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 유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아직까지 매년 12월은 설레는 마음이 크다. 특히 성탄절(크리스마스) 전후로 시내거리에 울려 퍼지던 캐롤과 팝송은 추운 몸을 녹여내기에 충분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손을 더듬으며 머리맡에 놓아둔 털양말을 확인했었다. 산타클로스가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다음 날 선물을 기대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와 아이와의 눈치게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모는 양말에 정성을 들이는 아이의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아이도 양말을 챙기며 기도하는 모습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부모의 모습에서 크리스마스 아침선물을 내심 기대할 수 있었다.
미국 크리스마스의 따뜻한 이미지와 문화는 주로 영화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알려졌는데,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은 1991년 개봉한 「나 홀로 집에 : Home Alone」였다. 영화는 겨울, 눈, 크리스마스, 트리, 가족과 휴가의 전형적인 성탄절 느낌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주인공이 너무 좋아하는 치즈피자였다. 1980년대 후반 피자 프랜차이즈(1985년 피자헛, 1990년 미스터피자)가 국내에 론칭하면서 미국피자 광고가 많이 노출되고 있었지만, 미국인들이 피자를 얼마나 애정하는지에 대한 내러티브(narrative)는 부족했었다. 아마도 캐빈(kevin)이 국내 피자의 대중화에 기여한 부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1990년 중반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본인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피자를 먹어야 하는 줄 알고, 연말이면 주로 피자헛에서 친구들을 만나었다. 그럼 과연 지금의 크리스마스 이미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과연 그 원류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사실 고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추정·가설이 대부분이라, 그냥 흥미로 봤으면 좋겠다.
12월 자연현상에서 시작된, 시베리아 태양신
이전 글 <국가에 이어 브랜드를 대표하는, 엠버서더>에서 르네상스 이후 국가는 점차 그 국경과 권력범위를 확립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외교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고 언급했었다. 이렇듯 인류사에서 국경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은 불과 얼마되지 않았다. 국경이 없던 고대의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섞이면서, 대체로 공통적인 생활방식과 영적행위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시베리아(Siberia)는 러시아의 중동부에 해당하는 광활한 지역으로, 남쪽 국경으로는 카자흐스탄·몽골·중국과 접하고 있다. 대략 북위 50~75도까지 걸치고 있는 시베리아는 상당부분이 북극권(북위 66.5도 이상)에 속한다. 시베리아 샤머니즘(shamanism, 무술)은 넓은 시베리아의 여러 민족에서 전해 온 원시신앙으로, 인간·신 간의 매신저(제사장) 역할을 하는 샤먼(shaman, 무당)은 정치·종교가 분리되지 않던 시기에 정치지도자나 다름 없었다. 지구는 자전축(회전축)이 23.5도 기운 세차운동(precession)을 하기 때문에, 정북이 북위 90도(북극)가 아닌, 북위 66.5도가 된다.
고대부터 북위 66.6도 일대가 북극성신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어, 샤먼들은 종교적 수양을 위해 살인적인 추위를 무릎쓰고 거주했다고 한다. 고대 시베리아 부족들은 극한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순록을 사냥하여 먹으면서도, 종교적 차원에서 순록을 숭배하였다. 고대 시베리아 샤먼은 북극성신으로부터 선택 받았다는 의미로 사슴관을 머리에 쓰고, 순록을 따라다니며 유목생활을 하였다. 북위 66.6도는 매년 12월 22일(동지)부터 25일까지 사흘동안 태양이 거의 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고대 시베리아 부족들은 해가 다시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12월 25일을 새해로 받아들였고, 척박한 환경에 온기를 가져다 주는 태양신을 숭배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당연한 과학현상이 고대인들에게 태양신의 죽음과 부활로 여겨졌다.
하나님에 대항하는 인간, 바벨종교 태양신
시베리아 샤먼에서 먼저 시작된 것인지, 시베리아 외의 다른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인지 모르지만, 다양한 지역의 문명권에서 태양신 숭배가 등장했다. 이 중에서도 여러 지역과 종교의 근원이라고 추정되는 종교가 바빌론(바벨)종교이다. 바빌론(Babylon)은 그리스어 바베론(Babelṓn)의 라틴어 표현에서 유래되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문」을 의미하는 밥(Bāb)과 「신들의」라는 의미의 일림(ilim)을 합쳐 밥일림(Bābilim)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신들이 인간들과 만나려고 여는 문」으로 해석된다.
