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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금융투자

비밀스러웠지만 더이상은 아닌, 사모펀드

by Spacewizard 202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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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장에 꽂힌 「문 앞의 야만인들 : Barbarians at the Gate」을 읽었다. 책장에 꽂힌 서적들 중에 가장 두꺼운 책 중의 하나지만, 항상 방대한 페이지를 빠른 시간 내에 읽어냈다는 뿌듯함을 가져다줘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1988년 뉴욕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비밀스러운 사모펀드업계에서 흥미롭게 전개되는 베팅심리·전술, 천문학적인 투자금액과 그에 대한 막대한 성과급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회독수를 늘려가면서 스토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데, 이는 수 많은 등장인물의 영어이름들이 너무 헷갈려서 처음에는 앞장을 수시로 넘기며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회독수가 늘수록 영감·감동·재미가 배가된다는 측면에서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사용하는 사모펀드의 공식명칭인 사모간접투자기구(PEF, Private Equity Fund) 50인 미만의 사람들이 모여서 투자하는 펀드이며,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회사를 PE(Private Equity)라고 한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사모펀드 사태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사모펀드가 익숙할 수도 있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사모펀드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접할 수 있는 비지니스세계였다. 오늘은 사모펀드(PEF)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사모펀드의 국내 도입, 그 이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PEF의 국내진출이 증가했으나, 공모 중심의 국내법제로 인해 국내펀드들은 기업인수(Acquisition)투자를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사모(Private Placement)와 대비되는 개념인 공모(Public Offering)는 기업이 사업자금을 50명 이상의 투자자에게 공개모집하는 것으로, 신주모집(Primary Offering)과 구주매출(Secondary Offering) 을 총칭한다. 이에 정부는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ergers and Acquisitions, M&A)시장 잠식과 무분별한 구조조정 등에 대응하여, 국내자본의 자유로운 투자환경 조성의 필요를 느꼈다. 2004년 10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사모펀드제도를 도입하였는데, 당시의 사모펀드는 아래와 같이 4가지로 구분되었다.

 

일반사모펀드

헤지펀드

PEF

기업재무안정 PEF

 

2013년 사모펀드제도는 아래와 같이 이원화된 구조로 개편된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 일명 헤지펀드(Hedge Fund)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 일명 PEF

 

경영참여형은 경영참여 성격의 투자만 허용되었던 반면, 전문투자형은 경영참여 성격의 투자를 제외한 투자에만 허용되었다. 일반투자자의 최소투자금액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는데, 2015년 이후에는 1억(전문투자형)과 3억(경영참여형)이 하한선이었다. 2016년 자본시장법은 창업·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창업·벤처전문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제도를 도입하였다. 2021년 10월 21일부터 시행된 개정 자본시장법에서는 사모펀드의 분류를 투자자 기준으로 아래와 같이 구분하였다

 

일반 사모펀드

기관전용 사모펀드

 

그 동안 전문투자형의 투자주체가 소액투자를 주로 하는 일반개인이었다는 점에서 '일반 사모펀드'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를 승계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종의 사모펀드 모두 경영참여 성격의 투자가 가능하게 만들어 놓았고, 그간 경영참여적 성격의 투자의 활성화를 제한했던 경영참여 의무조항(의결권 있는 주식 10% 이상 취득 의무, 6개월 이상 지분보유 의무, 메자닌증권에 투자한 경우 2년내 출자금의 50% 이상을 지분으로 전환할 의무 등)을 대부분 삭제하였다. 이는 사모펀드를 통한 지분·메자닌(Mezzanine) 투자와 중소규모의 인수투자를 활성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창업·벤처전문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그 명칭에서 '경영참여형'이라는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창업·벤처전문 사모펀드'로 변경되었다.

