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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불심과 흥청이 거쳐간 공간, 탑골공원

by Spacewizard 2023.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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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다공원으로 익숙한, 탑골공원

조선초기까지 사찰지에서, 흥청망청으로 변모

근대 이후 도심공원, 혁명공간, 그리고 대규모 자본의 아케이드

[Shorts] https://www.youtube.com/shorts/WjRNxVVyZJM

 

20년 전만 해도 '파고다공원'이라 하면, 정확한 위치는 몰라도 전국민이 서울의 유명한 공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서울 종각역에서 종로3가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종로2가 교차로의 북동쪽에 탑골공원이 위치한다. 현재는 노인들이 바둑을 두면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무료급식을 제공받는 노인공원의 이미지가 짙은데,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찰·기생숙소·관아 등의 다양한 공간용도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서울 도심에 위치한 탑골공원의 과거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서울 탑골공원 전경
서울 탑골공원 전경 [출처:문화재청]

고려부터 이어져 온, 사찰지


고려는 개경(현 개성)을 수도로 정했고, 불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였다. 당시 한양에 사찰 흥복사(興福寺)가 창건되었는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한양(한성)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흥복사를 조계종(曹溪宗)의 본사로 지정했다. 하지만 숭유억불을 시행하던 조선에서 스님들은 도성 안에 살지도 못했고, 1424년(세종 6) 흥복사도 폐사되어 관아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왕족(특히 왕실여인)들은 암암리에 불교에 관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분신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게 된다. 1464년(세조 10) 세조는 유생·양반의 반발을 무릎쓰고 흥복사터를 넓혀 원각사을 세웠고, 1467년 사월초파일에는 13층 석탑을 완성했다. 원각사지십층석탑은 원래는 10층이 아닌 13층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과거 누군가가 상층부의 3개층을 내렸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연산군 지시설과 임진왜란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일본으로 반출하려 했다는 설이 있다. 대형사찰이었던 원각사는 대광명전(본당), 수도하는 선당, 법뢰각(종루), 경판을 보관하는 해장전, 적광문·해탈문·운집문·반아문 등의 대소문들 그리고 현재까지 존치하는 13층 석탑 등 둘레가 1.4km에 이르렀다. 


연산군의 방탕한 놀이터, 연방원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은 생모 폐비윤씨(성종 왕후)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생각한 나머지, 사림·훈구를 가리지 않고 많은 신하들을 죽였다. 이를 갑자사화라 한다.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은 과격한 행동과 놀기에만 열을 올렸는데, 마침내  원각사에 연방원(구 장악원)을 두게 된다. 1505년 6월 연산군이 파견한 채홍사(採紅使)는 미녀와 준마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약 1만명 이상의 여성들을 징발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사대부의 첩이나 양인의 아내·딸, 노비, 창기들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왕실기생으로 편입되며, 연산군이 직접 지은 다양한 호칭들(운평·계평·채홍·속홍·부화·흡려 등)으로 불리게 된다. 재주와 미모가 모두 뛰어나면 흥청(興淸), 재주가 뛰어나면 운평(運平)이라 불렀다. 흥청 중에서도 왕과 잠자리를 같이 한 자는 천과(天科)흥청, 그렇지 아니한 자는 지과(地科)흥청이라 하였고, 잠자리에서 만족하지 못한 자는 반천과(半天科)라 하였다. 흥청 출신인 장녹수는 연산군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기도 했다. 연산군이 노는 일에 얼마나 정성을 다 했는지 알 수 있다. 엄청난 규모의 왕실기생이 거처할 시설을 모두 7개소를 지었고 연회비로 국고가 비어 가면서 나라는 망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원래 '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으라'는 좋은 의미를 가졌던 흥청의 의미는 연산군의 일탈로 변질되었고, 흥청이 '나라를 망치는 망청(亡淸)'이라는 의미로 흥청망청이 유래하게 된다.


