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중앙은행은 1668년 설립된 릭스방크(스웨덴 중앙은행)이지만, 근대적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을 최초로 수행한 금융기관으로 1694년 설립된 영란은행이 꼽힌다. 스웨덴은 스위스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중립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무역을 통한 성장을 이뤄왔지만,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1970년 전후로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21세기에 펼친 적극적 이민정책은 「갱단의 활동거점」이미지를 고착시키면서,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음성화시키고 있다. 세계 최초로 마이너스금리를 적용한 국가라는 타이틀은 그만큼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오늘은 스웨덴이 최고(最古)의 중앙은행과 최초의 마이너스금리를 가지게 된 배경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자.
누구한테든 갚아야만 하는, 빚
채권(債券)은 자금수요자가 자금을 빌리는 대신 발행해주는 채무증서(debt instrument)로, 이자지급시기·상환만기일이 정해져 있다. 채무증서는 차용증서와 부분되는 개념으로, 차용증서는 직접 돈을 융통한 당사자 간에만 법적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매매가 되지 않는다. 매매가 가능한 채권은 만기도래시 최종보유자가 발행자로부터 약속된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데, 금융적 특성으로는 발행일·만기일 사이의 시간차를 근거로 유동성이 높아지면서 채권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불특정 다수들 사이에서 가격이 책정·매매되고, 매매과정에서 수시로 변하는 가격에 따라 매매차익을 노린 투자상품으로 유통되고 있다. 발행자에 따라 국채(정부)·회사채(회사)·금융채(금융기관) 등으로 구분되면, 환매(還買, 다시 사들이는) 조건이 붙은 환매조건부채권도 있다.
「채권(빚의 증서)」를 의미하는 본드(bond)의 사전적 정의는 유대관계·굴레·구속·농노이며, 「묶는 것」을 의미하는 토종영어 반드(band)에서 유래했다. 영미권에서 성씨는 직업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본드는 영주에 예속된 농노(農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과거 본드는 잠재적 노예문서나 다름이 없었다. 갚지 못한 채무는 굴레처럼 따라 다녔고, 채무를 끝까지 갚지 못할 경우 채권자의 노예가 되었다. 자칫 자신을 노예화시킬 수 있는 빚을 위험한 것으로 바라보는 인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는 레버리지의 효용이 이론화되었을 만큼 부채의 이미지는 전환되고 있다. 특히 투자·기업가치 측면에서 적정한 규모의 부채가 자기자본 가치의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부채(debt)은 「빚을 진」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데비툼(debitum)에서 유래되었는데, 이후 프랑스어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스펠링b가 빠진 상태로 영어 뎃(dette)이 되었다. 14세기 영어표기가 라틴어 원전에 충실한 방향으로 수정되면서, 스펠링b는 다시 들어왔지만, b발음은 여전히 생략되었다. 영단어의 묵음은 왜 생겨났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는데, 오랜 시간 언어의 변천과정에서 자연스레 굳어 온 것이다.
최초의 은행권 발행, 스웨덴
과거 1600년 전후로 스웨덴은 구리본위제를 운영했다. 이는 계속되는 패전으로 인해 금·은이 외부로 크게 유출된 반면, 구리는 풍부했기 때문이다. 당시 스웨덴의 구리생산량은 유럽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했는데, 주화로 쓰이는 구리의 공급량을 줄이면 구리의 수출가격을 올릴 수 있는 효과도 누릴 수 있었다. 구리주화는 금화·은화에 비해 큰 단점이 있었다. 같은 무게의 금화·은화에 비해 낮은 가치를 보완하기 위해 무게를 늘려야 했는데, 가장 무거운 주화가 무려 20kg에 달했다고 한다. 구리주화는 휴대가 거의 불가능했기에, 자연스레 주화휴대없이도 지급결제기능이 가능했던 은행이 필요했다.
1624년 네덜란드 출신의 한 상인이 스웨덴 최초의 민간은행을 설립하였고, 고객(상인)으로 예금을 받으면 예금증서(보관증)을 발급했다. 여기까지는 그 이전의 이탈리아·네덜란드의 공공은행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후 스웨덴의회는 은행권 발행에 대한 허가하면서, 유럽 최초의 은행권이 스웨덴에서 발행된다. 은행권은 예금이 아닌 은행의 신용에 기반한 증서이며, 이는 신용의 가치를 도약시킨 놀라운 사건이었다. 물론 은행권은 통제없이 남발되면서, 은행의 신뢰도는 추락하였고 결국 파산하게 된다. 1668년 스웨덴의회는 릭스방크(Riksbank, 현 스웨덴 중앙은행)를 설립했는데, 이는 스톡홀름은행을 국유화한 것이다. 초기에 금지되었던 은행권의 발행도 점차 허용하였고, 은행권 남발이 초래할 물가상승의 문제도 릭스방크가 도맡게 되었다. 오늘날 중앙은행의 물가안정의무의 시초이다.
은행권의 천하통일, 영란은행
17세기 후반 영국왕실은 프랑스와의 전쟁에 투입할 전쟁자금이 필요했는데, 윌리엄 페터슨(William Peterson)을 비롯한 12명의 제안으로 영국왕실은 영란은행을 설립했다. 페터슨은 이자율 8%로 120만 파운드를 조달·대여하는 대신, 정부가 보증(지급보장)하는 은행권의 발행과 함께 세금관리권한을 요구했던 것이다. 당시 영란은행도 민간은행이었지만, 타 민간은행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영란은행의 은행권에는 정부의 지급보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란은행 은행권은 점차 시중의 점유를 늘려갔고, 타 은행권들은 사라져갔다. 더 나아가 타 은행들도 영란은행 은행권을 사용하게 되는데, 오늘날 지급준비금처럼 영란은행에 자신들의 은행권을 예금한 것이다. 「정부의 주거래 은행」 내지 「은행의 은행」이라 불린 근대적 중앙은행의 탄생이다.
