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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법

아는 만큼 보이는, 배상책임보험

by Spacewizard 2023.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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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골절수술과 10일 간의 입원을 끝내고, 퇴원수속을 대기하는 중에 한 남성이 다음과 같이 말을 걸었다.

"혹시 어디서 크게 다치셨나봐요?"

 

안면식도 없는 이의 갑작스런 접근을 경계한 채 병원비 수납을 이어갔지만, 그는 한발 뒤쪽에서 실비의료보험 청구를 위한 발급서류들을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그 순간 감이 스쳐갔다. 평소 위험하다고 생각해온 아파트 놀이터 시설에서 발생한 사고에 못내 분개하였지만, 마땅히 취해야할 조치가 생각나지 않아 답답해했던 가두리에서 탈출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온 것이다. 사고의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에서야, 그가 손해사정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손해사정사는 사고현장 사진과 CCTV를 살펴본 후, 아파트가 가입한 시설물배상책임보험을 청구해 볼 실익이 있다고 조언하여 함께 진행 중에 있다. 손해보험사에 재직한 경력이 있었음에도, 그 동안 손해사정사의 역할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무안했다. 오늘은 손해사정사와 배상책임보험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자.

 

손해보험의 파수꾼, 손해사정사

 

1977년 도입된 손해사정제도은 보험사고 발생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확인한 손해사실과 그에 기반하여 산정된 손해액으로 적정한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흔히 말하는 8대 전문자격사(변호사·변리사·법무사·노무사·회계사·세무사·관세사·감정평가사)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보험금 청구는 서류심사만으로 이뤄지지만, 전체 보험금 청구건 중 약 3% 수준은 손해사정이 이뤄진다. 손해사정업무를 수행한 손해사정사는 손해사정서를 작성할 의무가 있는데, 이 손해사정서에는 보험계약 사항, 사고조사·손해조사 내용, 보험금 지급책임의 범위, 손해액·보험금 사정액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손해사정사는 아래의 3가지 형태(고용·위탁·독립)로 업을 영위하게 된다. 

 

고용손해사정사 : 보험사 직원으로 고용된 자
위탁손해사정사 : 자회사 내지 협력업체인 손해사정업에 소속된 자

독립손해사정사 : 손해사정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자

 

전체 손해사정사의 80% 이상은 보험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고용·위탁손해사정사이고, 나머지가 손해를 입은 고객의 입장에서 일하는 독립손해사정사이다. 「보험업법」제189조에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손해사정사는 공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으므로 당초부터 배제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자기손해사정 금지의 원칙이라 한다. 하지만 시행령 제99조에서는 예외적으로 보험사가 손해사정업을 하는 자회사를 두고 위탁하는 형태를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자기손해사정을 실시해왔고, 이는 보험소비자의 권익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매년 말이면 보험소비자들은 손해보험사와 그 소속직원들의 높은 순이익과 성과급을 허망하게 바라볼 밖에 없다. 실제 전체 보험민원 중에서 손해사정 관련이 40% 수준이라고 한다. 2019년 6월 금융위원회는 보험협회 자율규제로 모범규준을 만들고 2020년부터 이를 시행하도록 했다. 이후 보험사들은 「보험계약자 등의 손해사정사 선임권」을 보험소비자에게 알려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문제는 해당권리의 유일한 안내주체가 보험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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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편에 선 개인사업자, 독립손해사정사

 

