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출장으로 고속열차에 몸을 싣는 일이 많다. 그 때마다 빠르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보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어쭙잖게 생각해기도 하고, 시절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절감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도 시공간 중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개념에 대한 감은 아직 잘 오지 않는다. 분명 3차원적 인간이 접근하지 못한 여분의 차원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찰나의 여생 살아갈 먼지같은 존재인지라 굳이 시공간이라는 거대 관념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전 글 <뒤늦게 깨달은 자율주행기술, 자간공간 유지>에서 언급한 차간거리 정도의 3차원 공간도 자각을 못하면 충분히 위험한 세계이다. 그렇지만 과거 수많은 과학자·철학자의 천재성과 노력으로 시공간의 개념이 발전해왔고, 현재 많은 영화·드라마·유튜브에서는 차원을 뛰어넘는 세계관 컨셉의 창작물들을 선보이고 있다. 2023년 3월 12일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는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이 작품상, 감독상 및 여우주연상을 포함 7관왕을 차지하였는데, 이 영화는 이전 글 <특이점의 팽창과 미궁, 다중우주>에서 언급하였듯이 평행우주론에 기반한 세계관 개념을 사용하였다. 국내에서는 유튜브 <피식대학 : 05학번이즈히어>에서도 이러한 소재를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뉴턴과 칸트는 모두 시공간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 대표적인 과학자 및 철학자이다. 그러나 뉴턴과 칸트의 시공간 이론은 목적과 관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는데, 뉴턴의 시공간 이론은 물리학에서의 효과적인 수학적 모델링을 위해 사용되는 기초적인 개념으로 쓰이게 되고, 칸트의 시공간 이론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모든 인식의 근본적인 원리를 찾기 위한 개념으로 다뤄진다. 현대에 와서는 아인슈타인에 의해 시공간 개념이 정립이 되지만, 그 이전에 뉴턴, 칸트 외에 라이프니츠, 마흐 등이 아인슈타인이 참고할 만한 선행 개념들을 주장했었다. 여기에서는 시공간 개념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어떻게 흘러 왔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 절대주의
물리학자 중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처음 고민한 사람은 뉴턴(1643~1727)이다. 뉴턴의 절대주의는 시간·공간을 절대적·독립적인 개념으로 보았는데, 이는 물리학적인 이론으로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뉴턴은 모든 사물이 동일한 시간 경과를 가진다고 봤는데, 이는 모든 물리적인 사건들이 동일한 시간 척도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간에 대해서는 뉴턴은 모든 물체가 공간 상에서 위치하며, 공간은 물체의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계와 관련된 개념이라고 봤다. 이것은 물체들이 서로 다른 위치를 차지하며, 이 위치는 공간의 좌표계를 사용하여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뉴턴의 절대주의는 과거의 물리학적인 모델에서 중요한 개념이었지만, 이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등장으로 인해 상대성 개념이 발전되면서 뉴턴의 절대주의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빌헬름 라이프니츠(Wilhelm Leibniz) : 관계주의
관계주의는 라이프니츠(1646~1716)가 제안한 시공간 이론으로, 뉴턴의 절대주의와는 대조적이다. 라이프니츠는 시공간을 고정된 좌표계가 아닌 물체들의 상대적인 관계에 따라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하면서, 시간과 공간이 서로 독립·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물체들의 상대적인 위치와 속도에 따라서 시공간의 형태가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상대성 이론의 선행 개념 중 하나로 물체의 상대적인 운동과 시공간의 곡률에 대한 개념을 포함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 : 관념주의
칸트의 관념주의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과 연관해 시공간을 이해하는 이론으로,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과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이 객관적으로 보는 뉴턴의 절대주의와는 달리, 인간의 지각·인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주관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즉, 시간과 공간은 사물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지각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인간의 인식과 지각에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개념이며, 동일한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관념주의는 물리학에서 시간·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칸트는 시간·공간을 순수한 형식(pure form)이라는 개념으로 다루어, 이러한 순수한 형식이 모든 경험적 사물의 인식에 근본적으로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칸트는 시간·공간을 별개의 개념으로는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둘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모든 인식의 근간을 이룬다고 보았다. 칸트 철학에서 「선험적(transcendental)」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경험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다. 물체가 움직이는 것은 볼 수 있으므로 공간의 개념은 이해되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을 선험적 직관(transcendental intuition)형식 중에 내적인 형식(internal form)이라고 한다. 이전까지는 시간과 공간이 객관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칸트는 이를 주관적인 개념으로 바라보았다. 이는 뉴턴의 절대주의와는 대조적이며, 이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 : 상대성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마흐(1838~1916)는 「상대성 원리」개념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모든 물리적인 현상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관측자의 상대적인 위치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시공간 개념을 관측가능한 물리적 현상의 결과로 보고, 우주의 모든 물체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그 상호작용이 시공간의 구조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마흐는 상대성 이론과 관련하여 「마흐의 원리」로 불리는 개념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질량은 우리 주변의 모든 물체와 상호작용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질량은 그 자체로는 독립적인 속성이 아니며, 우리 주변의 모든 물체와 상호작용하여 결정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마흐는 물리학, 철학 및 심리학 등에 걸쳐 폭넓은 연구를 수행하였는데, 그의 시공간 개념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및 일반 상대성 이론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마흐의 대표작 「The Principles of the Theory of Heat」에는 자연과학의 발전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 담겨 있으며, 마흐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음속보다 빠른 물체에 대한 호기심을 품게 되면서, 물체의 속도와 음속(340m/s)을 비교하는 단위 마하(M)의 개념을 만들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 상대성
아인슈타인(1879~1955)의 시공간 개념은 그의 2가지 중요한 이론인 특수상대성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과 일반상대성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에 포함되어 있다. 이 2개의 이론은 물리학의 기본 원리를 수정하여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했다.
