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4년 마다 거론되는 내러티브가 있는데, 비트코인 반감기와 미국 대통령 선거이다. 서사(narrative, 내러티브)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사물·사실·현상에 대하여 일정한 줄거리(스토리)를 가지고 하는 말·글을 의미하는데, 현실에서는 특정한 시공간 내에서 인과관계로 이어지는 사건의 연속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은 비트코인 반감기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비트코인의 마일스톤, 반감기
법정통화는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통화팽창으로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고, 이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통화의 구매력은 점차 줄어든다. 다른 말로 '화폐가치의 하락'이다. 비트코인은 투명한 통화정책과 제한된 발행량을 통해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역할로 세상에 등장했다. 법정통화와의 차별화를 위해, 사토시는 2140년까지 비트코인 총발행량 2,100만개로 제한하고 4년 마다 반감기를 두었다. 이에 따라 비트코인은 21만 블록마다 채굴보상으로 지급되는 비트코인을 절반씩 줄이도록 설계되었다. 이전 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어플, 비트코인>에서는 비트코인은 4년은 반감기를 설정해놓고, 채굴보상을 절반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인 할빙을 진행한다고 언급했었다. 지금까지의 반감기와 블록당 채굴보상은 다음과 같다.
1차 반감기(2012년 12월) : 50 → 25 BTC
2차 반감기(2016년 7월) : 25 → 12.5 BTC
3차 반감기(2020년 5월) : 12.5 → 6.25 BTC
4차 반감기(2024년 4월) : 6.25 → 3.125 BTC
마일스톤(mile stone)은 특정 장소까지의 거리를 마일 단위로 표시하기 위해 도로 옆에 세워진 돌을 말한다. 스타트업업계에서는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성공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지점'을 마일스톤이라 부르는데, 주로 계약·착수·인력투입·선금수령·중간보고·감리·종료·잔금수령 등처럼 특정할 만한 시점이다. 비트코인 생태계에 있어서 마일스톤은 반감기라고 해도 무방한데, 이는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반감기를 기점으로 달라져 왔기 때문이다. 1차 반감기는 암호화폐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줬고, 2차 반감기는 결제도구로서의 가능성이 주목받았다. 2차 반감기가 지난 다음 해인 2017년은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크게 향상된 해였는데, 2017년 초 500만원을 넘어선 비트코인 가격이 그 해 말 2,000만원을 돌파했다. 2017년은 비트코인캐시(BCH) 포크가 비트코인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잡은 해이기도 하다. 3차 반감기를 거치면서 대체자산으로 거론되더니, 결국 4차 반감기를 앞두고 미국에서 비트코인ETF를 승인했다.
반감기로 수익성이 부족해지는, 채굴자
일반적으로 반감기는 공급량 감소로 인식되면서, 가격상승의 요인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앞선 3차례의 반감기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역사적 고점(ATH, All Time High)를 기록한 다음, 기나진 조정을 거치는 패턴을 보여줬다. 사이클의 정점구간은 반감기로부터 약 12∼1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의 1달 가량으로, 정점구간에서 여러 차례(10~20번) ATH를 경신했다. 이 과정에서의 가격상승폭은 최대 수십 배에 달했다. 반감기가 거듭될수록 사이클의 상승구간이 길어졌는데, 이는 비트코인시장의 성숙으로 변동성이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반감기 랠리에 뒤이은 장기조정장을 크립토윈터(crypto winter)라고 부른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가격현상을 아래의 표현이 대변해 왔다.
