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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영원한 제국을 꿈꾸는 형제들, 이탈리아

by Spacewizard 2023.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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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니 이후 100년 만에 집권한, 극우정당

서유럽 전체로 확산된 혁신운동, 르네상스

쪼개진 도시국가의 설움이 국민주의를 넘어, 파시즘

독일·일본이 파시즘을 영향을 받으며, 세계사에 부정적 영향

영토에 집착했던 이탈리아, 로마의 몰락 교훈 삼아야

[Shorts] https://www.youtube.com/shorts/iBlw-_rfqu4

 

1923년 2월 11일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fascist) 정부는 이탈리아 언어·문화를 외국의 영향으로부터 보존·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외국어 사용금지 정책을 시행했다. 당시 파시스트 정부는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스러운 후예들이 야만적인 외국어를 사용해서는 안되며, 심지어 간판에서도 외국어를 방출했다. 이후 2차 세계대전 중 외국어 사용에 대한 처벌은 더욱 강력해지면서 1940년에는 최고 6개월 징역형까지 선고가 가능했으며, 특히 영어·프랑스어 사용은 반역죄로 간주했다.

 

반복될까 우려되는 역사, 이탈리아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2023년 3월 31일 집권당인 「이탈리아의 형제들(Fratelli d'Italia, FdI)」 소속의 하원 부의장은 이탈리아어의 진흥·보호를 위한 지침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8개 조항으로 구성된 법안 초안에는 공식적인 정보전달에서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를 사용했을 경우, 최대 10만 유로(약 1.4억)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으며, 공공기관 외 민간기업, 다국적 기업도 적용대상이다. 보편화된 비즈니스 영어(manager, CEO 등)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법안이 100년 전 파시스트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데, FdI는 무솔리니 지지자들이 창설한 파시스트 성향의 「이탈리아사회운동(Movimento Sociale Italiano, MSI)」 에 뿌리를 둔 극우정당이다. 이탈리아 사상 첫 여성총리에 오른 조르자 멜로니는 10대 시절 MSI 청년조직에 가입하면서 정치를 시작했고, 2012년에는 MSI를 계승한 FdI를 창당해 2014년부터 대표직을 맡고 있다. 2022년 9월 총선에서 우파연합의 승리를 이끈 멜로니 총리는 "파시즘은 지나간 역사"라고 말했지만, MSI가 사용한 삼색불꽃 로고를 FdI 로고에서 여전히 지우지 않고 있다.

 

무솔리니 이후 100년 만에 집권한 극우정치인인 멜로니 총리는 취임 초기 대체로 온건한 사회정책과 전 정권의 경제정책을 펼치면서 국제사회를 안심시켰으나, 집권한 지 6개월만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탈리아 내무부는 2023년 3월 동성부부의 친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놓았고, FdI는 대리모 출산을 보편적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4월 3일 멜로니 총리는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 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였고, 경제개발부를 「비즈니스 및 메이드 인 이탈리아(businesses and made in Italy)」로 개명하였다.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보이는데, 이는 국제사회는 이탈리아 집권당의 저의에 의심을 품고 있다고 한다.

 

제국의 후예, 위험한 자국찬양

 

르네상스(Renaissance)는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중반까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발생한 문화·예술·과학·철학 등의 혁신적인 운동으로, 주로 피렌체·로마·베네치아 등에서 일어났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인 인문주의(Humanism)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신앙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로마의 학문과 예술에 열광했으며, 경험·실험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실증주의는 새로운 지식(자연과학·인쇄술)과 발견을 이끌어냈다. 미술분야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공간감을 부여하는 원근법과 다양한 채색을 도입하여 현실감 있는 창작을 가능하게 하였다. 인문주의와 연동하여 인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당시 미켈란젤로·라파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거장들이 대거 등장했고, 이러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서유럽 전체로 확산되었다. 고대 로마제국의 후예라는 자부심은 이탈리아 역사를 르네상스 부흥기로 이끌기도 하였지만, 지나친 자국찬양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들이 있다.

