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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포화와 불포화의 영역, 기름

by Spacewizard 2024.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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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라면의 전성시대였다고 할 수 있는데, 농심 신라면과 팔도 도시락(컵라면)이 처음 출시된 해이다. 당시 국민학생이었지만, 매운 이미지를 앞세운 신라면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몇몇은 전력질주를 하면서 정문을 향해 뛰어 나갔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팔도 도시락을 사먹기 위해서였는데, 친구가 부어주던 소량의 라면국물에 말아 먹었던 밥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근데 요즘 라면에서는 그 당시의 맛이 상실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생에서 처음 접한 자극적인 음식으로 인한 기억의 편향일수도 있고, 조리환경(연탈불·냄비 등)에 따른 차이일 수도 있지만, 당시 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당시와 맛의 차이가 나는 또 다른 음식이 있는데, 바로 중화요리(짜장면·볶음밥)이다. 당시 중화요리에 들어가는 돼지고기의 고소함과 바삭함부터가 지금과는 달랐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맛 차이가 유지(油脂, 기름)의 변화에서 왔다고 얘기한다. 오늘은 여기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자.

 

비만의 원인에 대한 오해, 식이지방

 

인체 내에서 지방축적(비만)을 일으키는 요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탄수화물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편이다. 인슐린은 체내 지방축적을 조절하는 호르몬인데, 혈중 인슐린 수치는 탄수화물의 양·질에 따라 결정된다. 탄수화물(특히 정제탄수화물)은 인슐린 수치를 급증시키면서, 포도당이 지방세포에 흡수되면서 만들어진 중성지방이 쌓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육세포는 혈중 유리지방산를 합성하면서 대사가 이뤄지는데, 유리지방산의 결핍이 근육세포의 대사율을 낮춤과 동시에 식욕을 상승시킨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은 배고픔·비만의 악순환을 가속화시키는 문제가 있는데, 이는 지방 위주의 식단이 식욕을 억제시키는 것과 상반된다.

 

1980년 미국 농무부는 저지방 콜레스테롤 섭취를 제한하는 식단을 권장하면서, 고탄저지(고탄수화물·저지방)가 확산되었다. 권장식단은 아래와 같은 4개층의 피라미드 형태인데, 면적이 넓은 아래쪽의 비중을 넓히라는 것이었다.

 

4층 : 오일·설탕

3층 : 고기·유제품

2층 : 채소·과일

1층 : 곡물(탄수화물)

 

국가가 권장한 식단이 확산되면서 탄수화물 섭취량을 점차 증가했고, 탄수화물·설탕의 섭취비중이 지방을 능가하면서 질적·양적인 문제가 동시에 발생했다. 질적으로는 미국인의 비만률·대사질환(제2형 당뇨 포함)은 크게 증가하였고, 양적으로는 식욕을 가속화시킴으로써 섭취량을 증가시킨 것이다. 이후 여러 연구들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제시하면서, 1990년대 말부터 지방·콜레스테롤에 대한 인식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만·대사질환의 주범은
식이지방(동물성 지방, 콜레스테롤)이 아닌
탄수화물이다"

 

1층을 쳐내고 채소/과일과 고기/유제품/기름으로 이뤄진 식단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고로 식단에서 지방의 비율이 아주 높으면 오히려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동물성 기름에 대한 오해, 우지파동

 

1989년 삼양라면의 「우지파동」이 있었는데, 라면을 공업용 쇠기름(소기름)에 튀겼다고 알려진 사건이다. 시기상으로 미국에서 권장된 고탄저지의 식단이 전세계로 보급된지 10년 가량된 시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가뜩이나 식이지방이 비만의 원흉으로 타겟팅된 상황에서, 기름 중에서도 동물성 기름은 가까이 해서는 안될 존재로 변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당시 수입업자들이 세금을 줄이기 위해 수입산 우지·돈지를 공업용으로 신고한 후, 식용으로 사용하던 관행이 있었다. 실제 삼양라면에는 식물성 기름보다 등급이 더 높은 동물성 기름을 사용되었지만, 대중의 왜곡된 인식에서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우지파동이 일어난 지 7년이 지난 1996년, 일부 중화요리집에서는 비계 이외의 부분에서 추출한 돈지를 조리에 사용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가죽·내장·뼈와 부속(간·콩팥·허파)에서 돈지를 추출했다고 한다. 동물성기름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로 인해, 동물성기름은 순식간에 식물성기름에 밀리게 된다. 식품제조업·요식업 사업자 입장에서도 비용 측면에서 굳이 비싼 라드를 쓸 이유도 없어졌으니, 어찌보면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이전 글 <수난 겪는 마법가루, 대체당>에서도 사카린이 24년 만에 안전물질로 인정되었지만, 인지부조화·확증편향으로 인해 사람의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언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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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방, 안 좋은 지방