특수상대성이론(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은 빛의 속도가 모든 관측자에게 동일하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제안한 이론이다. 그 결과로 시간·공간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되었고, 이를 통해 시간팽창(time dilation)과 길이수축(length contraction)이라는 현상이 예측되었다. 특수상대성 이론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은 가만히 있는 사람의 시간 보다 더 느리게 가고, 움직이는 사람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냐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결과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는 「4차원 시공간」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는데, 여기서 시간은 공간과 함께 하나의 연속체로 취급되며 이를 민코프스키 공간(Minkowski space)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상대성이론(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이론으로, 특수상대성이론을 확장한 것이다. 이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물체 간의 힘(원인)으로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물체가 주변 시공간의 구조를 왜곡시키는 것(결과)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중력은 물체가 왜곡된 시공간을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래서 시공간의 곡률(curvature) 개념이 도입되었는데, 이 곡률은 물체의 질량과 에너지 분포에 의존하며 그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변형되는 현상을 설명한다. 이 이론은 블랙홀, 중력렌즈현상, 그리고 중력시간 팽창 등의 예측을 가능하게 했다.
동시대의 경쟁자, 뉴턴과 라이프니츠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동시대를 이끌어간 수학자로서, 뉴턴이 라이프니츠 보다 3살 위 였다. 경쟁관계 였던 둘은 개인적으로 접촉한 적이 없었으며, 주로 서신을 통해 논의를 진행했었다. 둘은 각자가 독립적으로 미적분학의 기초를 발전시켜 오면서 미적분학의 발견에 대한 우선권을 둘러싸고 경쟁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양쪽 지지자들 사이에 오해와 불만이 생겼고, 수학 과학계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미적분학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었다. 뉴턴은 순간변화율(fluxion, 유율)이라는 방식을 사용했고, 라이프니츠는 차분(differential)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었다. 이 2가지 접근법은 서로 다른 관점을 제공하면서도 미적분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이와 같이 뉴턴과 라이프니츠 모두 17-18세기 유럽 수학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그들의 영향력은 지역적 차이가 있었다. 뉴턴은 주로 영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라이프니츠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인기가 많았다. 성격 또한 매우 달랐다. 뉴턴은 내성적이고 고립된 연구 습관과 연구 결과를 쉽게 공유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반면, 라이프니츠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이었으며 다른 학자들과의 교류를 즐겼다.
철학과 음악을 외면하지 않은 과학자, 마흐와 아인슈타인
마흐와 아인슈타인도 역시 직접 만난 적은 없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연구와 의견을 교환했다. 이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은 마흐의 비판에 대응하고, 마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되었다. 사실 마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관한 초기 아이디어에 대한 의문과 비판을 제기하였으나, 이후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마흐의 죽음 이후 아인슈타인은 그의 작품을 더 깊이 연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마흐의 과학 철학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의 작품이 자신의 이론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초기 연구에서는 마흐의 관점을 따랐으나, 이후 마흐의 일부 아이디어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 대한 마흐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마흐와 이인슈타인은 물리학과 철학의 교차점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로 인해 두 학자는 과학적 이론의 철학적 기초에 대해 논의하곤 했다. 마흐는 현상학적 접근을 통해 과학적 이론의 기초를 조사하였으며, 이로 인해 아인슈타인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게 되었다. 마흐와 아인슈타인은 과학과 철학의 교차점 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바이올린 연주를 즐기는 아인슈타인은 마흐의 저서인 <음악과 인생 : Music and Life>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이 책에서 마흐는 음악과 물리학의 연결점에 대해 적어 놓았다. 이렇듯 두 학자는 음악에 대한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시공간에 대한 개념은 17세기 뉴턴과 라이프니츠을 시작으로 20세기 아인슈타인에 이르기 까지 수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시공간의 절대성에서 시작하여, 상대성 개념이 등장하고 이에 철학적인 관념성이 더해지면서 시공간의 개념은 더 복잡하게 발전되어 왔다. 결국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의 입증하면서 시공간 개념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정립이 되었지만, 우주 관측을 통해 발견되는 여러 현상들을 설명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나저나 인류사에서 천재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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