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에 거주하는 지인으로부터 놀랄만한 얘기를 들었는데, 그 분은 대형시공사가 참여한 재개발사업의 일반분양(전용 84㎡)에 당첨되어 입주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3년 전에 분양받을 당시 일반분양가는 전용 84㎡ 3.4억, 전용 59㎡ 2.9억이었는데, 준공을 앞둔 현 시점에서 전용 59㎡ 입주권을 가진 조합원의 분양가가 약 4억에 육박한다고 했다. 이는 약 1억 이상의 분담금이 추가로 발생한 것이다. 보통 조합사업(재개발·재건축·지역주택조합 등)에 조합원의 지위로 투자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일반분양자들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좋은 동호수를 지정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내에 조합사업에 투자하여 아직 정산되지 않은 조합원들에게 이런 이점이 사라지고 있고, 오히려 조합원들의 손실이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개인 조합원 입장에서는 최초 책정된 분담금이 고정되면 좋겠지만, 조합은 조합사업을 책임지고 정산해야 하는 사업주체이다 보니 향후 여러 사정으로 인한 비용증가·사업손실을 추가분담금으로 정리해야 한다. 오늘은 분양가에 대한 시장분위기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옥이 펼쳐진, 조합원
2023년 3월 부산의 한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부산시민공원 촉진 2-1구역)은 착공을 앞두고 GS건설과 체결했던 공사도급계약을 해지하였는데, 시공사 GS건설이 공사비를 최초 평당 549만원에서 987만원 수준으로 대폭 인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아파트 공사비는 대략 300~500만원 사이로 인식되어 왔는데, 짧은 기간에 1,000만원 수준의 가격표를 형성한 것이 놀랍다. 공사비 증액과 그로 인한 갈등은 당분간 사회문제화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의 한 재개발조합(서대문구 북아현 2구역)도 시공사 삼성물산·DL이앤씨로부터 평당 859만원의 공사비를 제안받았는데, 시공사는 마감수준을 조정하여 719만원까지 낮췄다. 기존 공사비 490만원이 조합원들에게 앵커(anchor, 닻)로 작용하면서, 여전히 높은 공사비를 조합이 수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조합사업 외의 시행사업에서는 평당 공사비가 이미 1,000만원을 초과하는 현장도 등장하고 있다. 참고로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은 최초로 입력된 정보가 앵커로 작용하여, 이후의 판단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인지편향을 말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초기값을 제대로 수정하지 못하고 편향을 일으키는 근사치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투자·사업에 있어서 앵커링 효과에 빠질 경우, 현재의 변화요인들보다는 과거의 결과치에 의존하여 미래의 등락을 예측하려고 한다.
시장을 점점 조여오는, 공급부족
일반적으로 아파트는 착공 후 2~3년, 인허가 후 3~5년이 지나야지 입주가 가능하다. 인허가·착공 실적은 주택공급의 대표적인 선행지표로, 이를 통해 2~5년 후의 공급량과 그로 인한 주택가격을 분석하게 된다. 2022년 인플레이션 이후 급감한 인허가·착공 실적이 주택가격의 폭등을 야기할 것이라는 의견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1997년·2007년 주택가격 하락으로 인해 주택공급이 감소하면서, 이후 주택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한 경험이 있다. 가뜩이나 시행사업의 수익률이 감소하면서 주택(준주택 포함)의 공급부족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원자재 가격이 추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까지 대두되면서 과연 정부가 주택가격을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전 글 <점점 현실화되는 위험의 전염, PF>에서도 중장기적인 분양가의 상승이 없다면, 공급부족은 지속될 것이라고 언급했었다.
