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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익숙하지만 생각보다 짧은 역사, 삼겹살

by Spacewizard 202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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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외국에서는 돼지고기(돈육)의 안심, 등심, 뒷다리 등 지방이 적은 부위들을 즐겨 먹는 반면에, 뱃살부위인 삼겹살은은 기름기가 많아서 베이컨, 기름 및 화장품 재료 등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현재도 외국에서는 삼겹살이 다른 부위들에 비해 인기가 없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 올 수 없을 정도로 삼겹살을 즐겨 먹으며, 그 부족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남미와 유럽으로 부터 상당한 비중의 삼겹살을 수입하고 있다. 삼겹살을 먹기 위한 명분도 다양한데, 미세먼지가 많거나 대청소를 한 날이면 목에 낀 먼지를 기름으로 씻어내기 위해서 찾게 되고 매년 3월 3일을 '삼겹살데이'라 하여 가뜩이 자주 먹는 삼겹살을 콕 집어 하루 더 챙기고 있다. 과연 삼겹살은 언제부터 우리에게 익숙해졌는지 한번 알아보자.

돼지고기 부위별 특징 및 용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돼지고기 부위별 특징 및 용도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역사적으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 삼겹살

삼겹살은 다양한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재료였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끓여 먹는 수프의 주재료로 사용된 반면, 다른 문화권에서는 바삭한 베이컨이나 다른 형태의 요리들을 만들기 위해 굽거나 튀겨졌다. 또한 고대 중국에서는 삼겹살이 화폐의 한 형태로 사용되었는데, 가령 당나라(618~907) 시대에는 삼겹살이 일반적인 교환수단이었고 때때로는 세금을 돈육으로 납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부 문화권에서는 삼겹살이 종교·문화적 의식에 사용되어 왔는데, 고대 중국와 일부 아프리카 문화에서 제사의식과 관습적인 의술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과거 삼겹살은 다른 부위에 비해 많은 지방으로 인해 덜 부패하면서 오래 보존할 수 있었다. 베이컨은 보통 배·등 부위로 만들었는데, 그 기원은 삼겹살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소금에 절였던 고대로마로 거슬러 간다. 베이컨은 소금, 설탕, 향신료 등의 혼합물로 돈육을 문지르고(rub) 담근 후 헹구고 건조시켜 만들어진다. 이후 경화된 베이컨은 얇게 썰어 튀기거나 구워서 요리할 수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삼겹살이 너무 맛있고 비쌌기 때문에 오플렌타(opulenta)라고 불렸으며, 로마인들은 그것을 왕족을 위한 진미로 여겼다고 한다. opulenta는 '풍부한' 내지 '부유한'를 의미하는 라틴어로, 영단어 opulent의 어원이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존재감 없었던, 돼지고기

 

소의 도축은 금지하는 우금령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오랫동안 시행되어 온 정책이었다. 불교국가 고려는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였으나, 고려 말기 원나라의 영향으로 육식이 널리 확산된다. 육식문화의 확산은 당시 충분치 않던 소의 도축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조선은 농사의 주요 노동력을 제공했던 소를 보호하기 위해 우금령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우금령에도 불구하고 소고기를 먹는 방법은 있었다. 원칙적으로 죽은 소의 고기는 먹을 수 있었으니, 살아있는 소의 뼈를 부러뜨려 관청에 허위보고를 하는 것이다. 심지어 18세기 이후에는 한성의 사대부들이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에 화로에 숯을 피워 소고기를 구워먹는 난로회라는 풍습이 생겨났는데, 정조 또한 규장각 신하들과 난로회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후기 난로회의 유행은 우금령이 실효성이 없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약 4,000년 전부터 돼지를 사육하였는데, 이는 한자에서 잘 나타난다. 집 가(家)를 분해하면 집 면(宀)과 돼지 시(豕)가 합쳐져 있는데, 이는 오래 전부터 집에서 돼지를 키웠다고 추정케 한다. 중국에서 돼지가 가축으로 채택된 이유는 뱀으로부터 인명피해를 막으려는 목적인데, 돼지는 두꺼운 지방을 방패삼아 뱀을 내쫓거나 잡아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한반도에서는 돼지사육(양돈)이 잘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는 사료비 대비 효용치를 비교했을 때 강력한 노동력을 제공했던 소의 경제성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사람이 먹는 곡물도 없던 시절에, 돼지에게 줄 곡물사료가 없으니 뒷간의 분뇨를 먹였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는 정책적으로 양돈이 권장되기 시작한다.

 

전국적인 삼겹살의 유행

 

1931년 방신영 교수의 저서 <조선요리제법>에서는 돈육 중에 가장 맛있는 부위로 뱃바지(배)의 세겹살이라고 적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동안은 삼겹살 부위를 뱃바지고기 또는 삼층저육을 불렸다고 한다. 삼겹살이라는 용어는 1959년 경향신문에서 첫 등장하게 된다. 삼겹살의 조리법은 1960년대 청주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청주삼겹살간장소스에 버무려 연탄에 구운 삼겹살을 파절이와 함께 먹는 방식이었다. 1960년대 말에는 연탄불에 석쇠를 올려놓고 고기에 소금을 쳐서 굽는 소금구이(시오야끼)가 판매되었다가, 1970년대 초에는 무쇠불판와 간장소스를 이용한 조리법으로 변했다. 간장소스는 잡내를 없애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여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 잡았으며, 간장, 초고추장, 고춧가루 등으로 버무린 파절이도 삼겹살의 맛을 한껏 돋구었다.

 

1960~1970년대 강원도 탄광촌에서는 돼지비계가 목에 낀 먼지를 씻어낸다고 하여 광부들이 삼겹살을 즐겨 먹기 시작하였다. 1973년 기업양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사육기술 발전과 미국산 옥수수 사료의 보급이 양돈산업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최초로 기업양돈을 시작한 기업은 삼성(중앙개발)으로, 그 장소는 지금의 용인 에버랜드(전 자연농원)였다. 당시 정부의 축산진흥정책에 부응하여 많은 재벌들이 낙농·한우 목장을 건설한 반면, 삼성은 양돈에 집중하였다. 사업성 측면에서 자본회전율, 생산량, 연관산업(사료, 햄공장, 종돈장) 등을 분석한 후, 돼지를 중심으로 한 투자가 유망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들어 사육농가에 사육기술이 보편화되면서 돈육품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는데, 이때부터 냄새걱정 없이 구워먹는 방식과 삼겹살을 삶아서 만드는 돼지보쌈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돼지고기는 오랜 동안 인류의 역사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어 왔고, 그 중 삼겹살은 고대 로마 대부터 베이컨의 재료로 이용되어 왔으며, 현재는 한국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남미와 유럽의 많은 나라로 부터 상당한 양을 수입하고 있으며, 먹는 방식에 따라 대패 삼겹살, 벌집 삼겹살, 허브 삼겹살, 와인 삼겹살, 고추장 삼겹살 등 종류도 다양하다. 삼겹살구이 역사는 40년 전후로 생각보다 짧지만, 한국음식에 있어서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은 삼겹살구이는 소중한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 정도 일찍 퇴근하여 소중한 가족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는 여유를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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