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에서 유래된 커피, 모카에서 전파
악마의 음료로 불렸던 이슬람문화, 커피
베네치아에서 시작된, 유럽의 커피하우스
광합성을 못해 유기물을 찾아 떠도는, 곰팡이
곰팡이가 치명적인 이유, 미코톡신
[Shorts] https://www.youtube.com/shorts/0Vy7k0ODqpk
2022년 여름 어느 날 새벽, 술에 잔뜩 취한 채 냉장고에 있는 체리통을 꺼내들고, 어두운 주방에서 체리 10개 남짓을 먹었다. 그렇게 목을 축인 후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식은 땀과 함께 기운이 없었고 오후에는 설사가 시작되었다. 설사를 동반한 복통으로 사흘 정도 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할 수 없었는데, 원인은 뒤늦게 알게된 체리에 피어난 하얀 곰팡이였다. 그 이후로 냉장고에 보관했던 식품들의 곰팡이 여부를 꼼꼼히 챙기는 습관이 생겼고, 곰팡이의 유해성에 대해서 절감하게 되었다. 2023년 2월 1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2년 11월 통관된 에티오피아 커피 생두(green bean) 중 오크라톡신 A에 오염된 것으로 확인된 172t이 전량 회수됐다. 다행히 해당 생두를 수입한 국내 커피업체들은 창고에 보관된 상태로 시중에 판매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후 2023년 4월 24일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25개 자치구와 협력하여 제조·가공업소 커피 원두(whole bean) 59건을 대상으로 곰팡이 독소을 검사한 결과, 전 제품에서 해당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하였다. IMF 이후 국내에 원두커피가 유행한 이후, 근 20년 넘게 맛과 향, 카페 분위기, 카페인 등을 이유로 한국인은 원두커피를 즐겨 왔는데, 곰팡이 더 나아가 독소라는 말에 꽤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는 식품에서 생길 수 있는 곰팡이와 그 독소, 그리고 커피의 곰팡이에 대하여 커피의 유래와 함께 살펴보자.
커피의 유래와 전파, 카파·모카
커피(coffee)는 커피나무의 열매 속 씨앗을 말린 생두를 로스팅한 원두를 갈아 만든 가루에서 추출한 음료로, 「커피에 있는 성분」이라는 의미를 가진 카페인(caffeine)의 각성효과로 인해 피로를 잊게 한다. 커피의 어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설들이 있다. 「식욕억제제로 사용되던 포도주」를 의미하는 아랍어 카흐와(qahwah)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데, 술 대신 커피가 식욕억제제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카흐와는 오스만제국으로 넘어가면서 카훼(kahve), 이어 네덜란드로 넘어가 코피(koffie)를 거쳐 지금의 커피가 되었다.
커피의 원산지는 북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남서부 카파(Kaffa)로 추정되는데, 에티오피아 목동 칼디(Kaldi)의 전설이 전해진다. 어느 날 칼디는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먹고 흥분·불면 증상을 목격하게 되는데, 직접 먹어본 후 근처 수도원에 알리면서 정신을 맑게 하고 졸음을 쫓는 효능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 커피열매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신비의 열매」로 여겨지게 된다.
15세기 에티오피아 건너편 아랍(Arab)지역으로 전파되었고, 예멘 수프이(Sufi) 수도원에서는 커피를 마시면서 기도·명상에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16세기 아랍상인들을 통해 커피의 인기가 더욱 확산되었는데, 에티오피아에서 커피콩을 수입하여 예멘의 모카(Mocha) 항구를 중심으로 판매가 이뤄졌다. 커피는 무역을 통해 아랍지역 전체와 오스만제국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고, 커피전문점 카페(Café)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 유럽커피
16~17세기경 커피가 유럽에 전파되기 전까지는, 유럽인들에게 커피는 생소한 음료였다. 과거 십자군전쟁으로 인한 반감과 함께 이슬람국가와의 종교·문화적 차이로 인해 커피는 「악마의 음료」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7세기 이슬람세계와의 교역을 통해 유럽상인들은 커피를 취급하게 되었고, 유럽 전역에서 커피하우스(coffee house)가 오픈하기 시작했다. 커피열매를 물에 끓여 우려 마시는 방식은 터키와 교역하던 베네치아에서 자리잡게 되었고, 이후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로 전파되었다. 그 전까지는 커피열매를 통째로 씹어 먹었다고 한다. 서유럽·동유럽 모두 무역회사를 통해 커피를 수입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천주교 사제들은 이단의 음료인 커피를 금지시켜 달라는 탄원을 교황(클레멘스 8세)에게 올렸지만, 교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커피는 귀족·상인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다. 1720년 베네치아에서 오픈한 카페 플로리안(Florian)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1645년 유럽 최초로 베네치아에서 커피하우스가 오픈한 이후, 커피하우스가 유럽 전역에 생기면서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 글 <카페를 즐겨찾는,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카페는 도시생활과 밀접한 장소가 되었으며, 커피를 즐기는 것이 도시의 일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커피하우스는 당대의 지식인·정치인·작가 등이 모여 의견·정보를 교환하는 소통장소로 활용되었고, 이러한 커피하우스 문화는 계몽주의 시대와 밀접한 연관되었다. 1890년 전후 조선에도 커피(가비·가배)가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는 동안 커피를 처음 접하고 즐겼다고 한다. 해방 이후 인스턴트 수입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의 대중화가 이뤄졌다.