2023년 7월부터 시멘트업계가 시멘트가격을 인상하기로 결정하면서 아파트 공사비가 어느 수준까지 상승할지데 대한 우려가 크다. 2022년부터 시멘트가격을 계속 인상하고 있지만, 무작정 탓할 수도 없다. 시멘트 제조원가의 약 20%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료가 2023년 5월 기준으로 지난 2년 간 44% 가량 인상된 것이다. 가격결정에 있어서 전기료 외에도 환경규제(탄소중립, 미세먼지 감축 등)도 제조원가의 상승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전력은 2018년 이후 5년간 약 25.8조에 달하는 비용이 증가하였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따라 LNG발전으로 대체되면서 발생했다. 어느 누가 한국전력 사장이 되더라도 추가비용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전기료의 대폭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근 서울 분양가·청약률의 순조로운 움직임은 이러한 공급부족의 신호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미래의 주택가격과 비교하여 현재의 분양가가 저렴하다고 판단한 시장수요(청약자)가 많아졌다는 의미인 것이다. 서울권역에 한하여 84㎡ 분양가 10억원은 시장이 수용할 만한 수준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인 듯하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강북권역 분양가는 2009년 2억 후반, 2013년 4억 후반, 2016년 5억 후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가상승율을 감안할 때 2023년 10억원 수준의 분양가가 과한 수준의 가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원가방식으로는 내릴 수 없는, 주택가격
2022년 거대 인플레이션은 여러 산업분야에 충격을 주었지만, 특히나 부동산개발업자들을 멸종시키다시피 했다. 실제 인플레이션 직전에 착공한 사업장들은 공급상품(주택·오피스텔·상가 등)을 막론하고 사업이익이 증발했으며, 이는 오직 한 가지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 바로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추가공사비의 발생이다. 하지만 2023년 9월 시점에서는 공사비를 상승시키는 압박요인이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철근·시멘트 등 원자재가격 상승기조는 기본이고, 인건비·대출이자·감리비·규제강화 등이 복합적·기하급수적으로 공사비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추이는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어져서 신규PF 대출이자를 상승시켰고, 최근 LH의 철근누락사태로 인하여 부실공사 방지를 위한 감리비용도 상승할 것이다. 규제정책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2022년부터 시행한 '층간소음'과 '전기차 충전시설' 강화로 자재비·설치비가 증가된 상태에서, 2024년부터 민간아파트에 단열성능과 신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이는 '제로에너지 건축'이 의무화된다.
객관적인 부동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에는 3가지 방식(원가방식·비교방식·수익방식)이 있는데, 이를 흔히 감정평가 3방식이라고 한다. 감정평가사가 특정 목적의 부동산 가치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된다. 비용성에 기초한 평가방식으로는 원가법·적산법이 있고, 시장성에 기초해서는 거래사례비교법·임대사례비교법이 있다. 수익성에 기초해서는 수익환원법·수익분석법이 있다. 각 방식에 따라 가격·임료를 구할 수 있지만, 실제로 산정된 시산(試算)가격 간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러한 시산가격을 조정하여 최종평가액을 결정하는 역할을 감정평가사가 수행하는 것이다. 보통 아파트시장은 거래가 활발하고 환가성이 높다보니, 실수요자·가수요자 모두 시장성에 기초한 비교가격을 가장 많이 신뢰한다. 물론 거래량이 축소되면서 시세가 추세를 형성하지 못한 채 등락을 반복한다면, 비교가격에 대한 신뢰는 다소 떨어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부동산가격이 한 단계 점프업을 하기 위해서는 원가·분양가의 도약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지금이 그 시기가 아닌가 한다.
원가적 측면에서 차곡히 쌓이고 있는 공사비의 인상요인들을 보고 있자면, 평당 공사비 1,000만원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대와 우려가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분양가의 원가요인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사비가 대폭 증가한다면, 디벨로퍼들의 마크업과 무관하여 분양가도 크게 높아져야 한다. 독점기업이 아니기에 디벨로퍼들의 마크업이 견고히 보장되지는 않겠지만, 이윤없이 어떤 사업자가 공급을 하겠는가. 참고로 마크업(markup)은 상품·서비스의 가격에서 원가에 추가된 금액을 의미한다. 가령 어떤 상품의 제조원가 5만원, 판매가격 7만원으로 결정했다면, 마크업 금액은 2만원(원가 대비 40%)이다. 소매업체·제조업체가 비용을 회수하고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격설정 전략의 일부이다.