 

이전 글 <생각하기 나름인, 콜레스테롤>에서는 지방을 이루는 지방산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봤었다. g당 열량이 9kcal인 지방은 탄수화물·단백질보다 훨씬 효율적인 에너지원인 만큼, 체중증가의 위험도 더 크다. 지방분자는 3가지 원소(탄소·산소·수소)가 연결된 구조로, 탄소를 중심으로 뻗은 가지 끝에 수소가 붙어 있는 모습이다. 가지에 수소가 꽉 찬 구조가 포화지방산이고, 가지에 수소가 다 채워지지 않은 채로 몇군데 비어 있는 구조가 불포화지방산이다. 불포화지방이 포화지방보다 건강에 유익하지만, 트랜스지방(불포화지방의 일종)은 포화지방보다 심혈관계에 2~4배 더 유해하다고 알려져 있다. 포화지방은 콜레스테롤과 합성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과다섭취는 LDL수치를 높인다. 그렇다고 포화지방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닌데, 피하지방층의 일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포화지방 : 고기기름, 마요네즈, 버터

트랜스지방 : 팝콘, 감자튀김, 마가린, 쇼트닝(도넛·케이크)

 

액체상태의 불포화지방은 산소와 접하면서 쉽게 산패될 수 있는데, 이러한 산패방지·보관편의를 위해 고체·반고체 상태로 굳힐 필요가 있었다. 경화(硬化, 수소화)불포화지방에 수소가 채워지면서 포화지방이 생성되는 공정을 말하는데, 촉매·수소를 넣은 고온환경(145~225℃)에서 일어난다. 산업적으로는 경화의 결과물이 포화지방 대신 트랜스지방을 생성하도록 조절되었는데, 2가지 조건(촉매·온도)이 동시에 만족되면 시스(-cis)형의 불포화지방이 트랜스형(-trans)으로 전환되면서 고체로 변한다. 그 결과 트랜스지방이 다량 함유된 부분경화유가 대량생산되었다. 문제는 트랜스지방이 식용유의 공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신물질이었던 만큼, 체가 트랜스지방을 처리하는 방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불포화지방 이중결합 분자구조 [출처:coffee4m]

트랜스지방은 체내에서 불포화지방을 밀어내면서 쉽게 산화될 뿐만 아니라, 체외로 쉽게 배출되지 않는다. 이러한 트랜스지방은 LDL의 증가와 HDL의 감소를 초래하면서, 복부질환·혈관질환(동맥경화·이상지질혈증)·암을 일으키게 된다. 포화지방과 마찬가지로 상온에서 고체상태를 띠는 트랜스지방이 혈관 속을 떠 다닌다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힐 수 있다. 요즘 치킨업계에서 기름의 제한된 사용횟수을 강조하는 브랜드들이 가끔 보이는데, 이는 인체유해성이 낮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식용유는 사용한(튀긴) 횟수가 많을수록, 트랜스지방이 증가한다고 한다.

 

건강하고 맛있는, 돼지기름

 

라드(lard)는 비계에서 돈지(豚脂, 돼지기름)를 정제하여 만든 기름으로, 다양한 요리·제과·제빵에 사용된다. 영양·맛이 우수한 라드는 생각보다 비싼 편이며, 중국·일본·서양에서도 월병·라멘·스프의 향미·풍미를 돋구기 위해 라드를 사용한다. 심지어 빵에 발라먹는 라드스프레드가 있을 정도이며, 일본라멘에는 비계가 붙은 삼겹살 차슈(叉燒)가 들어간다.