오랜 방치 후에 근대공원으로, 파고다공원


1506년(연산군 12)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된 후, 연방원은 한성부 관청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관청의 수장이 이유없이 변사하는 괴변이 발생하였고, 불사를 폐한 것이 빌미라는 흉흉한 풍문이 돌면서 관청건물은 헐리게 된다. 이후 민가 200여호에 들어섰지만, 명종이 거주금지를 내리면서 13층석탑과 사적비 만이 보존된 채 방치하였다. 1897년(광무 1) 한성부 판윤 이채연이 영국인 고문 브라운과 함께 대한제국 최초의 근대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있었던 이유로 '파고다'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산스크리트어인 스투파(stupa)에서 유래한 파고다(pagoda) 석가모니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무덤건축물 내지 불탑(佛塔)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조선총독부가 원각사지십층석탑을 파괴하려는 시도에 실패하면서 내뱉은 '빠가야로 공원'이라는 욕설이 파고다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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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이 담긴, 혁명공간


1919년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의 발상지로 많은 이들이 모였었고, 특히 팔각정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역사적인 장소로 남아있다. 1956년 공원 내에 이승만 동상이 세워졌는데, 이는 80살 생일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1960년 4.19혁명 당시에도 수많은 인파가 모일만한 유일한 도심공원이었는데, 시위가 한창이던 1960년 4월 26일 오전에 이승만 동상이 시민들에 의해 끌어 내려진 직후, 이승만은 하야선언을 했다. 1966년 삼성그룹 계열의 한국비료가 대량의 사카린을 밀수하여 공화당 정치자금으로 제공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이때 국회의원 김두한이 국회 내에서 투척한 인분이 파고다공원 화장실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민간투자로 상업시설로 변신


파고다공원의 원형이 훼손되기 시작한 시점은 1967년인데, 박정희 대통령은 대규모 민간자본(1.3억)을 투입하여 공원의 테두리를 둘려싸는 아케이드를 건설하고 공원입장료를 받으라는 지시를 하였다고 한다. 아케이드(arcade)는 기둥·교각에 의해 지탱되는 아치(arch)가 연속적으로 이어짐으로써 만들어지는 복도와 같은 공간으로, 도시 내에서는 아케이드 통로 양쪽에 상점들이 들어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후 1969년 서양식 석조대문은 동숭동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교문으로 기증되었고, 1972년 삼성건축이 강릉 객사문을 모방한 삼일문을 새로 만들었다. 당시 2층 규모의 파고다 아케이드는 소공동 반도조선 아케이드(현 스타벅스 환구단점 자리), 공평동 신신백화점(현 SC제일은행 본점 자리)과 더불어 서울 3대 쇼핑아케이드로 인기를 끌었다. 파고다 아케이드에는 고급 기호물품(악기·양장 등)을 파는 상가들이 밀집했었다. 1983년 파고다 아케이드가 철거되면서, 악기상들이 바로 북쪽에 위치한 낙원상가로 이전하였다. 이후 낙원상가는 악기상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된다.

낙원상가와 파고다 아케이드 조감사진
낙원상가와 파고다 아케이드 조감사진

1988년 5월 서울특별시에서 무료공원으로 개방했으며, 1991년 10월 탑골공원으로 개칭했다. 2011년 7월 다시 서울탑골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된다. 1990년대 이후 종묘공원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노인쉼터가 되었고, 주변에는 노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오래된 상가가 많다. 그러나 무료급식 등으로 노숙자가 몰려들고, 일부 노인들이 술판을 벌이는 고성방가를 일삼으면서 사회문제가 되었는데, 특히 속칭 '박카스 아줌마'라고 불리우는 성매매 여성들까지 모여들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결국 2001년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으로 탑골공원의 정비로 일부 설비 철거 및 무료급식소 이전, 고성방가 단속으로 노인 이용객이 하루 수십명 수준으로 격감했다. 이에 대한 풍선효과로 노인들은 종묘광장공원으로 이동했으나, 2007년부터 시작한 '종묘광장 성역화 사업'으로 종묘광장공원의 노인 이용자 수도 크게 감소했다.

서울 탑골공원 자리는 불교의 국가 고려에서 남경인 한양에 사찰을 지었고, 조선시대를 지나오면서 공터, 대형사찰, 기생숙소, 민가 및 근대공원의 공간 등으로 사용되었다. 모든 땅의 역사가 이렇듯 다양한 공간변화를 간직하고 있겠지만, 대부분 이 일일이 기록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탑골공원 부지가 가지는 역사적 가치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유독 권력(궁궐) 근처에 우여곡절을 가진 땅들이 많은데, 이는 권력자의 의지가 미치는 공간범위에 있고, 그와 동시에 권력을 향하려는 자들의 욕심이 작용해서그런건 아닐까.

 

# 지나간 그 자리

https://www.youtube.com/watch?v=HTP3OdunnUk

The place that passed by #지나간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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