡 아당안지"

 

왕자가 태어난 지 닷새 째 되던 날, 왕 슈도다나(싯다르타 아버지)은 8명의 현자를 왕자의 미래를 점쳐 줄 것을 부탁했다. 이 때 현자들은 「목적을 달성한 자」라는 의미를 가진 싯다르타를 이름으로 지어 주었고, 싯다르타는 전륜성왕(轉輪聖王) 내지 정등각자(正等覺者)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즉 위대한 왕이 되지 않으면, 훌륭한 성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슈도다나 입장에서는 싯다르타가 성자가 아닌 왕이 되기를 원했다. 성자의 길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성장과정에서 궁궐외부와 철저히 차단시키면서 온갖 호사·안락을 제공했다. 어른이 된 싯다르타는 특출한 문무를 갖추게 되었고,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가려진 현실을 인식하면서 시작된, 불안 

 

일국의 태자로서 근 30년 간 풍족한 삶을 누린 고타마는 어느 날 호기심이 생겼다. 궁궐 바깥의 세상에는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당시만 해도 고타마는 성자로서의 자신의 미래를 전혀 생각채 못한 채, 그저 자신의 백성과 땅을 미리 알아보겠다는 취지였다. 결국 슈도다나는 고타마의 외출을 허락했다. 군대에서는 사단장이 방문해도 일주일 가량은 쓸고닦고 난리가 나는데, 태자의 행차길이 오죽했을까. 마부 찬나의 안내를 받은 고타마는 깨끗한 거리와 건강한 백성들을 보게 된다. 하지만 군중 속에서 허리가 굽고 주름진 한 노파를 발견한 고타마는 그 연유를 물었고, 이에 대해 찬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이 보는 것은 늙은 사람이며,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

 

항상 깨끗하고 젋고 건강한 사람만 봐왔던 고타마에게 「늙고 병듦」은 충격이었다. 다음으로 병자·사체를 우연히 목격한 고타마는 「피할 수 없지만 지극히 보편적인 삶」의 부분에 눈을 뜨게 된다. 마지막으로 고타마는 고통에서 해방을 찾는 한 사문을 만났는데, 그 사문의 모습은 평화롭고 침착했다. 「부지런히 공덕을 닦고 악덕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 사문(沙門, 출가수행자)기존의 철학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을 표방하는 수행자일컫는다. 고타마는 처음으로 겪은 3가지 광경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늙고 병들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모든 고통으로부터 보호된 궁궐에서의 평온한 삶이 자신을 철저히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궁궐로 복귀한 싯다르타는 큰 불안을 느꼈지만, 마지막에 목격한 사문의 모습에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길을 스스로 찾을 가능성을 보았다. 싯다르타는 잠부나무(Jambu tree, 자문나무) 아래에서 명상을 통해 삼매를 경험한 후,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범어 사매디(Samādhi)를 음역한 삼매(三昧)는 「고요한 명상·정신집중의 상태」 내지 「깨어있는 상태에서의 고요함」을 의미한다.

 

깨달음을 찾아 떠난, 수행의 길

 

수행의 길을 떠난 싯다르타는 진리에 대한 앎을 갈구하는 철학이 아닌, 실존적 문제(늙음·죽음)를 해결하고자 하는 수행을 하게 된다. 싯다르타가 살았던 BC 700~500년은 여러 부족들이 통합하고 상공업·도시의 발전으로 자산가·신흥대국들이 등장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사성계급제도에 변화가 나타났고, 바라문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문들이 등장했다. 이렇듯 여러 유형의 사문들은 당시 인도문화의 중심지였던 마가다(Magadha)국의 왕사성(王舍城, Rajagrha)에 주로 모여서 수행했다고 한다. 이때 출현한 대표적인 신세력에는 아래와 같이 육사외도(六師外道)가 있었는데, 내도(內道, 불교)와 다른 종교철학체계를 전개했다.

 

도덕부정론(푸라나 카사파) : 현재의 선악행위가 미래에 미치는 영향 없음
칠요소설(파쿠타 카차야나) : 지·수·····영혼 
사요소설·유물론(아지타 케사캄발린) : 행위의 선악은 육체(지·수·화·풍) 와 함께 소멸

숙명론(막칼리 고살라) : 윤회·해탈은 정해진 상황·본성에 의함

불가지론(산자야 베라티풋타) : 진리는 인식·설명이 불가
자이나교(니간타 나타풋타) : 불살생·무소유·불망어·이불여취·불사음·무소득

 

니간타를 제외한 5명은 대체로 유물론적 입장에서 전통적 철학사상(아트만·도덕윤리·윤회 등)을 부정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산자야의 제자였던 사리불(舍利弗)·목련(目連)은 훗날 석가모니의 제자가 된다. 자이나교를 만든 니간타는 해탈에 방해가 되는 업(業)의 유입을 막기 위해 철저한 고행주의를 강조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교세를 유지 중이다.