 

대표적인 사모투자 기구, VC PE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 VC)과 사모펀드운용사(PE)는 사모투자의 범주에 속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각기 다른 성장단계의 기업에 투자하는 다른 방식이다. 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는 위험성과 수익률을 높은 반면, 주로 성숙한 기업에 투자하는 PE는 기업가치 향상, 기업구조 재편 또는 다른 전략적 이니셔티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고 한다. VC와 PE는 서로 다른 투자단계와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두 분야 사이에는 상당한 상호작용이 있다. VC로부터 받은 투자로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성장한 단계에서는 PEF로부터 인수·추가투자를 받는 경우가 있다. 많은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VC와 PE 모두 투자하며, 일부 대형PE들은 자체 VC부문을 운영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VC는 주로 기술(Tech) 스타트업에 투자하였다. 1946년 미국 최초의 벤처캐피털 ARDC(American Research and Development Corporation)가 설립되었고, ARDC이 1957년 보스턴에서 창업한 미니컴퓨터회사 DEC(Digital Equipment Corporation)에 실행한 투자는 다른 VC들에게 기술기업에 대한 초기투자의 성공가능성을 보여줬다. 1957년 투자금 7만 달러는 1968년 기업공개를 통해 지분가치 3800만 달러까지 오르면서, 약 500배 이상의 투자수익을 거뒀다. 이후 1960~1970년대 VC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특히 반도체·소프트웨어·바이오테크 분야에 대한 투자가 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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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등장한 PE는 기존기업의 M&A·사업재편을 위한 자금조달을 중점으로 하였다. 1978년 미국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Employee Retirement Income Security Act, ERISA)이 포트폴리오 전체의 리스크와 수익률을 감안하여 다양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신중한 투자자 의무(Prudent Investor Rule)를 도입하면서, 연기금의 대체투자(PE·VC·부동산 등)에 대한 제한을 완화시켜 투자활동을 촉진시켰다. 1974년 미국은 연금가입자들의 연금수급권을 보호하기 위해 ERISA를 제정하면서, 선량한 관리자 의무(Prudent Man Rule)를 도입하였다.

 

하지만 이는 연기금 관리자들은 최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이로 인해 초기 연기금 관리자들은 위험이 높은 대체투자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VC와 PE는 1980~1990년대를 거치면서 크게 성장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는 금융시장의 자유화와 함께 기술혁신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투자기회가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에는 닷컴버블로 인해 VC투자가 폭증했다.

 

글로벌 AMC의 전신, 미국 초기 PE

 

1966년 설립된 워버그핀크스(Warburg Pincus)는 1970년대 헬스케어·에너지·금융·기술 분야에서의 투자로 유명했고, 50년 이상의 업력을 가지고 있는 워버그핀크스는 한때 글로벌 Big 4 PE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ohlberg Kravis Roberts, KKR, 1976년 설립), 블랙스톤(Blackstone, 1985년), 칼라일(Carlyle, 1987년), 텍사스퍼스픽그룹(Texas Pacific Group, 1992년)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2021년 3분기에는 국민연금(NPS)의 해외부동산 부문 위탁운용사로 신규편입되었다. 

 

1970년대 설립된 PE 중에서 가장 성공한 한 회사는 1976년 설립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Kohlberg Kravis Roberts)일 것이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Bear Stearns)의 파트너였던 제롬 콜버그는 1965년 첫 LBO딜을 클로징한 이후 여러 LBO딜을 수행하였고, 조지 로버츠는 콜버그 아래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조지 로버츠의 그의 사촌 헨리 크래비스는 각각 1968년과 1969년 베어스턴스 콜버그팀에 정식으로 입사했다. 이후 그들은 연이은 LBO딜 성사, 펀딩을 위한 투자자풀 확보, 딜소싱을 위한 IB와의 관계구축을 강화해 갔지만, 회사 내부의 심한 견제·비협조를 받게 되었다. 결국 1976년 LBO딜이 이유없이 부결당하자, 이들은 미련없이 퇴사하여 KKR을 설립했다.

 

일반적인 월급쟁이들은 퇴사를 은퇴라고 생각하면서, 재취업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억울한 감정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업조직 내에서 최상위급 실적을 유지하는 팀들은 퇴직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직에 대한 명분을 회사·동료가 제공해 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KKR에게 초기투자금을 제공한 투자자는 미국 부호가문 중의 하나인 피츠버그의 헨리힐먼 가문(Henry Hillman Family)였다고 한다. KKR은 기업인수대금의 대부분을 차입금으로 조달하는 차입인수(LBO, Leveraged Buy Out) 전략을 활용하여 대형 인수거래들을 주도했는데, 흔히 「최초의 LBO 전문 PE라고도 불린다. 사실 1970년대 LBO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에도 오랜 기간 차입인수 형태의 딜은 존재했었다.