 

영향 1) 쪼개진 도시국가의 설움, 국민주의와 통일

 

19세기 「이탈리아 국민주의(Italian Nationalism)」는 이탈리아 반도의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지역주의적인 운동들이 합쳐져 형성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지역주의적인 운동들은 자치권을 강조하면서도, 이탈리아 통일을 추구하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 도시들이 통일을 추구했던 배경에는 당시 이탈리아 반도 북부를 지배하던 최강국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대립이 자리잡고 있었다. 1848년 이탈리아 여러 지역에서 유럽의 봄을 기념하는 국민주의 혁명이 일어났지만, 오스트리아 제국에 의해 실패했다. 이후 1859년 다시 일어난 지역주의 운동에서는 사르데냐 왕국과 프랑스 제국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 결국 1861년 이탈리아는 통일에 성공하였는데, 통일 과정에서 중앙집권화와 민족적인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이때부터 이탈리아는 강력한 국가를 구축하려는 정체성이 강하게 자리 잡게된다. 통일 후 이탈리아의 지역들의 언어·문화를 통합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 현대의 이탈리아어가 발전했다.

 

영향 2) 20세기의 이단아, 파시즘의 탄생

 

19세기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끌었던 국민주의는 20세기 들어 파시즘으로 발전한다. 파시즘(fascism)이라는 용어는 1919년 무솔리니가 파시스트당을 만든 후,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구호 아래 국민들을 선동한 정치운동에서 유래하였다. 파시즘은 '나무에 묶인 도끼'를 의미하는 라틴어 파스케스(fasces)에서 유래하였는데, 고대 로마 집정관의 경호원들이 들고 다녔던 군기로 힘을 상징한다. 파시스트당이 파스케스를 로고로 채택하면서 파시스트로 불리게 되었다. 파시즘은 전통적인 권위주의·국가주의·반공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며서, 개인의 권리보다는 집단·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였다. 그리고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추종과 국가의 권력 집중을 중요시하는 반면, 민주주의와 인간의 평등성을 배척하였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은 다 알다시피, 파시즘의 이념은 독재정치·인종차별·영토확장주의 등으로 나타났을 뿐 아니라, 독일·일본 등에 전파되면서 세계사에 크나큰 부정적 영향들을 미치게 된다.

파스케스 좌 파시스트당 로고 우 출처 나무위키
파스케스(좌) 파시스트당 로고(우) [출처:나무위키]

사실 이탈리아가 영토확장주의를 국가정책으로 삼은 것은 19세기 말로, 파시즘 이전이었다. 1896년 북아프리카 에티오피아를 식민지화 하려다가 참패한 이후, 영토확장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된다. 1911년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침공하면서 이탈리아-터키 전쟁이 일어났고,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는 동맹국으로 참전하면서 비로소 영토확장의 기회를 얻었다. 1920년대에는 북아프리카·아시아에서 군사적 확장을 시도하였다. 1935년 무솔리니는 약 40년 전에 치욕을 줬던 에티오피아를 침공하였고, 1936년에는 소말리아·에리트레아를 본격적으로 식민지로 편입시켰다. 이러한 영토확장으로 인한 갈등이 제2차 세계대전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나치즘을 낳은, 파시즘

 

이탈리아 파시즘의 성공은 나치즘(National Socialism, Nazism)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는데, 파시즘·나치즘은 둘다 민족사회주의에 가깝다. 1920년대 중반 독일 아돌프 히틀러는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을 본따서 국민사회주의 독일 노동당(나치당)을 만들었는데, 나치즘은 파시즘과 같이 국가주의·권위주의·반공주의를 강조했다. 1933년 히틀러는 독일의 총리가 된 이후, 파시즘·나치즘은 더욱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다. 1930년대 후반 이탈리아·독일은 동맹국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연합군에 대항한 이들의 동맹을 추축국(axis powers)이라 불렀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무솔리니와 히틀러 간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1943년 이탈리아는 독일과의 동맹을 끊어 버렸다.

