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말 발표한 금융당국의 업무계획에는 증권사의 부동산PF 관련 NCR비율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획일적인 위험값의 적용에서 벗어나 위험의 세분화를 통해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왠지 은행의 재무건전성 지표인 BIS비율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느낌이다. 2023년 내에 NCR비율 개선안을 확정하고 시장상황에 따라 적용시기를 결정할 방침이었고, 부동산신탁사에 대해서도 업계와의 정례 간담회를 거쳐서 3분기 내에 「리스크 관리 선진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하였다. 2023년이 앞으로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재무건전성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자.
바젤發 은행 재무건전성 지표, BIS비율
1930년 1월 6개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일본·독일)이 독일의 전쟁배상금 문제에 관한 헤이그협정을 체결하면서, 배상금의 결제를 전담하기 위한 기구로 국제결제은행(BIS, Bank of International Settlement)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미국이 추가로 참여하였고, 스위스 바젤(Basel)에 본사를 두고 업무를 시작하였다. 이전 글 <바나나 공화국이라기엔 원래부터, 스위스>에서는 스위스가 오랜 기간의 노력으로 영세중립국의 지위를 인정받았으며, 다른 국가들과의 외교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주 했었다고 언급했다. 특히 바젤은 프랑스·독일의 국경과 맞닿아 있으며, 오랜 역사를 가진 금융센터였기 때문에 BIS의 본부가 위치하기 적합한 도시였다.
1974년 독일 헤르슈타트 은행이 파산하였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은행파산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이 파산으로 인한 외환시장의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글로벌은행들 간의 국제공조가 필요하였고, 결국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 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가 BIS 산하에 설립되었다. 1980년대 들어 바젤위원회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은행의 자본적정성 기준을 검토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과도한 외채로 인해 국가부도 위기에 놓인 남미국가에 해외지점을 둔 글로벌은행의 자본비율이 크게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8년 7월 바젤위원회는 「자기자본 측정 및 자기자본에 대한 국제적 통일기준」을 발표하면서 바젤Ⅰ(BIS비율)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위험가중자산 대비 8%의 자기자본을 보유하라는 기준이었다. 바젤Ⅰ은 여러 위험자산군의 신용리스크에 따라 아래와 같이 위험가중치(RW, Risk Weight)를 달리하면서, 국제영업을 하는 은행들이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자본건전성 지표가 되었다.
현금·국채 : RW 0%
우량MBS : RW 20%
모기지·지방채 : RW 50%
신용대출·회사채 : RW 100%
자본확충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보니, 자산비중 조절을 통해 BIS비율을 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산비중 조절은 위험가중치가 낮은 자산을 늘리고, 위험가중치가 높은 자산은 축소(회수)하는 방식으로, BIS비율이 낮을 경우에는 대출만기 연장 없는 회수조치를 통해 BIS비율을 높여야만 했다. 바젤Ⅰ은 하나의 위험자산군 내에서는 위험가중치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한계가 있었는데, 가령 신용대출에서는 차주의 신용등급과 무관하게 100%의 위험가중치를 적용하는 문제가 있었다.
2004년 6월 바젤위원회는 신용대출 차주의 신용등급에 따라서 위험가중치를 달리 적용하는 바젤Ⅱ(2007년 1월 시행) 발표했는데, 신용도가 높은 차주에게는 더 낮은 위험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바젤Ⅱ에는 자기자본비율 8% 외에 기본자본비율 4%, 보통주자본비율 2% 기준이 추가되었다. 총자본은 기본자본(Tier1)·보완자본(Tier2)으로 이뤄지고, Tier1은 보통주자본(CET1, Common Equity Tier1)과 기타기본자본(AT1, Additional Tier1)을 포함한다. 하지만 바젤Ⅱ로도 2008년 금융위기를 막지 못하게 되자, 바젤위원회는 전면적인 재검토에 들어갔다.