"비트코인 가격은 반감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비트코인 차트를 장기적 관점이 아닌 단기적 관점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앞선 3번의 반감기에서는 할빙 직전에 비트코인 가격이 큰 폭의 하락세(28~62%)를 보였다. 반감기 전후시즌에서 할빙이 가격상승이 아닌 가격조정의 요인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실제 할빙 후 최대 3달까지의 횡보·조정이 나타났다. 이는 비트코인 가격이 채굴자의 채산성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할빙으로 인한 채굴보상의 축소는 채굴자의 채산성에 영향을 주면서, 채굴자는 당장의 채굴투입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보유 중인 비트코인을 매각하게 된다. 앞선 3번의 반감기 시즌에는 채굴자의 투매를 받아 줄 매수주체가 없었기에, 할빙 이후의 가격조정이 불가피했다. 물론 4차 반감기도 신규공급(채굴·발행) 측면에서는 앞선 반감기 시즌들과 유사한 내러티브다. 비트코인 4차 할빙 후에 채굴원가는 약 50K에서 80K로 60% 가량 상승한 반면, 가격은 80K 이하의 가격구간에서 조정 중이라면, 이는 채굴할수록 손실이라는 의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잔여 채굴보상량은 이미 공급된 비트코인양에 비해 미미해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살장채굴업체의 주가는 할빙을 거치면서 상승해왔다. 비트코인 생태계에서 채굴보상이 다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흔히 자산유통시장에서 1차 시장(primary market)은 발행시장을 의미하며, 2차 시장(secondary market)은 유통시장을 의미한다. 비트코인 시장에서 채굴을 발행(issue, 신규공급)이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비트코인 발행시장과 유사하게 채산성
한 발행시장이 있으니, 바로 국내 부동산개발시장이다. 2022년 이후 국내 부동산개발시장은 고금리·인플레이션로 채산성(개발이익)이 없어지며, 대부분의 발행자(시행사)들의 파산위기에 처해있다. 채산성(採算性)은 수입·지출을 고려하여 이익이 남을 성질을 말한다. 채산성이 낮다는 말은 양(+)의 이익률이 낮다는 의미이지만, 채산성이 없다는 말은 사업지출이 사업매출을 능가하면서 음(-)의 이익률을 의미할 수 있다. 이전 글 <점점 현실화되는 위험의 전염, PF>에서는 공사원가 상승분을 분양가(매출)에 반양할 수 없는 시행사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익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언급했었다.
이전과 다른, 4차 반감기
4차 반감기를 전후한 비트코인의 무빙은 이전의 반감기들과 달리 나타났다. ATH가 반감기 전에 도달했으며, 강한 조정구간에서 반감기를 지나갔기 때문이다. ATH가 이전 반감기보다 12~18개월 먼저 도래했다기 보다는, 비트코인 가격사이클의 전반적인 높이가 상향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다. 즉 12~18개월 내에 더 큰 상승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이클의 높이상향은 2024년 허용된 비트코인ETF가 큰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이미 과거 3차례의 패턴을 익힌 개인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한 빅브라더의 새로운 전략이 궁금할 뿐이다. 2023년 7월부터 FOMC는 23년 만의 최고수준인 기준금리 5.5%를 유지 중인데, 2024년 내 금리인하 기대가 팽배한 상황이다.
채굴자의 채산성, 해시레이트
반감기로 인한 보상부족으로 인해 채굴자들이 이탈하면, 해시레이트는 급락한다. 해시레이트(hashrate)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팅파워의 총량을 측정하는 지표로, 주로 채굴 채산성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매력도·경쟁도이다. 채굴자들이 현재의 네트워크 상황을 긍정적으로 느끼면 더 많은 채굴장비를 가동할 것이며, 해시레이트의 상승은 더 많은 채굴장비의 가동을 의미한다. 반대로 해시레이트의 하락은 낮은 채굴수익성으로 인한 채굴자의 철수를 의미한다. 해시레이트가 높으면 거래처리속도가 향상되고, 해시레이트가 낮으면 거래처리속도도 둔화될 수 있다.
채굴자의 수익은 가격·해시레이트에 의해 결정되는데, 해시레이트 급등과 가격폭락은 모두 채굴자의 수익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된다. 해시레이트가 높으면 채굴자의 가성비가 낮아지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져야만 채굴자로의 보상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4차 반감기의 문을 연, 에픽사토시
2024년 4월 20일 09시 09분 비트코인은 4차 반감기를 지나면서, 블록형성당 채굴보상이 3.125BTC(기존 6.25BTC)로 감소했으며, 일일 공급량도 450BTC(기존 900BTC)로 줄었다. 4차 반감기 직전까지 채굴된 비트코인 총량은 19,687,500BTC로 총발행량(2100만BTC) 대비 96.88%에 달하는데, 이는 2140년까지 잔여 발행량이 고작 3% 가량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트코인은 매 21만 블록마다 반감기가 진행되는데, 84만번 블록을 채굴한 ViaBTC(당시 세계 3위 비트코인 채굴풀)는 4차 반감기 직후 첫 블록을 채굴한 대가로 3.125BTC를 받았다.
