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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금융투자

보험위험을 흐트리는, 재보험

by Spacewizard 2025.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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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무안공항 제주항공 사고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개인(피해자)이 가입한 개별보험(여행자보험·종신보험 등)은 신속한 청구·지급이 가능하겠지만, 항공사가 가입한 항공보험을 통한 보상절차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될 것이다. 이전 글 <각오해야지 만질 수 있는, 보험금>에서는 배상책임보험에서 개인(피해자)가 청구하는 경우에도, 민사소송으로 이어지면서 짧은 시간에 끝나지 않는 경우를 언급했었다. 일반적으로 항공보험은 기체 뿐만 아니라, 탑승객에 대한 배상책임과 승무원의 상해보험 등을 포함하여 보장하게 되는데, 계약내용이 복잡한 만큼 많은 보험사들이 계약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으며 보상절차도 길고 복잡한 편이다.

 

위험의 분산, 재보험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에 현장조사를 통해 손해사정과 함께 과실유무를 파악해야 하는데, 문제는 재보험이다. 재보험(再保險, reinsurance)은 보험계약자와 무관하게 원수보험사가 가입하는 별도보험으로, 원수보험사가 계약자들로부터 인수한 위험의 일부(내지 전부)를 재보험로 분산(전가)시키는 보험이다. 출재(出再)는 보험사가 다른 보험사에 재보험을 가입하는 것을 말하는 반면, 수재(受再)는 다른 보험사로부터 재보험을 받는 것이다. 출재보험사를 원수보험사라고 하며, 수재보험사가 재보험사이다.

 

재보험사는 원수보험사(생명보험사·손해보험사)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기업(원수보험사)의 위험을 인수하기에 손해보험업에 가깝다. 이전 글 <자본 행세하는 부채, 신종자본증권>에서는 증권사가 SPC로 대출을 하고, 증권사는 그 대출채권을 셀다운으로 유동하는 방식에 대해 언급했었다. 셀다운·재보험은 금융·보험에서 위험을 분산(전가)시킨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고항공기에 가입한 배상책임보험 담보의 보상한도가 최대 10억달러(1.5조원) 가량이라고 전해졌으며, 5개 손해보험사(삼성·KB·DB·메리츠·하나)가 공동인수했다. 삼성화재(간사사)의 비중은 55%로, 해당 항공보험의 99% 이상을 해외재보험사(AXA XL)로 출재(위험분산)시킨 상태였다. 쉽게 말해 국내 원보험사들은 극히 적은 금액의 보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으며, 대부분의 보상책임을 재보험사가 부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해외 재보험사들이 쉽게 보상해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며, 아주 정밀한 조사·심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재보험사, 코리안리

 

재보험사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현재 「코리안리 재보험」가 국내에서 유일한 재보험사로 연혁은 다음과 같다.

 

1963년 : 대한손해재보험공사 설립

1978년 : 대한재보험(민영 전환)

2002년 : 코리안리 재보험(사명 변경)

1993년까지는 코리안리가 국내 재보험 물량을 독점하였는데, 이는 「국내우선출재제도」 덕분이었다. 하지만 1997년 재보험시장 자율화로 해외 재보험사가 국내로 진입하면서, 시장점유율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손해보험사에 재직할 당시, 많은 직원들이 코리안리로의 이직을 한번쯤을 고려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렇지만 10여년 전에도 보험업계 직원 평균연봉은 단연 코리안리였었다. 이전 글 <조선 2인자의 픽, 정도전 집터>에서는 코리안리 건물부지가 과거 정도전 저택의 안채자리라고 언급했었다.

 

글로벌 재보험사, AXA XL

 

1986년 XL(Excess Liability)은 버뮤다에서 설립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기업보험시장에서 고위험을 인수할 수 역량을 갖춘 보험사가 거의 없었고, 세제·규제에서 유리했던 버뮤다는 글로벌 보험·재보험 산업의 주요 허브였다. XL은 고위험 틈새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자본력을 갖추면서, 사명처럼 초과책임보험(Excess Liability Insurance)을 제공·특화하는데 집중했다. 1990년대 들어 XL은 보험상품을 다양화함은 물론, 재보험상품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 글로벌 보험사로 도약했다.