 

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단일불포화지방산은 혈관건강을 개선시켜 주는데, 단일불포화지방산을 많이 함유한 식품으로 올리브유(식물성)·라드(동물성)이 있다. 라드는 체온 수준의 온도에서 액체(불포화)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타 동물성지방(양고기·쇠고기)보다 불포화지수가 높다. 라드는 불포화지방이 60% 가량 차지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올레익산(오메가9) 50%, 리놀레닉산(오메가6) 9%, 알파리놀레닉산(오메가3) 1%이다. 라드는 동물성지방이지만, 사실상 올리브유·아보카도오일과 유사한 성분구성이다. 라드는 발연점이 다른 기름보다 훨씬 높아서 발암위험이 낮으며, 특히 올레익산은 발암억제기능을 한다.

 

라드는 비타민B·D, 미네랄 및 콜린을 함유하고 있다. 콜린의 부족은 심장병·치매·간에 문제를 일으키는데, 콜린이 인지능력(주의력 ·기억력)을 향상을 시킨다. 최근 다이어트 음식으로 돼지껍데기 과자가 소개된 적이 있다. 순수지방일 것 같은 돼지껍데기는 생각보다 저탄고단(저탄수화물·고단백질)의 저칼로리 식품이라고 한다. 피부·관절에 도움을 주는 풍부한 콜라겐은 덤이다. 라드에는 트랜스지방이 거의 없으며, 동물성 기름이라도 함유된 콜레스테롤이 버터의 절반 이하이다.

 

비싼 동물성 기름을 대체한, 경화유

 

비싼 동물성 기름인 버터·라드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각각 마가린·쇼트닝인데, 모두 트랜스지방을 함유한 부분경화유로 만들기 시작했다. 버터는 우유에서 4% 미만으로 추출되는 유지방으로 만드는 천연유지이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싸다. 1869년 나폴레옹 3세는 전쟁물자의 하나로 변질되지 않는 버터를 대량으로 만들도록 지시하면서, 마가린이 탄생했다. 당시 동물성 유지(우지·고래기름·생선기름 등)을 이용하여 마가린을 만들었지만, 현재는 주로 식물성기름(대두유·코코넛유·팜유 등)를 원료로 한다.

 

18세기 숏도우에 첨가되는 지방을 「부서지기 쉽다」는 의미를 가진 쇼트닝(shortening, 쇼팅)이라 불렀으며, 숏도우(short dough)는 밀가루 반죽에 지방을 첨가하여 짧게 끊어지는 반죽을 의미했다. 지방은 밀가루의 글루텐 분자 사이의 교차결합을 방해하여 부서지기 쉬운 질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과거 동물성·식물성 모두를 쇼트닝으로 분류하였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식물성 고체지방만을 주로 지칭하며 대부분은 가장 단가가 낮은 팜유로 만들어진다. 20세기 초 미국 식품회사 프록터앤겜블(P&G)에서 쇼트닝 제품 Crisco를 출시하면서 대중화되었다.

 

마가린·쇼트닝의 차이는 수분의 양인데, 마가린(margarine)은 수분이 15% 들어있는 유화물(물·지방 혼합)인 반면, 쇼트닝은 지방 100%이다. 수분이 전혀 없는 쇼트닝은 과자·튀김과 빵·케이크를 더 바삭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홈베이킹에서는 몸에 좋은 버터를 사용하지만, 대량으로 생산하는 일반제과점에서는 저렴한 마가린·쇼트닝을 사용한다. 마가린은 딱딱할수록 트랜스지방의 함량이 높다. 길거리 토스트가게에서 쓰이는 딱딱한 마가린은 고소한 향을 풍기지만, 건강에는 딱히 좋지 않을 것 같다. 쉽게 녹는 마가린은 냉장보관이 필요하며, 상온에서도 고형을 유지하는 쇼트닝은 실온보관이 가능하다.

 

1980∼1990년대 우지·돈지 파동을 겪은 후 가장 아쉬운 부분은, 중화요리집에서 라드 대신 식물성기름(대두유 등)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어디에선가는 라드로 볶은 밥·돼지고기를 사용하고 있겠지만. 2007년 12월 국내 가공식품의 영양표시에 트랜스지방을 표기하게 되면서, 현재 시판되는 대부분의 과자류는 트랜스지방이 없다고 표시되고 있다. 식품업계에서도 부분경화유가 아닌 다른 유지를 개발하여 트랜스지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경화유를 완전대체하지 않는 한 트랜스지방은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식이유지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편견이 아닌 올바른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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