 

파시즘·나치즘은 구체적인 목표와 실현방식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파시즘은 주로 이탈리아의 영토확장과 국가의 국제적 위상 향상에 초점을 맞추면서, 아프리카·발칸반도까지 영토를 확장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치즘은 유전학에 강한 관심을 가지면서, 아리아 인종의 우월성을 강조한 인종주의(반유대주의)를 핵심이념으로 삼았다. 히틀러는 독일의 레벤스라움(Lebensraum) 확장을 주장하며 동유럽의 영토를 차지하려 했는데, 이 과정에서 유대인과 다른 소수민족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강행했다. 그 결과 조직적 제노사이드(genocide)인 홀로코스트(Holocaust)가 발생했으며, 약 600만명의 유대인과 수백만 명의 다른 민족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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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마(공화정+제국)의 멸망을 초래한, 영토확장의 욕심

 

고대로마는 크게 3개의 시대로 구분되는데,

 

왕정시대(로마왕국) : BC 753 ~ BC 509

공화정시대(Roman Republic, 로마공화국) : BC 509 ~ BC 27

제정시대(Roman Empire, 로마제국) : BC 27 ~ AD 476

 

로마공화국은 황제가 아닌 집단지도자가 통치하였으며, 공화정 말기의 여러 현상과 요인들로 인해 멸망하게 된다. 공화정 말기에는 군대지휘권을 가진 군사지휘관들이 지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들 군사지휘관들은 군대의 충성을 얻기 위해 정치권에 무리한 요구를 함과 동시에 크게 부패·타락하게 된다. 그리고 로마가 지배하는 영토가 계속 확장되면서 강국으로 성장했으나, 수많은 식민지에서 초래된 민족적인 갈등·불평등은 몇몇 지역의 내란으로 나타나게 된다.

 

옥타비아누스(Augustus) 장군에 의해 전환된 로마제국476년 서로마제국이 몰락할 때까지 약 500년 동안 존속하였고, 동로마제국은 1453년까지 지속된다. 로마제국 전체로 보면 약 1500년 지속한 셈이다. 로마제국의 몰락한 원인으로는 크게 경제·군사·정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로마제국은 농업·상업을 기반으로 한 국가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플레이션과 부의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그리고 제국을 관할하는 대규모의 군대를 유지하기 위하여 부과한 높은 세금은 경제가 악화시킬 수 밖에 없었다. 로마제국은 점차 국경이 길게 넓어지면서 국경수비가 어려워졌고, 외부의 야만족(게르만족·훈족 등)들과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서로마 군대에는 야만족들이 정규군에 배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과거 로마시민으로만 로마군을 구성했던 시절에 비해 충성도가 많이 약화되었다. 로마제국의 몰락기에는 황제들의 잦은 교체가 빈번한 권력투장과 제국의 분열을 가져왔고, 지방에 대한 통치력이 약해져 외부의 위협에 취약하게 된다.

서기 117년경 로마 제국의 최대 영토 지도 이탈리아는 붉은색 출처 위키백과
서기 117년경 로마 제국의 최대 영토 지도, 이탈리아는 붉은색 [출처:위키백과]

이탈리아의 지나친 자국 찬양과 로마 후예에 대한 자부심은 르네상스, 국민주의와 통일, 그리고 파시즘을 통해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 영광스러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뒤늦게 시작한 19세기 영토확장주의가 결국은 2차례의 세계대전을 초래하였고, 많은 세계인구들이 죽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가 반복된다고는 하나, 현 세대의 이탈리아는 어떤 선택을 할까.

 

[Music] 하나를 향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pAi3EtSQuro

Toward One #하나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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