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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수컷을 곁으로 이끈, 친자확인

by Spacewizard 2024.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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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BC 「실화탐사대」에서는 11년만에 나타난 여성(원고)이 몰래 낳은 아이의 양육비를 남성(피고)에게 청구했다는 사연이 전해졌는데, 이들은 성인사이트 랜덤채팅을 통해 만났다고 한다. 결국 양육비소송 과정에서 진행한 유전자검사 결과 친자확률 99.99%가 나왔고, 항소심에서 과거 양육비 4,920만원과 장래 양육비로 매월 90만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원고는 4명의 자녀를 홀로 양육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전남편·피고를 포함한 3명이었다. 특이하게도 셋째아이는 가택을 침입한 도둑에 의해 원치않은 임신을 했다고 한다.

 

방송을 보면서 다소 자극적이지만, 진화론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침팬지와 갈라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 중의 하나가 친자확인이기 때문이다. 사람·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지봉(Gibbon, 긴팔원숭이)은 모두 공통조상을 가지며, 그 분화시점은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고 한다.

 

지봉 조상 : 2,000만년 전 (사람과의 유전적 유사성 95%)

오랑우탄 조상 : 1,500만년 전 (96.4%)

고릴라 조상 : 1,000만년 전 (97.7%)

침팬지 조상 : 700만~1,000만년 전 (98.4%)

사람 조상 : 700만년 전

 

영장류(primate)는 사람상과·긴팔원숭이과로 구분되는데, 보통 사람상과에 속하는 대형 영장류를 유인원(ape, 사람과 비슷한 모습의 원숭이)라 한다. 유인원에는 사람 외 침팬지·오랑우탄·고릴라·보노보 등이 속하는데, 원숭이와 달리 꼬리가 없으며, 상대적으로 긴 앞다리로 직립에 가까운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우연으로 거듭난, 현생인류

 

진화는 의도하지 않은 우발적 사건의 연속·결과·과정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독보적인 종으로 거듭나기까지, 아래와 같이 2가지의 우연이 있었다.

 

기후변화(열대우림→사바나)

발정기 숨김

 

침팬지는 아프리카 밀림의 캐노피에서 생활한다. 임관층(林冠層, canopy layer)은 식물군락에서 수관들이 모여 형성하는 윗부분을 말하며, 수관(樹冠, crown)은 지표면 위로 드러난 모든 식물의 특징들(줄기·잎·꽃 등)의 총합구조를 의미한다. 700만년 전 침팬지에서 분리된 직립보행종은 캐노피에서 내려오게 되는데, 이는 기후변화로 인해 열대우림이 사바나로 변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기후대가 건조해질수록 삼림이 아닌 초원·황원이 형성되는데, 사바나(savannah)열대의 가장자리에서 발달하는 삼림·초원의 중간단계이다. 건기(연중 5~7개월)가 뚜렷하며, 습윤기의 상태에 따라 풀의 상태나 나무의 수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캐노피(canopy)여러 형태의 덮개를 통칭하는 말로, 건축분야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캐노피는 「모기를 막기 위해 쳤던 커튼」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코노페이온(konopeion)에서 유래하였는데, 중세 서양의 고급침대 위에 드리워진 비치는 천을 생각하면 된다.

사바나에서의 포식자
사바나의 포식자 [출처:위키백과]

관목이 드문드문 자라던 확 트인 사바나에서는 더 이상 몸을 숨길 공간이 없었고, 포식자(맹수)를 확인하고 피하기 위해 허리를 펴서 시야를 넓히고 계속 움직이면서 숨어야 했다. 참고로 전지구에 초원이 확산되던 시기는 2,000만년 전 신생대 마이오세였는데, 그로부터 1,300만년이 지나서야 직립보행종이 땅을 밟은 것이다. 이전 글 <익숙하기에 몰랐었던 오래된, 지구>에서도 마이오세에 초대륙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초원들은 각 대륙들에 계속 퍼져 나갔다고 언급했었다. 직립보행종은 사바나에서의 생존을 위해 해결해야 할 2가지 문제는 아래와 같았다.

 

포식자 문제

먹이탐색 문제

 

사바나에서 구할 수 있는 식량은 주로 덩이뿌리였는데, 이는 영양분의 축적으로 식물뿌리의 크기가 커진 것이다. 가끔 포식자가 먹다 남긴 대형 초식동물의 사체를 통해 단백질을 확보했다. 포식자로부터의 위협을 피하기 위하여 개체수를 증대시켰고, 이는 더 많은 식량이 요구되었다. 넓게 퍼져 있는 덩이뿌리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더 먼 영역으로 움직여야 했지만, 넓은 공간으로 흩어지면 포식자에서 잡힐 위험이 높았다. 그래서 개체수의 군집밀도를 높이면서 공간을 확대했고, 높은 군집밀도는 교미의 기회를 높이게 된다. 수컷들의 경쟁이 과열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도의 교미전략으로 숨긴, 발정기

 

암컷 침팬지는 발정기가 되면 교미를 위해 다른 무리로 들어가며, 2주 간의 발정기 동안 12마리 가량의 수컷과 난교(교미시간 2~3분)를 한다. 교미에만 관심을 둔 수컷은 교미 이후의 과정(출산·육아)에서 자신의 자원(식량·보호)을 암컷·새끼와 공유할 이유가 없었는데, 이는 난교로 인해 친자확인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반면 수컷 호모사피엔스가 출산·육아를 부담하게 된 계기가 친자확인이다. 암컷 호모사피엔스가 생존을 위해 펼친 진화전략은 발정기를 숨긴 것이었는데, 이는 자신을 지켜줄 수컷을 곁에 두기 위함이었다. 암컷의 발정기가 눈으로 확인되면 발정기에만 교미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으나, 암컷의 발정기가 눈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결속감을 가지고 상시적인 교미를 해야만 했다. 결국 이러한 짝결속을 통해 친자확인의 확률을 높인 수컷 호모사피엔스는 암컷·새끼에게 자원을 제공하게 된다.

