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질 골격으로 이뤄진 산호초 열도, 마이아나제도
전성기 스페인의 여왕, 마리아 아나
19세기 후반 식민지 쟁탈전에서 희비가 엇갈린, 미국·스페인
제2차 세계대전 동안 2년 반 가량 일본의 식민지, 괌
대통령 선거를 할 수 없는, 미국 시민권
괌이라는 관광자원을 개발한, 일본
[Shorts] https://www.youtube.com/shorts/rWB-aJJ_8Bg
주변에 보면 여행을 즐기는 커플이 있는 반면, 흔히들 집순이·집돌이를 자처하면서 여행을 가지 않는 커플도 많다. 여행을 즐기지 않는 이유로는 여행스케줄을 계획하고, 캐리어를 꺼내 짐을 싸고, 낯선 공간을 돌아다니는 번거로움과 함께, 현지음식들을 굳이 멀리까지 가서 먹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무미건조한 생각도 기저에 깔려있다고 본다. 여행의 묘미가 식도락에 있다고 여긴다면, 이제 집 주변에도 각국의 이색적인 음식을 제공하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우리 가족도 주기적으로 호캉스는 가지만, 해외여행을 챙겨서 가지 않았다. 하지만 초등학생 자녀들이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친구들로부터 전해 듣는 정보가 많아지면, 부모는 해외여행 스케줄을 짜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 꽤 열정적으로 여행을 다녔었는데, 더 늦기 전에 가족(아이)과 추억을 만들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이렇게 시작될 향후 몇 년 간의 여행의 시작을 괌으로 정했는데, 오늘은 괌의 굴곡진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자.
바다생물의 천국, 산호초
산호초(coral reef)는 바다생물들이 함께 협력하여 형성하는 복잡한 해저생태계로, 형성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 단계는 산호 유생(larva)이 바다의 바닥에 부착·성장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는 적절한 온도·조명·염분·수심 등의 조건이 중요하다. 바닥에 부착된 유생은 성체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 성체를 폴립(polyp)이라 한다. 무수한 폴립이 모여서 하나의 산호개체를 이루게 된다. 산호폴립은 주산텔라(zooxanthellae)를 보호하면서 공생관계를 맺게 되는데, 해양미세조류인 주산텔라는 광합성을 통해 얻은 영양분을 폴립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공생관계 덕분에 산호초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도 번성할 수 있다. 산호폴립은 바다의 염분·온도·수소이온농도지수(pH) 등의 조건에 영향을 받아 석회질 골격을 생성·성장시키며 산호초의 기반을 형성하게 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석회질 골격은 겹겹이 쌓이게 된다. 산호초가 성장하면서 물고기·무척추동물·해조류 등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산호초에서 서식하게 된다.
인도로 가는 길에 발견된, 망망대해 섬들
열도(列島)는 줄지어 길게 늘어선 섬들을 말하는데, 태평양은 아래의 열도지역으로 구분된다.
폴리네시아(Polinesia) : 태평양 동부(하와이·뉴질랜드 포함)
멜라네시아(Melanesia) : 호주 위(솔로몬 제도와 파퓨아뉴기니 등 포함)
미크로네시아(Micronesia) : 멜라네시아 북부(작은 섬으로 구성된 열도)
마리아나제도(Mariana Islands)는 서태평양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하며, 해저화산의 융기로 형성되었다. 마리아나 제도는 행정상으로 크게 괌(Guam)과 북마리아나 제도(NMI, Northern Mariana Islands)로 구분되는데, NMI의 수도가 사이판(Saipan)이다. 마리아나제도의 15개 섬 중에서 최남단 괌을 제외한 14개의 섬은 NMI에 속한다. 남북으로 거의 645km에 걸쳐 있는 NMI는 태평양·필리핀해을 나누는 분기점이다.
