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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풍요의 시대에 걸맞게 발전하는, 비만치료제

by Spacewizard 202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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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50대 지인이 체중감량을 목적으로 뱃살에 주사투약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뇨병 환자들이 인슐린 주사를 배를 통해 투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살 빼는 목적으로 주사투여를 하는 것은 좀 앞서 나간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졌다. 근데 주변에 체중감량을 위해 주사투약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심지어는 강남에서 큰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과체중은 아니지만, 20대부터 복부비만을 의식해 온 남성으로서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최근 해외언론에서는 체중감량 효과가 있는 오젬픽이라는 약물이 중독증상(약물·술·담배)을 억제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러다가 다이어트약이 중독자마저 치료하는 거 아닌지 기대를 하게 된다.

 

당뇨병 치료제의 부작용, 체중감량 + 중독 완화

 

오젬픽(Ozempic)세마글루티드(semaglutide)를 성분으로 하는 당뇨병 치료제로, 2022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허가를 받아 프리필드펜주 형태로 출시되고 있다. 프리필드펜주(prefilled pen injection)사전에 채워져 있는 주사기로, 환자가 자신에게 약물을 정확하고 편리하게 주입할 수 있도록 한다. 당뇨환자들이 적정 인슐린을 적시에 편리하게 주입하기 위해 프리필드펜을 많이 사용한다. 당뇨병과 무관하게 체중감량 목적으로 오젬픽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오젬픽이 아니더라도 세마글루티드 성분의 약물에서 공통적으로 중독증상의 완화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프리필드펜주 투약 그림 출처 셀트리온
프리필드펜주 투약 그림 [출처:셀트리온]

의도하지 않은 대박, 신약

 

제약산업에서는 신약이 최초 다른 목적으로 개발되었다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나 다른 효능으로 인해 각광을 받은 경우가 있다.

 

신약 1) 비아그라(Viagra)

 

화이자(Pfizer)의 비아그라는 실데나필(sildenafil)을 원료로 하는데, 애초 실데나필의 사용목적은 새로운 방식의 고혈압치료제 개발이었다. 실데나필은 임상시험에서 고혈압치료제로 부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내약성(tolerability) 실험에서 발기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보통 신약개발 과정에서 임상실패는 막대한 투자금의 손실로 처리되지만, 부작용의 응용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화이자는 임상실험을 거쳐 1998년 3월 미국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 식품의약국)으로부터 비아그라의 상표명으로 신약허가를 득하게 된다.

 

신약 2) 미녹시딜(Minoxidil)

 

미국 제약회사 업존(Upjohn)이 고혈압치료제로 개발한 미녹시딜은 혈관을 확장시켜 혈압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고 알려졌으나, 일부 탈모환자들에게서 머리카락이 새로 자라는 부작용이 보고되었다. 추가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 미녹시딜이 혈류를 증가시켜 모발성장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미녹시딜은 탈모치료제로서 재개발되었고, 현재는 로가인(Rogaine)이라는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업존은 두 번의 합병을 거친 후, 2003년 화이자에게 인수되었다. 2019년 화이자가 자사의 일부 제네릭 약물사업을 분리하여 신규법인 비아트리스(Viatris)를 설립하면서, 현재 업존의 브랜드·제품은 비아트리스에서 생산·판매 중에 있다.

 

신약 3) 타미플루(Tamiflu)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Roche)의 타미플루는 인플루엔자(감기)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며, 항바이러스 약물인 오셀타미비르(oseltamivir)의 상품명이다. 오셀타미비르는 향신료인 팔각회향(star anise)에서 발견되는 시키믹산(shikimic acid)을 원료로 하는데, 고춧가루에 초피·정향·팔각회향 등을 넣은 것이 마라(麻辣, 얼얼하고 매운)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크게 4가지(A·B·C·D)가 있으며, 인간은 주로 A와 B에 감염된다. 인플루엔자 A는 가장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로 이론상 198가지(H 1~18 * N 1~11) 아종이 있고, 인플루엔자 B는 A형보다는 독성이 약하다. 1999년 미국 FDA 승인을 받은 타미플루는 특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포 내에서 복제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인플루엔자의 증상을 완화하고 회복시간을 단축시킨다. 신종플루로 알려진 돼지독감(H1N1) 바이러스는 돼지가 인간에게 전파하게 되는데, 애초 인간끼리는 전염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돼지가 인간·돼지·조류로부터의 인플루엔자에 모두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돼지독감이 인간끼리도 전염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실제 2009년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유행하였는데, 이 때 타미플루가 돼지독감 치료에도 효과적이었다. 다만, 타미플루는 인플루엔자 A(H1N1)와 같은 특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내성이 보고되어 있으므로, 조기 투약 또는 빈번한 투약은 주의하여야 한다.

 

비만치료의 다양한 기전

 

비만환자에게 체중조절 목적으로 처방되는 약은 효능에 따라 아래와 같이 구분된다.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포만감유도제
지방흡수억제제
글루카곤유사펩티드-1 수용체 작용제(GLP-1 RA)
에너지대사촉진제

 

식욕억제제는 배고픈 느낌이 들지 않아 음식물 섭취 자체를 차단하지만, 포만감유도제는 배가 부르다는 느낌을 주어 추가 섭식을 차단할 수는 없다고 한다. 식욕억제제는 대뇌에서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의 생성을 촉진하고 분해를 억제시키면서 식욕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낸다.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은 뇌의 여러 부위에서 분비되지만, 식욕조절과 관련해서는 뇌간의 교두에 위치한 핵인 청색반점(Locus Coeruleus, 청반)에서 분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반은 스트레스 반응과 공황상태를 관리함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지방흡수억제제는 지방분해효소인 리파아제(lipase)의 활성을 차단해 지방의 흡수를 억제하고 배설한다.

