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격이라고 하면 마트의 상품라벨에 쓰여져 있는 숫자로만 인식한다. 그 하나의 가격숫자가 개인에게 깊이 각인되는 이유는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원론에 등장하는 물가는 '물건의 가격'으로 해석은 되지만, 선뜻 이해는 되지 않았다. 개인이 접하는 개별가격와 달리, 이 세상의 모든 물건들의 집합가격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물가변동을 측정하는 주요지표로는 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 CPI)와 생산자물가지수(Producer Price Index, PPI)가 있는데, 이 지표들은 전반적인 경제추이를 판단하여 정책결정을 내리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CPI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재화·서비스, PPI는 다양한 산업분야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재화·서비스의 평균가격 변동을 나타낸다. CPI는 인플레이션률과 생활비 증감을 측정하며, PPI는 기업의 원재료·생산비용의 변화와 초기 인플레이션 압력을 파악할 수 있다. PPI는 향후 CPI를 예측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는 물가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자.
생물처럼 움직이는, 물가수준
인플레이션(inflation)은 '부풀어 오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인프라(infra)에서 기원하는데, 이는 물가가 전반적으로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이다. 반면에 디플레이션(deflation)은 물가가 전반적으로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화폐가치가 상승하는 현상이다. COVID-19 팬데믹 시기에는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소비는 자제하고 저축을 늘리려는 경향이 강했고, 달러가 최고의 안전자산임을 나타내는 지속적인 강달러 현상을 보였다. 소비 감소는 기업매출 감소로 이어지고, 기업들이 판매가격을 낮추기 시작하면서 디플레이션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디플레이션을 전환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통화공급인데, 이는 화폐가치가 하락시키면서 상품가치는 올라가기 때문이다. 투자 측면에서 인플레이션 시기는 투자의 시대, 디플레이션 시기는 저축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아무런 투자(부동산, 금융자산 등)를 하지 않으면 화폐가치 하락으로 인한 자산손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디플레이션 시기에는 소비자·기업가 제품가격의 하락을 예상하여 소비·투자를 지연시키면서 저축을 유도한다.
스테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정체(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를 의미하는 스테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이 합쳐진 말로, 두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높은 실업률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기존의 경제원리에서 벗어난 스테그플레이션은 예측범주 내에 있지 않았다. 높은 실업률과 물가는 소비자의 구매력을 약화시키면서 사회불안을 초래하며, 물가를 안정시키지 못하는 중앙은행의 정책이 신뢰를 읽게 된다. 스테그플레이션은 그 복잡한 양태로 인해 전통적인 통화·재정정책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는 정책은 경제성장을 더욱 둔화시킬 수 있으며, 경제를 살리려는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정책조정만으로는 스테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없다보니, 근본적인 경제구조의 변화를 위한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실제 1970년대 스테그플레이션은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경제정책의 이상향, 골디락스
숲 속을 헤매다가 발견한 오두막으로 들어간 금발머리 소녀 골디락스(Goldilocks)는 부엌에서 식탁에 놓인 3그릇의 죽의 발견한다. 첫번째 죽은 너무 뜨거웠고, 두번째 죽은 너무 차가웠으나, 세번째 죽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골디락스는 적당한 온도의 세번째 죽을 맛있게 먹었다. 이후 지친 몸을 이끌고 침실로 간 골디락스는 3개의 침대를 발견한다. 첫번째 침대는 너무 딱딱했고, 두번째 침대는 너무 푹신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세번째의 작은 침대는 너무 포근한 나머지 깊은 잠에 들게된다. 흔히들 이상적인 경제상태를 골디락스라고 말하는데, 과열(인플레이션)이나 침체(디플레이션) 없이 화폐유통·물가가 서서히 증가하며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자리 증가와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지면서도 물가는 안정을 유지하게 된다.
물가상승률이 음수(-)인 디플레이션 단계에서 통화공급을 통해 물가방향이 양수(+)로 전환하게 되면, 목표물가에 다다를 때까지 리플레이션(reflation) 구간이 된다. 이 구간은 화폐유통과 물가가 서서히 증가하는 전형적인 골디락스이다. 리플레이션을 거쳐 인플레이션으로 진입하면,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물가가 과열된다. 과열된 물가를 식히는 과정에서는 생산·고용을 유지한 채로 물가만 서서히 낮추려는 미세조정정책이 시행된다. 이 정책의 목표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인데, 이는 목표물가보다 높은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이 서서히 완화되는 구간이다. 즉 양수(+)의 물가상승률은 완화되지만, 물가지수는 여전히 상승하고 있다. 실물경제가 건실한 채로 물가가 서서히 안정된다는 점에서 디스인플레이션을 골디락스라고 할 수 있지만, 미세조정정책이 실패하면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게 된다.