기원전 1500년경 차모로족(Chamoros)이 마리아나제도에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이주한 차모로족은 독특한 언어·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차모로족은 마리아나제도 전역에 약 6m 높이의 석회암 기둥(latte stones)을 만들었는데, 집의 기둥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1519년 9월 20일 포르투갈 출신의 페르난도 마젤란(Fernando de Magallanes) 선장은 스페인을 대표하여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일주 항해에 도전했는데, 당시 선박 5척에 선원 260여명을 태웠다고 한다. 1521년 마젤란이 현재의 마리아나제도를 발견한 후, 「도둑의 섬」이라는 의미로 라드로네스제도(Ladrones Islands)라 불렀는데, 섬의 식량·식수를 얻기 위한 협상과정에서 섬주민들이 선원들의 물품을 훔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100년이 훨씬 지난 1668년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데 산비토레스(Diego Luis de Sanvitores) 등 5명이 라드로네스제도에 상륙하면서, 스페인 여왕 마리아 아나(Maria Ana of Austria)의 이름을 따 마리아나(Las Marianas)로 지명을 바꾸고 스페인령으로 편입했다. 이들의 선교활동은 20여년 간 원주민 차모로족의 냉대를 받았다. 하지만 1680년대 말 스페인군이 원주민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마리아나제도는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미국의 식민지 욕심, 영토 확장
1870년경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식민지의 역할이 변모해갔다. 2차 산업혁명 이전까지 식민지는 단지 값싼 노동력·원자재를 수탈하는 공간이었던 반면, 2차 산업혁명 이후에는 자본주의 발전을 뒷받침해 줄 수요처(판매시장)·투자처가 되었다. 식민지의 필요성이 공급측면에서 수요측면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전 글 <영원한 제국을 꿈꾸는 형제들,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도 파시즘 등장 이전인 19세기 말부터 영토확장주의를 국가정책으로 삼았다는 언급을 했었다.
그간 식민지 개척에 큰 관심이 없었던 미국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에, 태평양 서부(일본·알래스카·하와이)를 주목했다. 1854년 개항시킨 일본을 식민지로 삼기에는 너무 빠르게 근대화·경제성장을 하고 있었으며, 1867년 러시아로부터 매입한 알래스카는 넓은 면적에 비해 인구가 턱없이 부족했다. 하와이도 시장의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작은 규모였다. 이렇듯 19세기 말의 국제정세는 기득권 열강들의 식민지 독차지로 인해 결국은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이후 새로운 식민지 후보를 물색하던 미국이 노린 열강은 스페인이었는데, 스페인은 이미 약소국으로 전락한 처지였다. 1895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에서 독립전쟁이 발발했는데, 스페인군은 외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쿠바독립군을 상대로 고전하게 된다. 1898년 2월 쿠바 아바나항에 정박 중이던 미군함 메인호(USS Maine)가 폭파사고로 침몰하면서, 미해군 260여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메인호 사건을 명분으로 스페인에게 선전포고를 한 후, 스페인령(쿠바·푸에르토리코·필리핀·괌)을 접수한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유진 초이(이병헌 분)가 미군 소속으로 미국-스페인 전쟁에 참전하는 장면을 그려냈고, 실제 미국 의사자격증을 최초로 딴 서재필이 미국-스페인 전쟁에 미육군 군의관으로 참전한 바 있다고 한다. 참고로 미군 입장에서는 미국-스페인 전쟁을 「소풍같은 전쟁(War like a picnic)」이라 평가할 정도로, 우위를 점한 전쟁이었다. 결국 1899년 스페인은 식민지 NMI를 독일에게 매각한다.
일본의 식민지 욕심, 가까운 조선에서 시작
1904년 2월부터 시작한 러일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1905년 6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러시아·일본에 강화를 권고했다. 이에 1905년 8월 미국 뉴햄프셔주 포츠머스(Portsmouth)에서 강화협상을 담은 조약이 체결되었고, 그 내용은 러시아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양해한다는 것이었다. 포츠머스 협상이 있기 한 달 전인 1905년 7월 미국·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밀약(agreed memorandum)을 맺었는데, 그 내용은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미국 또한 일본이 한국에 종주권을 확립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이 밀약에 따라 조선은 국제사회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되었고, 1910년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면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1914년 8월 식민지 쟁탈을 위한 초대형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데, 동양의 유일한 제국열강인 일본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한다. 1919년 승전국 일본은 남양제도(South Sea Islands) 중 팔라우·NMI·캐롤라인제도·마셜제도를 차지하였는데, 이 때 미국령 괌은 제외되었다. 이후 일본은 새로운 식민지섬에 남양청을 설치한 후, 군사기지 겸 사탕수수 재배지로 활용하게 된다. 이 때 조선인·대만인·오키나와인들을 강제로 징용되었다.