84만번 블록은 '다른 시대를 연다'는 의미로 에픽사토시(Epic Satoshi)이라고 명명되었다. 참고로 사토시(Sat, Satoshi)는 1BTC를 1억으로 나눈 최소단위이다. 3.125BTC에 불과한 채굴보상이 다소 시시해 보일 수도 있지만, 채굴업자들은 채굴보상 외에 수수료수입도 있다. 비트코인 1개의 블록에는 다수의 트랜잭션(거래기록, transactions)이 들어있는데, 각각의 트랜잭션은 해당 블록을 채굴한 채굴업자에게 소정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84만번 블록에는 3,050개 트랜잭션이 들어 있는데, 이는 통상적인 트랜잭션 수보다 월등히 많다. 상징성 있는 블록에 인스크립션(비문, inscription)하려는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여기서 창출된 수수료수입도 37.626BTC로 큰 규모였다. 인스크립션은 원래 책·돌에 기록을 새긴다는 의미를 가지나, 블록체인업계에서는 블록에 데이터를 새겨 NFT·토큰을 발행하는 의미로 쓰인다.
참고로 1SAT 보다 큰 단위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μBTC(마이크 비트코인) : 0.000001 BTC
mBTC(밀리 비트코인) : 0.001 BTC
cBTC(센트 비트코인) : 0.01 BTC
dBTC(데시 비트코인) : 0.1 BTC
가상자산거래소에서는 거래단위의 통일을 위해 0.00000001BTC을 채택하고 있는데, 사실상 1SAT이다. 1억에 가까운 1BTC를 만원 이하의 돈으로 살 수 있는 이유이다.
비트코인 블록체인도 처음부터 블록에 메시지를 넣는 것은 가능했으며, 2009년 1월 3일 사토시 나카모토가 최초로 채굴한 제네시스블록(genesis block)에는 당일 타임즈 1면 헤드라인이 16진수로 기록되었다. 비트코인 최초의 비문이면, 블록 내에 단 하나 있는 신화적인 사토시이다. 탈중앙화된 블록체인에 기록된 정보는 마치 단단한 돌에 새겨진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앞선 3번의 반감기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을 뿐, 반감기 직후 첫 블록을 채굴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4차 반감기에는 에픽사토시의 채굴자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이는 룬즈(runes)프로토콜이 활성되면서 비트코인의 블록조각(Sats)에 특별한 표시를 넣을 수 있는 기술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앞선 반감기 시즌들에서 비춰보면, 반감기로부터 3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대략 1년 이상은 대세상승장이 올 수 있다. 4차 반감기로부터 3개월이 지난 시점은 2024년 7월 20일이다. 특히 4차 반감기는 비트코인ETF로 인해 가격수준 자체가 높아져 있다고 봤을 때, 지난 시즌보다 더 큰 폭의 가격상승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비트코인 시장 자체가 급속도로 성숙해가고 있는 상황이라 과거같은 큰 폭의 가격상승이 제한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암호화폐는 아직까지 신생자산으로 인식되는 만큼, 전통자산보다 큰 강도의 포모현상을 보일 것이다. 「소외된다는 두려움」을 의미하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는 지속되는 급등장에서 오히려 매수량이 커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부동산·금융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찾아온 자산사이클, 금리인하 (8) | 2024.09.26 |
---|---|
오래 전 글로 피어난, 파주 (8) | 2024.09.17 |
아직까지 계속되는 시행착오, 부동산신탁 (0) | 2024.07.11 |
무너진 후에야 뒤늦은 견제 ,미국 조선업 (0) | 2024.06.29 |
등록임대주택 아닌 혜택, 거주주택 (0) | 2024.06.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