조합원 영수증에는 얼마의 숫자가 쓰여 있을까, 분담금
조합원이 납부해야 하는 (추가)분담금은 조합원 분양가에서 권리가액을 차감한 금액이고, 여기서 권리가액은 종전자산평가액에 비례율을 곱하여 산정한다. 역산으로 생각해보면 조합원이 분담금 없이 입주를 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분양가가 권리가액을 넘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사업초기 단계(구역지정·조합설립·사업시행인가·관리처분인가)에서 정해진 분담금은 확정된 금액이 아닌 추정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상의 가청산 개념으로 책정해 놓은 분담금은 일반분양 성과와 실사업비 지출 등이 확정되는 준공 이후 시점에서야 확정된다. 참고로 비례율은 종후자산평가액(총분양수입 = 조합원분양수입 + 일반분양수입)에서 총사업비를 차감한 금액을, 종전자산평가액으로 나눈 개념이다. 비례율은 감정평가·예정분양가·공사비가 어느 정도 결정된 뒤에 나오는 값으로, 보통 조합에서는 추정비례율을 100~110%로 맞춘다. 비례율식에서 분자는 사업마진(margin), 분모는 사업주체(조합원)가 제공한 토지원가(cost)이기 때문에, 비례율은 조합 입장에서의 사업성(수익성)으로도 볼 수 있다. 100%를 초과하는 비례율은 조합원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겠지만, 100%를 미달하면 조합원들 간의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사업성이 낮은 조합사업에서는 종국에 조합원 분담금으로 메꿔야만 한다는 사실도 비례율식을 들여다 보면 알 수 있다. 이미 서울권역 강남 외에도 아파트 전용 84㎡ 조합원 분양가가 10억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조합원 분양가의 인상요인으로 2022년 인플레이션 이후에 일어난 공사비의 상승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조합사업에서 사업주체는 조합이지만, 조합을 구성하는 조합원들은 이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은 경우가 많다. 시공사·업무대행사·PM사 등이 주도적으로 업무를 진행하다보니, 조합원들은 스스로를 상대적으로 낮은 분양가의 입주권을 가진 일반분양자와 비슷한 위치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합이 혜택을 늘리기 위해서는 일반분양수입을 늘려야하는데, 일반분양가를 급격히 올렸다가는 분양에 실패할 경우에 조합원 분양가만 더 증가할 수도 있다.
이전 글 <부실에도 한 장의 조커를 쥔, 금고>에서는 조만간 분양시장의 수분양자들에게 '인상된 분양가'라는 영수증이 청구될 것이라고 언급했었다. 이는 신규개발사업에 관한 내용으로 점차 상승하고 있는 분양가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기존개발사업에서는 시행사(조합원)에게 그 영수증이 청구될 것이다. 최근 사업시행인가를 앞두고 있는 잠실의 한 재건축조합이 조합원 추정분담금을 공개했는데, 결과적으로 조합원분양가가 일반분양가와 거의 동일하다고 한다. 여러 행정편의를 고려하여 비례율을 100% 이하로 낮게 가정한 추정치라 하더라도, 전국민이 금싸라기 땅으로 인식하고 있는 송파 잠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 만큼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물론 잠실은 입지가 우수한 만큼, 이후 관리처분인가 시점에서의 추정분담금은 비례율의 상승과 함께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에 놓인 지방권역의 정비사업장은 과연 조합원의 분담금을 낮출만한 요인이 있을지 의문이다.
시장에서의 아파트 가격은 시장성·원가성에 기초하여 상승할 준비를 다 마쳤다고 본다. 시장가격은 트리거를 찾고 있으며, 건설원가의 상승은 이러한 트리거로 작동할 준비를 완료되었다. 일각에서는 2020년 이전에 신축한 아파트들이 안전기대감과 함께 상승세를 보일 수도 있다고 한다. 2021년 이후에 발생한 아파트 붕괴사고들이 '안전불감'에 젖어있던 주택소비자들을 '안전민감'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 매매(투자)의 방정식은 매우 단순했는데, 단시간에 너무 많은 요소들이 변수로 작용하면서 N차 방정식을 방불케 한다. 계속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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