 

글루카곤(glucagon)췌장의 알파세포에서 생산되는 펩티드호르몬으로, 췌장의 베타세포에서 합성되는 인슐린과는 반대작용을 한다. 체내 혈당량이 기준치 이하로 내려갈 경우 췌장에서 글루카곤을 분비하고, 간에서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하여 혈당량을 증가시킨다. GLP-1(Glucagon-Like Peptide-1)소장(특히 말미)에서 분비되는 펩티드호르몬으로,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고 글루카곤 분비를 감소시켜 식후 혈당수치 상승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뇌에서 포만감을 증가시키는 신호을 보내 식욕을 억제하며, 위장에서 음식물 배출을 지연시킴으로써 식후 혈당 상승을 완화한다. GLP-1은 혈당수치가 과다한 상태에서만 작용하는 스마트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GLP-1의 효과는 짧은 반감기로 인해 금방 사라지게 되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 GLP-1 RA(Receptor Agonist)가 개발되었다. GLP-1 RA는 GLP-1수용체에 작용하여 같은 효과를 내면서, 혈중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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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하고 있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향정신성(향정) 의약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환각, 각성, 중독성을 일으키기 때문에, 엄격하게 제한된 용처에 사용해야 한다. 향정 식욕억제제의 주성분인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은 모두 암페타민(amphetamine)과 유사한 화학구조 및 작용기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암페타민 유사의약품'(amphetamine-like drug , ALD)으로 불리기도 한다.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암페타민은 혈압 상승, 불면증, 불안증 및 식욕 저하 등의 부작용 외에도 내성과 의존성을 지닌다. 2021년 식약처는 향정 식욕억제제와 관련하여 사실상 장기처방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는데, 처방기간을 4주 이내로 하며 최대 3개월을 넘지 않도록 했다. 이 조치 이후로 비만치료제 시장에서는 비향정약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지 시작한다.

 

새로운 투약법의 비만치료, 삭센다

 

1923년에 설립된 덴마크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는 당뇨병·비만, 희귀병 및 성장호르몬을 주요 연구·개발 분야로 두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인슐린 제조로 시작하여 100년 가까이 당뇨병 치료제에 중점을 두면서 성장했다. 노보노디스크는 당뇨치료제 빅토자(Victoza) 개발 중에 체중감소 부작용을 발견하고, 비만치료제로 임상을 진행하였다. 이에 비만치료제 삭센다(Saxenda)는 2014년 FDA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2018년 3월부터 판매가 시작되었다. 삭센다의 성분인 리라글루티드(Lilaglutide)GLP-1 RA로 작용하여 뇌에 포만감을 느끼게 하며 식욕이 억제된다. 2017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의 성인, BMI 27 이상, 제2형 당뇨병, 당뇨병 전단계, 이상지질혈증 중 한 가지 이상을 보유한 사람의 다이어트보조요법으로 삭센다를 승인했다. 1형 당뇨병 환자, 청소년, 갑상선 수질암 환자는 절대 사용하면 안된다. 기존의 먹는 약과 달리 피하지방에 일 1회 맞는 자가주사제이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그 효능과 새로운 투약법으로 인기를 얻었다.

 

편리해진 삭센다 업그레이드 버전, 위고비

 

비만수술 이후 체중이 다시 증가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위고비(Wegovy)삭센다보다 체중 감량에 더 효과적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위고비(세마글루티드)·삭센다(리라글루티드)는 모두 노보노디스크에서 생산하는 약품으로, 위고비는 2021년 6월 FDA으로부터 승인받았다. 식약처는 2023년 4월 위고비프리필드펜을 허가했다. GLP-1 RA인 위고비는 장기지속형으로 제작되어 체내에서 효과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는데, 일 1회를 투여하는 삭센다의 주기를 주 1회로 연장한 GLP-1 RA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노보노디스크가 제공한 임상데이터에서 위고비는 68주간 평균 15%의 감량 효과, 삭센다는 56주간 평균 8%의 감량 효과를 보였다고 한다. 편의성 외에도 체중감량 효과도 우수하다고 한다. 노보노디스크는 2022년 4월 세마클루티드 성분의 의약품 오젬픽을 출시한 바 있엇지만, 제2형당뇨병으로 허가를 득해 다이어트 보조제로 사용할 수 없다.

 

인류 역사상 현재처럼 풍요로운 시대는 없었다. 과유불급인가, 손만 뻗으면 칼로리를 획득할 수 있는 풍요의 시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과체중을 걱정하면 살아간다. 인간의 뇌는 진화의 과정에서 식욕과 칼로리 저장 욕구를 탑재해 왔는데, 굶주림은 본능적인 측면에서는 고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학은 뇌를 착각하게 만들면서까지 식욕을 억제하는 기술을 만들고 발전시키고 있다. 혈관질환이나 대사질환을 예방한다는 측면에서는 약물을 통한 체중감량이 유의미하다고 생각되나, 인간으로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욕구는 어쩌나. 그냥 먹고 싶을 때 적당량 맛있게 먹는 인내심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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