유기물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곰팡이
미생물은 막(membrane) 구조의 여부에 따라 크게 진균·세균으로 구분된다. 「진짜 균」을 의미하는 진균(fungus)은 진핵생물로 핵막·소포체·골지체·미토콘드리아 등 막을 가지고 있는 구조체로 구성된 반면, 세균(bacteria)는 원핵생물로 막을 가지고 있는 구조체가 아니다. 대표적인 진균계(fungi)의 생물로는 효모(yeast)·곰팡이(mold)·버섯 등이 있다. 대부분의 진균은 다세포생물 균사인데, 균사(hyphae)는 실처럼 길게 연결된 모양의 세포를 의미하며 균사들이 밀도있게 얽혀서 자란 상태를 균사체라고 한다. 다만 효모는 일반적인 곰팡이와 달리 균사를 만들지 않는 단세포 생물이다. 곰팡이는 광합성을 못하기 때문에 외부의 유기물을 분해하여 영양을 확보하며, 균사체에서 포자를 날려 번식한다. 공기 중에는 무수히 많은 곰팡이 포자들이 떠다니는데, 특히 토양에서 자라서 포자를 날리는 경우가 많다. 집 안으로 곰팡이가 유입되는 주된 경로는 외부에서 포자를 묻힌 옷이다. 포자는 적합한 온도·습도 등에서 균사를 확장시키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옆으로 늘리다가 나중에는 공기 중으로 뻗어 나간다. 곰팡이가 눈에 보이는 수준까지 늘어가기까지 약 2~3일이 소요된다.
곰팡이가 무서운 이유, 독소
토양에서 자라는 다양한 농작물(귀리·옥수수·콩·커피·쌀·밀·코코아·포도 등)은 곰팡이에 쉽게 오염된다. 일부 곰팡이들은 미코톡신(mycotoxins)이라는 독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인체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주의해야 할 곰팡이 독소는 다음과 같다.
아플라톡신(Aflatoxin)은 아스퍼질러스(Aspergillus) 플라부스(flavus)·파라시티쿠스(parasiticus)가 생성하는 가장 독성의 미코톡신으로,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발암물질로 분류한다. 심각한 간기능 장애를 동반한 중독과 감암을 유발할 수 있다. 곡류·커피·땅콩 등에서 흔하게 발견되며, 흙 속에서 서식하는 균주들이 다양한 농작물에 옮겨져 수확·저장되는 시기에 번식하게 된다. 16종으로 알려진 아플라톡신 중에서 독성·내열성이 가장 강한 종은 B1이며, B2·G1·G2 등도 강한 독성을 나타낸다. WHO는 모든 음식에 모든 아플라톡신의 허용치를 제한하고 있다.
오크라톡신(Ochratoxin)은 아스퍼질러스 오크라세우스(Aspergillus ochraceus) 또는 페니실리움 베루코슘(Penicillium verrucosum)에 의해 생성되는 독소로, 3종(OTA·OTB·OTC)으로 알려져 있다. OTA는 아플라톡신 다음으로 위험한 독소이며, OTA의 독성은 OTB·OTC의 1,000배 이상이라고 한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 발암물질로 분류하는 오크라톡신은 동물실험에서 신장·간에 암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OTA가 처음 발견될 당시 주로 곡류·콩류에서 그 오염사례가 보고되었으나, 이후 커피·코코아·견과류·건포도·포도주·맥주·향신료 등에서도 발생되었다.