2010년 11월 바젤Ⅲ(2013년 1월 시행)를 발표된 후, 2017년 12월 바젤Ⅲ 최종안을 발표하였다. 바젤Ⅲ는 자기자본비율 8% 외에 기본자본비율 6%, 보통주자본비율 4.5%로 기준이 강화되었고, 이에 더하여 완충자본과 레버리지 규제를 도입하면서 손실흡수력이 높은 보통주자본 중심으로 규제자본을 개편하려고 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자본이라고 다 같은 자본으로 취급하지 않겠다"
바젤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2023년 1월부터 바젤Ⅲ 최종안 적용이 시작되었다. 바젤Ⅲ 최종안의 목표 중의 하나는 가계대출을 줄이고 기업대출을 늘이는 것을 유도하는 것으로, 가계대출보다는 기업대출을 늘리는 것이 BIS비율을 달성하는데 유리하도록 기준을 설계하였다. 가계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내 시중은행들은 기업대출을 늘리거나 가계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외환위기로 체감한 위력, BIS비율
1997년 12월 한국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간의 합의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제일·서울은행을 팔고,
다른 12개 부실은행은 재무개선 계획을 제출한다"
IMF는 BIS비율이 8% 미만인 14개 부실은행(시중은행 10개, 지방은행 4개)의 조속한 정리를 요구했던 것이다. 당시 시중은행·지방은행 현황은 다음과 같았고, 붉은 색이 부실은행이었다.
시중은행 16개 :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신한, 한미, 동화, 동남, 대동, 외환, 하나, 보람, 평화, 국민, 주택
지방은행 10개 : 부산, 대구, 광주, 경남, 경기, 충청, 충북, 강원, 전북, 제주
1998년 6월 금융당국은 12개 부실은행 중에서 5개 은행(동화·동남·대동·경기·충청)에 대해서는 강제 피인수를 통보하였다. 나머지 7개 은행도 조건부승인을 통보받으면서, 우량은행과 합병하거나 외국금융기관과 합작하는 방식으로 인수·합병되었다. 사실상 BIS비율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은행들은 모두 독자적인 회생이 불가하다고 판단한 것이었고, 건전성 지표가 은행이 살아남기 위한 필요요건로 작동될 것임을 널리 알렸다.
외환위기 이전에 5대 은행(조상제한서,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이 과점체제를 유지하여 왔다면, 2000년대 들어 복잡한 이합집산을 거치면서 4대 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의 과점체제로 세대교체가 되었다. 2003년 외환은행도 BIS비율이 6%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당시 론스타(Lone Star, 미국계 사모펀드)를 제외하고는 외환은행에 투자하려는 투자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금융회사가 아닌 펀드인 론스타는 은행을 인수할 법적 자격이 없었지만, 정부는 BIS비율 문제로 인한 금융혼란을 막기 위해 예외적으로 론스타의 인수를 허용하였다. 2003년 적자 2100억원의 외환은행은 불과 2년 만인 2005년 이익 1.9조원을 창출하였고, 2006년 국민은행으로의 매각이 결정되었다. 이로 인해 론스타는 4.5조원를 벌게 되면서, 헐값매각 의혹과 BIS비율 조작 의혹이 제기되었다.
非은행금융에 적용되는 재무건정성, NCR
순자본비율(NCR, Net Capital Ratio)은 비은행금융사(증권사·운용사·부동산신탁사 등)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영업을 위해 자금을 조달·운용하는 과정에서 재무건전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데 활용된다. NCR이 높을수록 그만큼 재무상태가 좋다고 볼 수 있다. 1997년 도입된 영업용순자본비율(구NCR)은 영업용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눈 백분율이다. 영업용순자본은 보유자산 중에서 신속히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으로, 자기자본에서 고정자산을 제외한 금액이다. 총위험액은 시장위험액·기초위험액으로 나뉘는데, 자산별 위험가중치를 적용하여 산출된다. 여기서 시장위험액은 보유자산의 가격변동이나 거래자의 파산으로 인해 입을 수 있는 손실을 의미하며, 기초위험액은 고정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을 말한다. 구NCR이 150% 미만으로 내려갈 경우 금융당국의 적기시정조치(경영개선 권고·요구·명령)를 받으며, 일정기간 내에 개선되지 않으면 영업할 수 없도록 조치한다.
2016년 순자본비율(신NCR)이 도입되면서, 현재는 신NCR·구NCR이 공존하고 있다. 운용사·신탁사는 구NCR을 계속 적용하고 있는 반면, 증권사는 신NCR를 기준하고 있다. 신NCR 산식은 영업용순자본에서 총위험액을 뺀 값을 「업무단위별 필요유지 자기자본」으로 나눈 백분율인데, 구NCR과의 가장 큰 차이는 분모값(총위험액)이 분자값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변경된 산식에 맞춰 적기시정조치 수준도 완화되면서, 구NCR과 비교하여 우호적인 수치를 보여준다.