중앙은행이 현대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독점적 발권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1844년 금본위제를 규정한 「영국헌장법(은행장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이 법에서는 화폐발행의 법적 권한을 영란은행에게만 부여했으며, 화폐발행과 동시에 일정 부분은 금(리저브)를 보유할 의미를 부여했다. 1866년 영란은행이 최종 대부자 기능을 부여받기 전까지, 민간은행이었던 영란은행은 은행들의 파산을 방관했다. 최종 대부자 기능은 은행들이 파산위험에 처했을 경우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여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는 것이다. 이후로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도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 기능을 수행한다.
매각 없이 유동성 확보, 레포
환매조건부채권(Repurchase agreement)는 발행자가 일정기간(보통 1개월·3개월) 후에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며, 레포(RP, Repo)로 약칭한다. 일반적으로 단기자금거래는 담보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RP거래는 그렇지 않다. RP매수자는 채권을 담보로 확보할 수 있으며, RP매도자 입장에서도 적은 물량·수요로 인해 매매가 어려운 채권을 담보로 활용할 수 있다. 릭스방크는 기준금리(base rate)를 「7일물 RP」로 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금융권의 RP를 매입하면 시중자금(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인 반면, RP를 매각하면 유동성을 흡수하게 된다.
거액을 거래하는 금융기관은 포트폴리오의 상당한 비율을 채권에 할당한 후, 장기적으로 만기보유에 따른 이익을 얻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현금이 단기적으로 필요할 경우인데, 만기 전 매도를 통해 현금을 마련함으로써 만기보유에 따른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RP는 보유채권을 매도하지 않고도 필요한 현금을 마련할 수 있다. RP의 환매만기는 보통 1개월·3개월이며, 만기 1년 이내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단기금융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그래서 단기금리를 대표하는 금리로 RP금리를 꼽는다. RP의 가장 큰 리스크는 예금자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인데, 투자자는 이 점을 감안하여 RP로 매매하는 기초채권의 신용을 철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콜금리 대신 RP, 한국은행
2008년 3월 7일부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7일물 RP」로 변경했는데, 그 전까지는 1999년 5월부터 「콜금리 무담보 1일물」가 쓰였다. 콜금리는 은행 간에 적용되는 90일 이내의 금리로, 대부분은 1일물(익일물)이다. 기준금리로 콜금리가 사용하던 시절에는 은행에서 자금부족 상황이 발생하면 한국은행이 수시로 자금을 공급했다. 하지만 콜금리의 시장기능이 점차 약화되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저하되어 갔는데, 이러한 사유로 콜금리 대신 RP가 선택되었다. 통화정책의 파급경로였던 「콜금리→단기시장금리→장기시장금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시중유동성의 조정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은행이 7일물 RP을 기준금리로 하여 공개시장을 조작한다는 말은, 공개시장 조작이 없는 영업일 6일 동안은 은행 스스로가 단기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콜금리는 더 이상 기준금리가 아닌 시장금리에 해당되며, 단기자금 조달 과정에서 은행들의 책임감을 부여함으로써 단기금융시장이 활성화시키게 된다. 콜금리는 7일물 RP금리가 정해지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다. 한국은행이 7일물 RP시장에서 높아진 금리로 RP를 매각하면 시중유동성이 흡수되면서 은행 간 단기거래에서 적용되는 콜금리가 높아지는 반면, 7일물 RP시장에서 낮아진 금리는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콜금리를 낮추게 된다.
마이너스금리의 선구자, 스웨덴
스웨덴은 실험적 통화정책인 마이너스금리(Negative interest rate, Sub-zero)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국가이다. 2009년 기준금리를 △0.25%까지 인하했다가, 2010년 제로금리로 복귀했다. 이 일시적 실험정책은 인플레이션 목표를 이뤘지만, 부동산가격 상승과 경제주체의 마이너스금리 의존도를 높이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2015년 2월 기준금리는 △0.5%까지 인하했다가, 5년 가량 지난 2019년 12월 2차례 이상하면서 제로금리로 복귀했다. 실물경기(산업생산·기업신뢰도) 회복과 인플레이션 부양을 목적으로 한 서브제로였지만, 경제성장률은 2015년 4%대에서 2016~2018년 2%대로 오히려 떨어졌고, 인플레이션도 목표치(2%)에 미달했다. 다음과 같은 교훈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의도한 행동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스웨덴이 서브제로를 유지할 수 없었던 배경에는 주택가격·부채(주택담보대출) 급증이 있었다. 스웨덴은 2차례의 마이너스금리는 공히 부동산시장의 과열이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면서, 가계부채가 가처분소득의 1.8배를 초과했다. 매번 그랬듯이, 버블은 부채증가율이 소득증가율을 초과하면서 맺히기 시작하고, 그 차이가 극에 달하면서 붕괴된다. 가계는 무수익 저축보다는 레버리지를 통한 무분별한 투자를 선호했고, 한계기업은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성장잠재력이 약화시킨다. 비은행권(연기금·보험사)들은 수익성 향상을 위해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통해 고위험 자산으로 재편해야 했는데, 이는 국민들의 자산이 고위험에 노출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약 350여년 전에 스웨덴은 은행권 발행이라는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금융(신용)시장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으며, 최근에는 2번의 실험정책(마이너스금리)을 선도하면서 그 부작용을 전세계에 알려줬다. 하지만 현실은 실전이며, 실전은 테스트로 끝나지 않는다. 스웨덴의 교훈를 바탕으로,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국부를 사수하는 경제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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