 

KKR이 이전의 PE들과 차별화한 전략은 블라인드펀드(blind pool fund)의 도입이었는데, 당시까지 블라인드펀드는 VC업계에서 주로 활용하던 방식이었다. 이는 PEF의 투자행위 및 그 결과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는 운용자·무한책임사원(General Partner, GP) 역할을 PE의 파트너가 맡아서, 딜소싱·투자실행·기업가치 향상 등에 관한 투자의사결정을 전적으로 수행하는 반면, 투자자·유한책임사원(Limited Partner, LP)는 약정한 금액범위 내에서 투자만 할 뿐 투자의사결정에 관여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이러한 구조는 전적으로 자율적인 경영활동을 가능케 하였고, 그로 인해 기업가치 향상에 큰 기여를 했다.

 

이전 글 <필요는 하지만 여러 오명을 가진, 업무대행사>에서는 업무대행사와 조합·조합원을 GP와 LP에 비유했었다. 이후 KKR은 복잡한 자금조달 구조와 절세 목적의 페이퍼컴퍼니(Paper Company)를 통한 역합병 방식을 창의적으로 딜에 적용하면서, 1980년대 LBO를 통해 급성장하게 된다. 콜버그는 회사의 미래전략과 방향성과 관련한 갈등으로 1987년 콜버그앤컴퍼니(Kohlberg &Co)를 설립하면서 KKR를 떠났는데, 아이러니한 부분은 LBO딜로 최정상에 오른 콜버그가 KKR의 대규모 공격적인 LBO딜 전략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9년 「문 앞의 야만인들」에서의 담배·식품업체 나비스코(RJR Nabisco) 인수전은 역사상 가장 큰 LBO로 손꼽힌다.

벽돌처럼 두꺼운 책 문 앞의 야만인들
벽돌처럼 두꺼운 책 <문 앞의 야만인들>

 

1978년 설립된 포스트만 리틀(Forstmann Little)도 1980~1990년대 굵직한 LBO딜을 주도하였으며, 특히 고금리채권(High Yield Bond, Junk Bond)의 활용을 지양하는 투자전략으로 유명했다. 포스트만 리틀도 나비스코 인수전으로도 유명하며, 특히 책 제목의 유래와도 관련이 있다. 포스트만이 크래비스의 돈을 '가짜 정크채권', 그와 그의 사촌을 '진짜 돈을 가진 진짜 사람들'이라고 한 발언에서 책 제목이 유래하였으며, 크래비스와 같은 공격자(야만인)을 막기 위해 성문을 통해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고 했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투자은행(IB)·금융기관들이 PEF를 설립하기 시작하면서 PE영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970년대 들면서 PE산업은 초기발전을 보였다. 1980~1990년대에는 LBO전략을 기본전략으로 하여 대형 LBO딜들이 성사되면서 PEF산업의 성장을 견인하였고, 이렇게 성장한 PE들은 축적된 경영전략·경험·투자네트워크을 바탕으로, 기업을 성장시키고 경영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존재로 자리잡게 된다. 현재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Asset Management Company, AMC) 중에는 M&A자문이나 PE로 시작한 후, 전통투자·대체투자 등의 AMC 영역으로 확장한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회사로는 1980년대 등장한 베인캐피탈(Bain Capital), 블랙스톤, 칼라일과 1992년에 설립된 텍사스퍼시픽그룹이 있다. 2000년대 중반 텍사스퍼시픽그룹은 글로벌 확장과 투자영역 확대를 위해 브랜드를 TPG로 재정립하였는데, 이 때 TPG의 PEF 부문을 TPG Capital로 하였다. 이전 글 <금융이 살아남기 위한 필요조건, 건정성>에서는 외환위기 당시에 IMF에서 BIS비율이 8% 미만의 부실은행 정리를 요구했고, 이 중에는 제일은행이 포함되었었다고 언급했었다. 텍사스퍼시픽그룹이 국내에 처음 알려진 계가가 1999년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릿지캐피털(Newbridge Capital)의 모회사였기 때문이다. 뉴브릿지캐피탈은 아시아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해 1994년 텍사스퍼시픽그룹과 블럼캐피탈(Blum Capital)의 합작으로 설립되었다.

 

국내 사모펀드 사태, 전문투자형

 

2019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사태 2개가 있었는데, 각각의 운용사는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이었다. 라임은 펀드환매 중단사태였고, 옵티머스는 펀드사기였다. 