증권사는 높은 신NCR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구NCR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이는 현실적인 위험관리·신용평가와 연관있다. 신용평가사는 여전히 구NCR에 기초하여 신용등급을 평가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신NCR이 총위험액을 분모에서 분자로 전환했고 분모가 상수로 고정됨으로써 위험액의 절대값을 적절히 판단하지 못한다고 시각이 깔려있다. 즉 신NCR은 자본규모가 클수록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부동산금융의 뇌관, 비대해진 ABCP
현재 증권사가 취급하는 부동산PF에 있어서, 대출 형태의 공급자금은 NCR위험값 100% 차감하는 반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Asset Backed Commercial Paper) 형태는 18%만 차감된다. 이러한 규제차익의 틈을 타고, 자금여력이 부족한 중소형증권사들이 브릿지론·중순위·후순위 등 고위험PF를 ABCP 방식(매입확약·지급보증·채무인수)을 통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규제틈새를 이용하여 신사업을 확대하는 것은 전형적인 금융회사들의 전략이었다. 이전 글 <금리와 인플레에 무너진 다리, 브릿지론>에서 현행법상 부동산신탁는 수탁재산에 대하여 손실보전이나 이익보장을 해서는 안되지만, 책준관토에서의 책임준공확약은 신탁업자 본인의 채무에 해당하며, 수탁재산의 손실을 직접 보전하는 것이 아니므로 위법사항이 아니라고 언급했었다. 바로 부분을 활용하여 책준관토라는 신상품을 만들어 부동산신탁사들도 수년 간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자본 대비 무리한 사업추진은 회사의 재무위험과 더 나아가 시장위험까지 확대시켜 왔고, 그 이면에서는 횡령·배임 등의 모럴해저드도 불거져 나왔다. 이에 더하여 2019년 12월 폐지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부동산대출에 대한 신용위험 특례」가 PF-ABCP 발행량은 급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 전까지 종투사는 일반 증권사와 달리 PF대출에 대한 NCR위험값을 18%만 차감하는 특례가 있었지만, 이 특례의 폐지로 인해 종투사가 위험값이 낮은 PF-ABCP로 몰리면서 자유동화시장의 규모가 한 단계 커졌던 것이다. 참고로 2023년 6월 현재 총 9개 대형증권사(한투·삼성·NH·KB·미래에셋·신한·메리츠·하나·키움)가 종투사로 지정받아서 PBS(Prime Brokerage Service)업무와 기업신용공여를 수행하고 있다. 2017년 11월 5개 종투사(한투·삼성·NH·KB·미래에셋)이 초대형IB로 지정받았으며, 이 중 4개사(한투·NH·KB·미래에셋)가 순차적으로 발행어음 인가를 받았다.
신NCR이 도입된 배경에는 대형증권사를 육성하기 위한 인수합병과 해외진출 등의 규제를 완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자본여력이 있는 대형증권사가 하이리스크 신규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수록, 상대적으로 구NCR이 더 가파르게 낮아지는 모순에 갇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결과는 신NCR을 도입한 취지와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상승된 물가에 맟춰 빠르게 인상된 금리와 이로 인해 부실화된 위험자산은 모험자본 공급채널인 증권사를 비롯하여 운용사·부동산신탁사들까지 위기감에 빠트리고 있다. 이런 우려 속에서 금융당국은 위기감지와 부실확산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23년 5월 금융당국에서 PF-ABCP을 PF대출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하는데, 1~3개월 단위로 차환(refinancing, roll over)을 반복해야 하는 ABCP 비중을 줄여서 금융시장의 위험을 축소시키겠다는 목적이다. 그러면서 ABCP를 대출로 전환할 경우, NCR위험값을 100%에서 32%로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향후 발표될 금융당국의 부동산PF와 관련한 금융기관 재무건전성 개선안의 큰 틀은 자금공급 형태(대출·채무보증 등)에 따른 규제차익을 최소화하고, 유동화증권의 위험값을 사업장별 특성(변제순위·위험감내능력·사업단계 등)을 감안하여 변동값을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ABCP위험값은 기존 고정값 18%보다 높아질 것이며, 모험자본의 신규공급은 물론이고 기존공급도 빠른 시일 내에 회수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자기자본의 확충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부동산PF를 영위하는 증권사·운용사·부동산신탁사는 사업방식 전환이 요구될 수 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기존 PF사업방식의 제한·구조조정을 자연스럽게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도 가진다. 외환위기 이후 25년 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진화해온 한국식 PF(K-PF)가 이번 개선안으로 어떻게 개편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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