제랄레논(Zearalenone)는 후사리움 그라미네아룸(Fusarium graminearum)에서 생성되는 독소로, 주로 곡물을 먹는 가축에서 검출된다. 주로 생식계통에 영향을 미치며, 외음부·유방·자궁의 종창 또는 유방암 발병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패튤린(Patulin)는 페니실리움 패튤룸(Penicillium patulum)이 생성하는 신경독소로, 주로 갈변을 일으키는 상한 과실류(사과·배·복숭아·포도·바나나 등)에서 발견된다. 뇌·중추신경계, 간·신장 등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DNA 손상, 면역억제 등에도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열처리를 통해 패튤린을 감소시킬 수는 있으나, 저온살균 처리한 과일주스에서는 패튤린이 존재할 수도 있다.
태우고 내리면서 낮아지는 독소위험, 커피
커피는 수확·저장·운송 과정에서 다양한 곰팡이균에 노출되는데, 커피원두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2가지 미코톡신은 아플라톡신 B1과 OTA이다. 이들 미코톡신들은 원두를 로스팅한 후에도 커피에 잔류할 수는 있다. 미국 FDA는 커피의 아플라톡신 B1과 OTA에 대해서는 설정한 허용한도가 따로 없지만, 유럽식품안전청(EFSA, European Food Safety Authority)에서는 허용한도를 설정·규제하고 있다. 음용단계의 커피에서는 각국의 미코톡신 허용한도를 밑돌면서 낮은 위험성을 가진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는 커피의 미코톡신이 로스팅·브루잉(brewing) 과정을 거치면서 크게 감소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원두조사에서는 전제품에서 미코톡신이 검출되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미미한 양이라도 사람에 따라 분명 미코톡신의 위험성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카페인 원두커피과 비교했을 경우, 인스턴트커피에서 더 많은 OTA, 디카페인커피에서 더 많은 아플라톡신 B1이 발견된다고 한다.
면역이 떨어지면 치명적인, 곰팡이
미미한 양의 미코톡신은 괜찮다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근래 COVID-19를 통해 참고해 볼 만한 사례가 있다. 2021년 3월 22일 「사이언스지」는 "최근 의료진들이 잇따라 흔한 곰팡이인 누룩곰팡이(Aspergillus)가 코로나 환자에게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누룩곰팡이는 어디에나 있어 피할 수 없고, 누룩곰팡이의 포자는 공기로 떠다니기 때문에 사람이 하루에 수십만 개씩 흡입한다고 한다. 평소의 건강한 상태라면 백혈구가 누룩곰팡이를 쉽게 제거한다. COVID-19 이전에도 누룩곰팡이에 의해 쓰러진 신종인플루엔자 감염자가 있었다고 한다. COVID-19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일부 면역세포가 작동하지 않고, 사이토카인을 억제하기 위한 면역억제제(immunosuppressant)는 다른 병원체의 감염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곰팡이는 지구상 어디에서든 존재하고, 그들이 선호하는 환경이 조성되면 단시간 내에 존재감을 과시한다. 커피원두에 곰팡이가 피었다면 열을 가하거나 필터링하는 과정에서 독소가 감소하긴 하겠지만, 원재료의 풍미·향에 미친 악영향은 상품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 2022년 곰팡이로 인해 시달린 설사·복통의 원인은 패튤린이 아닐까 한다. 또한 당시의 설사가 이전 글 <두렵기에 대비하는, 치루>에서 언급한 항문농양이 발생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곰팡이로 인한 해악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스스로가 식품을 섭취하기 전에 곰팡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Music] 어디서든지 독소
https://www.youtube.com/watch?v=MJxMqLSd2Ew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요의 시대에 걸맞게 발전하는, 비만치료제 (3) | 2023.06.09 |
---|---|
필름을 깨부수고 독소를 감당해야 하는, 디톡스 (2) | 2023.05.25 |
합법화 추세라지만 아직 애매한, 대마 (0) | 2023.04.15 |
잃어가는 총명을 잡고자, 뇌 영양제 (0) | 2023.04.01 |
관심을 가져야만 구분되는, 간염 (0) | 2023.03.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