 

라임사태의 원인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는 무역금융펀드의 기초자산이 부실화되었음에도 손실을 은폐하기 위해 운용펀드의 기준가격을 변경하여 수익률을 조작하는 불법운용을 하였다. 두번째는 펀드의 설계·판매에 걸쳐 유동성 위험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라임펀드는 주로 유동성이 낮은 전환사채(CB)·무역금융에 투자하였는데, 유동성이 낮은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를 6개월 만기의 개방형(Open-End) 구조로 설정하여 기초자산과 펀드만기 간의 유동성 부조화(Mismatch)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미스매치 구조에서 대량환매가 발생한다면, 기초자산의 현금화 지연으로 환매중단이 불가피하다.

 

마지막으로 유동성 위험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은 총수익스왑(TRS, Total Return Swap) 계약을 활용했다. 운용규모 확대를 위한 일종의 레버리지 방식인 TRS는 30~50%의 자기자본을 제외한 나머지 자금은 증권사와의 TRS계약을 통해 조달한다. 그러면 고객투자금을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에 예치할 수 있는데, 고객의 환매요청에 대응이 가능하여 개방형 펀드에서 주로 활용된다. 하지만 투자대상자산의 부실화·유동성 이슈로 인해 TRS를 맺은 증권사들이 위험관리 차원에서 TRS계약을 해지하였고, 라임은 환매대비자금을 TRS의 상환에 다 소진하면서 전면적인 환매중단을 선언하게 되었다.

 

옵티머스는 투자설명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투자대상으로 소개하였으나, 실제로는 서류위조를 통해 비상장업체(부동산디벨로퍼·대부업체)가 발행한 부실 사모사채를 인수하는데 펀드자금 사용하였다. 사실상 펀드사기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예탁결제원과 수탁사(하나은행)은 펀드자산의 진위 확인 등을 소홀히 하여, 제대로된 검토 없이 운용사 요청대로 자산명을 변경하는 부주의가 있었다. 공공기관(전파진흥원)의 자금을 유치한 성과로 유명해진 옵티머스는 2017년부터 3년 동안 2조원 이상의 펀드를 판매하였는데, 이 중 환매중단된 5,000억원 가량은 개인적으로 유용하였거나 사용처가 불분명하다고 한다. 또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정·관계 인맥이 페이퍼컴퍼니와 함께 복잡하게 연루되어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고 한다. 

 

서두에 사모펀드업계를 「비밀스럽게」라고 표현했었는데, 사실 일반인들의 시각에서는 자산운용사·투자자문사·PEF·사모펀드·경영컨설팅·투자회사 등의 타이틀에 대한 환상·동경이 있다. 특히 그 타이틀 앞에 글로벌·뉴욕·홍콩·유럽 등의 단어가 붙으면 더하다. 2007년 일본드라마 「하게타카」를 본 후에 PEF업계에 대한 환상에 빠졌던 적이 있는데, 동명의 원작도서까지 사서 읽을 정도였다.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은 성과급을 포함한 연봉이 높다는 겉모습을 동경한 것이었다. 실제 사회초년생 시절에 글로벌 은행과 글로벌 자산운용사에 면접도 보았고, 결국 국내 대형 손해보험사 자산운용본부로 이직을 했었다.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다보니, 거대자본(결국은 남의 돈)은 투자하거나 운용하는 일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연봉 또한 소득세율 최고구간에 해당하는 1억 언저리 이상부터는 세금으로 인해 노동효용이 상당히 떨어지게 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 평범한 샐러리맨의 입장이고, 전반적인 투자업계 탑티어 플레이어들은 성과급 자체가 수억~수십억에 달하기 때문에 노동효용 따위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탑티어들은 고유한 딜소싱·펀드레이징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KKR 3인방처럼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하여 독립하는 수순으로 밟게 될 것이다. 한국도 외환위기 이후에 금융시장의 다변화와 성과급 체계의 정착을 거치면서, 유명한 인재들이 자신만의 역량과 자본을 갖춰 왔다. 최근 몇 년 간 운용사·자문사 신규설립을 위해 금감원에 접수한 회사들이 너무 많아서, 대기표를 뽑고 기다린다는 말이 있었다. 이는 설립요건 완화와 함께 시장에 운용사가 난립할 개연성이 있음을 의미하는데, 특히 내부통제시스템이나 자본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운용사들은 무리하고 불투명한 투자운용을 할 수 있다. 결국은 금융당국의 적절한 감시와 운용역의 도덕성에 기대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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