 

침팬지의 5~6년의 유아기(수유기)를 거친 후, 바로 성년기로 넘어간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는 유아기를 줄이면서 아동기를 늘렸으며, 특히 청소년기 국면을 만들었다. 수명이 30세 전후에 불과했던 호모사피엔스는 짧은 시간에 많은 출산을 해야만 했으며, 이를 위해 유아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아동기에는 얼굴대면(놀이과정)을 통한 사회정서훈련을 하였으며, 청소년기에는 아버지로부터 사회·문화적 훈련을 받았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사회적 자아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유전자검사

염색체, DNA, 염기의 모식도 [출처:기초과학연구원]

인간은 부모로부터 각각 23개(총 46개)의 염색체를 물려받는데, 친자확인유전자검사는 부모·자식 간의 염기서열을 대조하는 검사이다. 이전 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기원, 생명체>에서는 DNA를 구성하는 기본블록 dNTP에서 1번 위치에 염기, 5번 위치에 TP(삼인산)이 위치한다고 언급했었다. 4종의 염기(아데닌·구아닌·시토신·티민)가 나열된 염기서열은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데, 그 수가 30억쌍에 달한다고 한다. 단일염기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은 개체별 게놈 정보(유전자 염기서열)에서 배열 차이를 보이는 유전적 변화·변이를 말하며, 쉽게 말해 염기서열 중 개인편차를 나타내는 염기변이이다. 단연쇄반복(STR, Short Tandem Repeat)은 각 유전체의 비암호화영역에 존재하는 짧은(2~7개) 염기서열의 반복(최대 수십회)되는 형태의 다형성마커로, 개인마다 다양한 반복수를 가진다. 30억쌍의 염기서열을 일일이 대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15개의 STR을 비교하여 일치하는 STR의 개수로 아래와 같은 결과값을 도출한다.

 

STR 모두 일치 : 친자 판정

STR 1~2개 불일치 : 판정불능(추가검사)

STR 3개 이상 불일치 : 친자아님 판정

 

유전자 시험성적서에는 친자확률을 100%가 아니라 99.9%로 표시하는데, 이는 극히 드물게 친자가 아님에도 15개의 STR이 동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탈혼의 유산, 친자이슈

 

세계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친자이슈는 테무진(훗날 칭기즈 칸)과 주치 간의 관계일 것이다. 바이칼호 남쪽에 사는 메르키트족은 테무진이 신부를 맞이한다는 소식을 접한 후, 신부를 납치할 계획을 세웠다. 과거 예수게이(테무진 부)가 메르키트족의 에케칠레두가 맞이하려던 옹기라트부의 호엘룬을 납치했었는데, 호엘룬이 낳은 아이가 테무진이다. 참고로 몽고고원 동쪽에 위치한 옹기라트부에는 미인이 많기로 유명했는데, 원나라 내내 왕후자리를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MBC 드라마 「기황후」에 등장하는 왕후 타나실리(백진희 분)도 옹기라트부 출신이었다.

 

당시 몽골초원에서 약탈혼(납치혼)은 흔한 일이었다. 메르키트족이 습격하자, 테무진 진영은 새신부(보르테)만 남겨둔 채 도망쳤다. 테무진이 보르테를 구출할 당시, 보르테는 주치(테무진 장남)를 임신한 상태였다. 주치가 누구의 친자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죽는 날까지 따라 붙었는데, 경쟁자였던 동생들은 주치의 정통성을 더욱 강하게 부정했다. 칭기즈 칸은 주치를 차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말년에는 안정적인 제국운영과 차가타이(테무진 차남)와의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우려하여 주치를 독살했다는 주장이 있다. 주치가 아버지를 살해할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정보를 접한 차가타이가 이를 칭기즈 칸에게 보고했다고도 한다. 아버지가 불분명한 인생을 살아 온 주치는 인간이기에 불운했던 인물이다. 이전 글 <한때 한반도 외교를 이끈, 위구르>에서 게시된 테무진의 가계도를 보면, 주치·차가타이는 대칸의 지위에 오르지 못했으며 툴루이(테무진 4남)이 이후 원나라를 이끌게 된다.

 

침팬지 시절에는 수컷·암컷도 새끼의 친부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짝결속이 생긴 이후에는 최소한 암컷은 새끼의 친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복수의 파트너를 가진 암컷은 곁을 지키는 수컷의 자원으로 남의 자식을 키우는 일도 있었을 것이나, 암컷의 외도리스크는 수컷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헤픈 암컷이라는 인식은 수컷의 외면을 초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요즘처럼 고도화된 문명사회에도 친자이슈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결국 인간도 원시적 뇌의 지배 하에서는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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