의료자문의학적인 내용에 대해 분쟁(법적분쟁, 보험분쟁 등)에 있어서 그 판단을 위해 의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을 말한다.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요구하는 이유는 주치의의 평가가 객관적이지 못하니, 제3의 의사로부터 받은 객관적인 의견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사유의 적정성을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보험약관 부합 여부에 관한 의학적 소견은 의사들이 평소에 수행하는 진단소견과는 초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보험 관련 의료자문에 특화된 의사풀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보험사가 뭔가 동의를 구하는 경우, 선뜻 동의에 응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논리(이론·사례·판례)와 인적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여 보험사를 상대해야 하는 독립손해사정사도 자신만의 법률자문·의료자문 라인이 있을 것이다. 독립손해사정사는 근거서류와 관련판례들을 토대로 최대한 높은 손해액을 산정한 후, 손해사정서를 작성하여 보험사에 보낸다. 보험사 내부규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험사도 일정금액 이상의 접수건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사와 자문(법률·의료)을 통해 보험금을 최대한 낮출려고 노력한다. 그에 따른 의견대립으로 인해 보험금 지급이 수개월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실무적으로는 손해사정서의 법적 효력이 없어, 보험사와 독립손해사정사 간에 손해사정서의 보완·정정 과정에서 감독규정이 준수되지 않음에 따라, 독립손해사정사가 보험소비자와 보험사 사이에서 중재·화해 등의 행위를 할 여지가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변호사법」 제109조 위반에 해당할 여지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법원은 손해사정사의 행위를 손해조사, 손해액의 사정, 보험사에 대한 의견개진으로 한정하고, 합의·절충·중재는 손해사정의 업무범위를 벗어난 변호사법의 화해사무로 보고 있다. 반면, 보험사와 그 직원은 통상 부정액보험에 대하여 화해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를 관행적으로 묵인해오고 있다고 한다. 보험사가 아닌 위탁손해사정업체도 변호사법 위반에서 자유롭지 않다. 

 

직접 가입하지 않은, 배상책임보험

 

배상책임보험(liability insurance)는 피보험자가 소유·사용·관리하는 시설 및 그 용도에 따른 일련의 활동으로 인한 사고로 제3자의 신체 및 재산상에 손해를 입혀 법률상 손해배상책임(legal liability) 부담함으로써 입은 손해를 보험자가 보상하는 보험이다. 배상책임보험은 인적·물적 손해가 발생하여도 그 손해 자체가 보험담보의 대상이 아니며, 그로 인해 피보험자가 법률상 손해배상을 부담하는 경우여야 한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시설배상책임의 유형이 달라지고 있는데, 장소 중심에서 행위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대표적인 배상책임보험으로는 아래의 유형이 있다. 

 

시설소유자배상책임보험 : 시설(건물·체육시설·설비 등) 이용 중 발생한 사고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 : 일상생활 중 발생한 사고 

영업배상책임보험 : 영업행위와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

생산물배상책임보험 : 구매자가 상품 사용 중 발생한 사고 
국가배상책임 : 공무원 내지 영조물로 인한 사고

몰라서 놓치게 되는, 시설소유자배상책임보험

 

대부분의 대형건물·아파트는 시설소유자배상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는데, 건물·단지 내의 공용부에서 제3의 이용자가 사고를 당한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여 보험처리가 무조건 되지는 않는다. 하자(시설물)·과실(관리자)이 존재해야만 하고, 이를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사고 직후 그와 관련한 증거물(CCTV, 현장사진, 목격자 진술 등)을 수집·확보하여야 한다. 배상주체도 피해자의 과실이 클수록 과실상계로 따라 보상금을 줄일 수 있는데, 이를 위해 분쟁과정에서 피해자의 과실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밖에 없다. 「민법」상의 과실상계는 채무불이행·불법행위에 의해 손해를 배상해야 될 경우, 배상책임의 유무와 배상액의 산정에 있어서 채권자·피해자의 과실을 참작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주택형태인 아파트는 그 규모에 비해 관리인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며, 이로 인한 관리 부주의나 시설물 하자로 아파트 단지 내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우선 단지 내에서 사고를 당한 경우에는, 관리사무소를 방문하여 사고경위를 진술한 후 보험접수를 요청하여야 한다. 사고를 당한 직후에는 경황도 없을 뿐더러, 시설소유자배상책임보험에 대한 존재 자체를 몰라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만약 관리사무소가 보험접수를 거부한다면, 피해자가 보험증권를 확보한 후 보험사에 직접 접수할 수도 있다. 만약 피해자에게 전적으로 과실이 있는 사고라도, 배상책임보험 내에 구내치료비 담보에 가입된 상태라면 구내치료비 한도금액 만큼은 도의적으로 보상이 가능하다고 한다. 반면 시설소유자의 과실이 일부 인정되는 사고라면, 배상책임보험에 따라 여러 항목의 보험금이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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