1920년대 들어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일본사회는 점점 더 국가에 의지하는 극우화가 진행되었다. 1921년 해군 군축, 1922년 시베리아 철병과 산둥반도 반환, 1923년 관동대지진, 그리고 1927년 금융공황을 겪었다. 마침내 1929년 세계대공황의 여파로 열강들이 각자도생를 고민하던 와중에, 군사비 축소에 대한 불만을 가진 일본군부가 나서게 된다. 1931년 7월 중국 길림성 만보산에서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 간의 소요사태가 발생했는데, 이를 만보산(萬寶山) 사건이라 한다. 일본군부가 기획한 만보산 사건은 자국민(조선인) 보호 명목으로 만주지역에 출병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1931년 9월 일본군은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14년 간 이어지는 중국침략에 돌입한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에 공격함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3일 후인 12월 10일에는 괌을 식민지로 삼았다. 1944년 7월 21일 미국은 근 2년 반만에 일본으로부터 괌을 되찾게 되고, 이후 1947~1979년 동안 미국이 NMI를 신탁통치하였다.
미국의 땅으로, 세계적인 관광지
1950년 8월 1일 미국 국회가 「괌올가닉법 : Organic Act of Guam」을 승인하면서, 괌은 자치정부를 수립하게 되고 미국 시민권을 부여받았다. 이 법안은 괌의 정치적 지위를 크게 바꿨으며, 괌주민들은 미국 연방법을 따르고, 달러를 사용하며, 미군이 들어가게 되었다. 다만 괌은 주(state)가 아닌 이유로 대통령선거 선거인단이 배정되지 않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선거를 할 수 없다. 이는 괌주민들의 권리나 지역경제 보호 측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해외영토에는 아래의 14개가 있다. 미국 행정관할에 속하는 5개 지역 중에서 4개(푸에르토리코·괌·NMI·버진군도)은 시민권이 부여된다. 하지만 미국령 사모아는 주민들이 미국 국적은 가지지만, 시민권은 부여되지 않는다.
미국 행정관할(Insular area, 5개)
Puerto Rico(푸에르토리코)
Guam
Northern Mariana Islands (북마리아나 제도, NMI)
U.S. Virgin Islands (미국령 버진 군도)
American Samoa (미국령 사모아, 동사모)
미국 소규모 도서지역(Minor outlying Island, 9개)
Baker Island
Howland Island
Jarvis Island
Navassa Island
Wake Island
Midway Atoll
Johnston Atoll
Palmyra Atoll
Kingman Reef
1961년 NMI의 사이판·로타는 괌과의 통합을 미국에 요청하였으나, 이는 성사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제가 점령한 2년 반 동안 사이판은 부역행위에 앞장 섰는데, 이에 대해서 괌주민들이 큰 분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2년 일본항공사 JAL이 괌에 상업적 항공편을 운행하기 시작하면서, 괌의 관광산업이 시작되었다. 일본의 자본투자로 괌의 관광산업(호텔·리조트 등)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아시아·미국 간의 중요한 관광명소로 성장했던 것이다. 또한 괌은 미국영토 중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함으로써, 아시아·서태평양에서의 국방에 있어서도 중요도가 높다. 2017년 8월 북한이 괌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위협하면서, 미국의 안보문제가 부각된 적이 있다. 이후 북한은 이러한 위협을 철회했지만, 괌의 안보상황이 지속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늘날 열대기후의 아름다운 해변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평화로운 태평양의 섬들이 지난 수백년 동안 열강에 의해 침략·수탈 당했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괌의 국민·국토를 짓밟던 일본이 불과 20년이 채 안되어 자본투자를 통해 자국민의 관광지로 유행시켰다는 점을 보면, 윤리를 뛰어넘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이 발굴한 괌이라는 관광자원을 20~30년 시간차를 두고 한국인이 소비하고 있다는 점은, 일본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Music] 해변의 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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