Fed의 희망드립, 일시적
잭슨홀(Jackson Hole) 미팅은 1978년 이후 매년 여 미국 와이오밍주 작은 마을 잭슨홀에서 열리는 경제정책 심포지엄을 말한다.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Fed)의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주관하며, 전세계 중앙은행 총재, 재무부장관, 학자, 그리고 금융전문가들이 참석합니다. 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중앙은행 총재들의 연설은 글로벌 통화정책과 금융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 연설에서 경제전망, 통화정책, 인플레이션 정책 등과 같은 주요 현안을 언급하게 된다.
2021년 8월 잭슨홀 연설에서는 파월 의장은 당시의 물가상승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설명하는데 주력하였다. 이미 4%대로 진입한 소비자·근원 물가지수는 일부 품목의 일시적 상승으로 인한 것에 불과하며, 지난 25년 동안 기술혁신과 세계화를 바탕으로 진행되어 온 글로벌 디스인플레이션 흐름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조·유통 분야의 기술혁신이 기술적 물가하락을 이끌어 왔으며,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된 저렴한 내구제가 미국에 공급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2022년 8월 잭슨홀 연설에서는, 파월이 직면한 인플레이션을 강조하면서 글로벌 주식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70년대 그레이트 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과 비교할 정도였으니, 놀라운 태세전환이 아닐 수 없다.
거대 인플레이션에서 빗겨난, 중국
전세계 경제권들이 인플레이션으로 고민인 가운데, 중국이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를 고민해야 한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2023년 6월 CPI 상승률은 0%이며, 생산자물가지수 상승률도 △5.4%로 낮아지며 2015년 12월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고 한다. 금리인하와 통화공급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부양과 물가상승이 미진한 이유는, 경제 불확실성에 따른 가계소비와 기업투자의 감소의 영향이라고 한다. 헝다그룹의 채무불이행 이후 이어진 부동산시장의 침체, 빅테크기업에 대한 투자 감소, COVID-19 봉쇄정책, 미국의 고립주의, 저출산·고령화 등 다양한 대내외 환경요인들은 중국경제를 구조적인 침체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또한 과다한 부채를 안고 있는 경제주체(지자체·기업·가계) 입장에서는 공급된 통화를 자산·실물경제에 투입하기 보다는 부채상환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경향도 높다고 한다. 막대한 통화공급에도 불구하고 물가하락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향후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으로의 진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연 "중국에게 어떤 대안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복합적인 상황이다.
디플레이션을 극복 중인, 일본
일본은 20년이 넘게 디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2016년에 오랜 디플레이션으로 위축된 경제를 살리고자 물가상승률 2%대를 목표로 하는 통화정책을 펼치게 된다. 바로 기준금리(단기)를 △0.1%로 적용하고, 장기금리도 0% 정도를 유지하기 위해 수익률곡선정책(Yield Curve Control, YCC)으로 시중에 돈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YCC는 중앙은행이 특정 만기의 채권수익률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 수익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양의 채권을 매입(수익률 상회시)하거나 매도(수익률 하회시)하는 정책이다. 10년물 국채금리를 0.5%에 상한선을 두었는데, 기본적으로 이러한 상한선은 이자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YCC와 유사한 정책으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가 있는데, 두 정책은 금리를 낮추고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QE는 특정 규모의 자산을 정기적으로 직접매입함에 따라, 전반적인 금융조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YCC와는 차이가 있다. YCC는 특정 금융조건에 영향을 미치며, 수익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산매입 규모의 제한이 없다. 2022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물가상승은 현재 2%대를 훨씬 상회하고 있으나, 일본은행 우에다 총재는 물가상승이 일시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말한 '일시적 물가상승'에 대한 파월의 태세전환과 얼마나 다를지 지켜봐야겠다.
2023년 4월 한국경제신문이 「베어마켓」의 저자 러셀 내피어(Napier)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Fed가 인플레이션을 단번에 잡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을 잡는 무기인 고금리가 주식시장을 약세장(bear market)에 머물게 했으며, 4번 침체장(1921년, 1932년, 1949년, 1982년)에서 증시가 바닥을 찾기까지 수년이 걸릴만큼 속도는 느렸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가 그랬다고 미래가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Fed의 선전을 지켜봐야겠다. 그리고 현재의 중국경제가 과거 일본의 장기침체 내지 미국의 금융위기의 절차를 밟을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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