 

싯다르타는 왕사성에서 2명의 사문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카말라(무소유론)·라마풋다(수정주의)였다. 정신통일을 수행하는 라마풋다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도달한 후에는, 더 나아가 비상(非相, 염상 부정)·비비상(非非相, 비상 부정)의 경지를 추구했다. 이들로부터 명상을 통한 선정수행을 배운 싯다르타는 선정(禪定)에 들면 평온한 마음과 함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남을 깨닫게 된다. 「고요히 생각함, 생각으로 닦음」을 의미하는 범어 드야나(dhyana)를 음역한 선나(禪那)을 줄인 선()과 「생각을 가라앉혀 정신을 집중시킨다」는 정(定)을 합쳐 선정이라 하였는데, 특이하게 음·의가 합쳐진 말이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선정수행의 한계를 곧 느끼게 되는데, 선정에서 깨어난 상태에서는 마음이 다시 혼란해짐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고타마가 택한 다음 수행법은 고행수행이었다. 고행수행은 단식·감식·호흡조절 등 여러 신체활동의 제한을 통해서 정신을 수수하게 하는 방법이다. 단식기간에는 극단적인 식단(하루 겨자씨 1알과 물 1컵)으로 지탱했다고 한다. 이후 6년 동안 육체적 안락과 음식을 억제하는 금욕적인 고행에 의지하면서 명상을 수행하는데 보냈다. 고타마는 고행수행을 위해 네란자라강 근처(현 보드가야)에 있는 고행림으로 들어갔는데, 그 곳에는 버려진 시신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범어 시타바나(Sitavana)를 음역한 시다림(尸陀林)을 고행림(苦行林)으로 불렀으며, 한림(寒林, 차가운 숲)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당시 인도에서는 조장풍습에 따라 시신을 내다 버렸는데, 시신들이 놓여 있던 공동묘지같은 곳이 시다림이었던 것이다. 고행림에서는 싯다르타 외 5명의 고행자들이 함께 했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이들은 슈도다나가 아들의 안위를 염려하여 동행시킨 시자였다. 고타마는 모든 유형의 고행과 그에 따른 고통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도 극단적인 호흡중단·단식을 주로 했다고 한다. 6년 동안 하루하루를 쌀·콩 몇 개로 연명해 온 결과, 흔히 알고 있는 피골상접한 싯다르타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고행 싯다르타 [출처:나무위키]

하지만 6년 간의 처절한 고행에도 늙음·죽음을 극복한 해탈의 경지에는 결국 도달하지 못했다. 어느 날 싯다르타는 한 아이에게 악기연주를 가르치는 스승의 말을 우연히 듣게 되는데, 이를 통해 난 고행이 허사였다는 것을 깨닫고 고행을 중단한다.

 "끈이 너무 느슨하면 악기를 연주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너무 꽉 조여서는 끈이 끊어지게 된다"

 

이때 싯다르타는 6년 만에 처음으로 강물에서 목욕을 한 후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되는데, 어린 소녀(수자타)가 공양한 우유죽이었다. 목욕·우유죽은 고행수행자의 타락으로 비춰졌고, 이에 실망감을 느낀 5명의 사문은 싯다르타를 떠나게 된다. 몇일 동안 공양받은 우유죽으로 기력을 회복한 고타마는 독자적인 수행법에 대해서 숙고했다. 그러나 육체를 욕심의 근원으로 보고, 육체에 고초를 가하는 고행수행에는 모순이 있었다. 바로 정신적 자유에 이르기 위해서는 결국 죽음(육체의 소멸)이 요구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쾌락·고행은 양극단이었고, 양극단 사이의 중도(中道)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싯다르타는 어린시절의 기억 속에서 「욕망이 결여된 평온한 느낌」을 찾게 되는데, 그 느낌의 순간은 나무그늘에 앉아서 깊은 사색에 잠긴 시간이었다. 중도수행 극단적 수행(고행·쾌락)을 추구하지 않은 채로 삼매의 상태로 들어가는 수행으로,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청정한 마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인도보리수 [출처:123RF]

싯다르타는 네란자라강 건너 서쪽 언덕의 삐빨라(Pippala, 인도보리수) 아래에 앉아 수행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고, 「깨달은 자」를 의미하는 붓다가 되었다. 보리(菩提)는 「깨달음의 지혜」를 의미하는 범어 보디(Bodhi)를 음역한 말이다. 그늘을 제공함으로써 석가모니의 영광을 있게 해준 보리수는 불교를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다.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최고의 깨달음)을 이룬 싯다르타는 보리수를 떠나지 않은 채 7일 간 십이인연(十二因緣)을 수차례 반복·검증했다고 한다. 보리수 동북쪽 언덕으로 올라간 싯다르타는 7일 간 앉아서 자신을 지켜준 보리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고 한다. 다시 보리수 서쪽에 위치한 반얀나무(Banyan tree) 아래에 앉아 7일 동안 깨달음의 기쁨을 만끽했다. 반얀나무는 벵골보리수·니그로다(Nigrodha)·니구율수(尼拘律樹)로도 불리며, 삐빨라와는 다른 나무이다. 그 후에도 7일 간격으로 자리를 3번 더 옮기면서 깊은 선정에 빠졌다고 한다. 이후 법천에게 설법했다. 참고로 고급리조트의 이름이기도 한 반얀트리는 넓게 퍼진 형상과 신성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29살의 나이에 출가하여 6년 간의 고행 끝에 35살에 붓다가 된 것이다. 붓다가 된 고타마는 모든 만물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인과(因緣)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연기(緣起)의 이치를 찾았다. 또한 인간들이 끝임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은 인간마음 깊숙히 깃든 번뇌의 뿌리로부터 비롯된다는 것과 현세의 집착을 버릴 때 번뇌를 벗어나 윤회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현세의 모든 괴로움은 이러한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깨닫게 된었다. 이에 붓다 고타마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나의 생은 이것이 마지막이며,
나는 할 일은 모두 마쳤다"

 

물론 싯다르타는 붓다가 된 이후에도 45년을 더 살다가 죽게 된다. 흔히 말하는 3대 종교(불교·기독교·이슬람교)에 포함되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은 부처·보살·석가모니를 구분하지 못한 채 혼용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불교는 종교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느낌을 많이 받는데, 중생들에게 제시해 주는 심오한 개념들이 삶에 대한 고찰을 계속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삶의 지혜·노련함은 자연이 좋아지는 지긋한 나이에 깨우치는 경우가 많은데, 숲·나무 가까이에서 깨달음을 얻은 붓다와 뭔가 닿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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