 

1817년 AXA는 프랑스의 한 지역보험조합으로 설립되었다. 20세기 동안 여러 보험사들을 합병하면서 성장하였지만, 지역별로 여러 브랜드(Ancienne Mutuelle, Mutuelles Unies 등)가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85년 모든 계열사의 브랜드를 AXA로 통합했는데, 이는 특별한 약어가 아니라 어느 언어로도 발음·기억이 쉽게 네이밍된 것이다. 2018년 AXA그룹은 XL을 인수·합병하였는데, 이는 기업보험·재보험 영역에서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XL사업부(AXA XL)는 유럽 중심의 운영전략에 맞춰, 본사를 버뮤다에서 영국(런던)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AXA XL의 일부 법인들은 여전히 버뮤다에 등록되어 있다. AXA XL와 경쟁하는 글로벌 손해보험사·재보험사는 다음과 같다.

 

Munich Re : 독일(세계 최대 재보험사)

Allianz Global Corporate & Specialty(AGCS) : 독일

Zurich Insurance Group : 스위스

Swiss Re Corporate Solutions : 스위스

Chubb : 미국(세계 최대 상장 손해보험사)

Berkshire Hathaway Specialty Insurance(BHSI) : 미국

American International Group(AIG) : 미국

Lloyd’s of London : 영국

 

AXA그룹은 COVID-19로 상황이 악화되면서, 아시아사업의 재편을 검토한 바 있다. 여기에는 AXA손해보험(악사손보)도 포함되었다. 국내보험시장에서 AXA그룹은 교보생명과 인연이 깊다. 2007년 교보생명이 보유 중이던 교보자동차보험 지분을 AXA그룹에 넘기면서, 교보AXA자동차보험이 영업을 시작했다. 2009년 교보AXA자동차보험은 악사손보로 사명을 변경했다. 또한 JV(교보악사자산운용) 형태로 자산운용업을 영위하기도 한다. 2020년 악사손보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에 교보생명이 유일하게 참여하였지만, 매매가격의 이견차이도 협상이 결렬된 바 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보험사 CEO

 

2024년 12월 브라이언 톰슨(UHC CEO)가 뉴욕 호텔 입구에서 3발의 총격으로 사망했는데, UHC(United Healthcare)는 미국 최대 민영 건강보험사이다. 범행 후에 자전거를 타고 도주한 범인은 5일 동안 검거하지 못했는데, 시민들은 수사에 협조하기 보다는 오히려 범인을 보호하려 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시민들의 행동배경에는 UHC의 악질적인 보험금 지급거절빈도가 자리잡고 있는데, AI모델의 조건설정(오류율 90% 이상)을 통해 지급신청의 1/3 가량을 거절했다고 한다. 범인의 총알탄피에는 보험금 지급 거절·지연에 관한 단어(Deny, Defend, Depose)가 새겨져 있었다고 하니, 쌓은 분노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의료체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는 사건인데, 이는 범인의 성장배경·사회적 위치를 보면 알 수 있다. 26세의 범인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고교·대학를 졸업한 후, 데이터엔지니어로 일하는 미국사회의 엘리트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22년 범인이 허리를 다치면서 척추에 나사를 박는 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당했음에도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었다. 젊은 엘리트조차도 미국의 의료체계에서 소외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민간 건강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받아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이 된다. 암살사건의 여파로, 미국 보험사 CEO들은 공개사진을 내렸고 지급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보험약관 일부를 변경했다고 한다.

 

다시 시작되는 정책, 의료실비 전환

 

2025년 연초부터 정부는 의료실비보험 개편안을 발표했다. 초기 의료실비(1·2세대) 가입자 1,500만명 가량을 대상으로 보험계약을 재매입하려는 것으로, 재매입보험사가 일정금액을 가입자에게 지급하면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다. 이전 글 <정책적으로 변신하는, 의료실비>에서 의료실비의 변천에 대해서 언급했었는데, 1·2세대는 3·4세대과 비교하여 혜택범위·자기부담금·재가입·갱신주기 등이 유리한 상품이다. 아마도 타겟은 1세대·2세대(초기형)·2세대(선택형)으로 보이는데, 이는 재가입이 필요없는 상품이다. 2세대(표준형)은 15년 후 재가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외되지 않았을까 싶다.

 

재가입할 필요 없이 사실상 평생혜택을 누리는 것이 문제라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보험계약에 따른 의무관계를 정부가 강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4세대 의료실비 판매를 앞두고, 보험사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은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골프라운딩 중에 걸려온 전화를 정신없이 받는 바람에, 상담사가 요구한 재매입(원금·이자)과 4세대 가입을 할 뻔 했었다. 당시 10년 넘게 불입한 의료실비 보험료에 대해 500만원 가량의 적지 않는 금액을 제시받았으니, 정책적 배경을 모르는 보험소비자들은 전환했을 수도 있다. 이번에는 권고·숙려기간 외에 법개정(약관변경 가능)까지 동원한다고 하니, 지켜봐야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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