성경에서는 BC 2345년경 하나님이 노아와 3명의 아들(셈·함·야벳)을 남기고 모든 인류를 대홍수로 심판했다고 한다. 이 때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이 오늘날의 인류를 이루었는데, 함-구스(Cush)-니므롯(Nimrod)으로 이어졌다. 니므롯은 바벨(Babel)을 건설했는데, 티그리스강·유프라테스강 사이의 평탄한 계곡에 위치한 시날(현 이라크)지역의 도시이다. 니므롯은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인간인 자신을 스스로 태양이라 칭했다. 대홍수심판이 있은지 불과 130~340년이 지난 후, 니므롯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쌓은 바벨탑 위에 일월성신 제단을 두어, 백성에게 인간을 우상숭배케 했다.
유대인 전승에 따르면, 니므롯에게는 세미라미스(Semiramis)라는 부인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세미라미스는 구스(니므롯 부)의 부인이기도 했고, 담무스(니므롯 아들)의 부인이기도 했다는데, 이건 신화라는 특성을 감안하여 보면 될 듯하다. 이전 글 <잠실과 함께 쓸모 있어진, 탄천>에서는 중국 곤륜산의 한 봉우리에 살고 있다는 반인반수의 여신 서왕모에 대해서 언급했었다. 「서쪽에 사는 왕의 어머니」라는 의미를 가진 서왕모가 세미라미스와 동일인이라고 가정한다면, 서쪽에 사는 왕은 담무스일 수도 있다.
세미라미스는 죽은 니므롯의 시체를 여러 조각으로 나눠 각지에 보내어, 니므롯을 태양신으로 숭배하게 하였다. 여기에 죽은 니므롯이 하늘로 올라가 태양신이 되었고, 그 태양의 빛을 받아 잉태한 담무스는 니므롯의 환생이라는 서사를 담았다. 이는 「창세기」3장 15절에 등장한 원시복음(예수에 관한 최초의 예언)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를 보낼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다. 남자의 씨를 직접 받지 않고 아이를 잉태함으로써, 여자를 숭배하는 기초배경이 되었다. 세미라미스는 담무스와 결혼하면서, 스스로를 태양신의 어머니이자 아내가 숭배대상으로 자리 잡는다. 바벨종교는 다음의 일월성신을 모셨다.
태양신 : 니므롯(내지 담무스)
달신 : 세미라미스
별신 : 담무스
바알(Baal)은 부자(니므롯·담무스)가 합쳐진 끝판왕 개념이며, 인류 최초로 모자(세미라미스·담무스)를 신으로 모시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로 무교에서 성신(星辰)은 성신(星神, 큰 별신)과 신신(辰神, 잔 별신)을 합한 일체의 별신을 의미한다.
현대인의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태양신 숭배
로마시대에 와서 문명권의 태양신 숭배는 크게 공통적인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12월 농신 축제(17~23일, 7일간)
태양신 탄생 기념
태양신과 대응하는 여신 숭배
12월 17일부터 시작하는 농신제(Saturnalia)는 농업의 신 새턴(Saturn)을 기념하던 고대로마의 축제로, 축제기간 내내 폭음·폭식·음란행위가 벌어졌다. 첫째날 종교적인 의식으로 시작하여, 다음날에는 새끼돼지를 제물로 바쳤다. 축제기간에는 법정·학교·상점 등 모든 사회활동을 멈춘 채로, 가족은 물론 노예들도 축제에 참가할 수 있었다. 축제의 마지막에는 촛대를 선물로 교환하였는데, 촛대는 햇볕을 증가시키는 능력을 상징했다. 농신제를 끝낸 12월 25일에는 「나트리스 솔리스 인빅티(Natlis Solis Invicti)」라는 축제가 열렸는데, 이는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탄생일을 의미했다. 그리고 태양신을 숭배하는 문명에서는 반드시 짝을 이룬 여신이 존재하여, 여신숭배의 풍습이 자리잡고 있었다.
로마에서는 가톨릭이 국교로 지정되기 전에 페르시아로부터 유입된 밀교(mystery religion, 밀의종교)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는데, 그 밀교가 바로 남성군인들 위주로 구성된 미트라교(Mithraism)였다. 미트라교는 태양신 미트라(Mithras)를 믿는 종교로, 「계약·약속」을 의미하는 인도유럽조어 미트라(mitra)에서 유래했다. BC 3세기경 페르시아에서 성행했던 미트라 숭배는 페르시아의 번창과 함께 그리스·로마로 전파되었다. 당시 로마황제들도 황제의 상징 중 하나가 태양이었기 때문에 미트라교에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생소한 미트라교의 교리·의례는 다음과 같았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하기 그지 없다.
미트라 탄생일 : 12월 25일
미트라 제자 : 12명
미트라 부활 : 무덤에 묻힌 후, 3일만에 부활
미트라교 안식일 : 일요일
미트라교 의례 : 세례, 성수, 성찬식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모든 종교에 대해 관용을 베푼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을 발표하면서, 가톨릭교회에 대한 박해를 금지했다. 4세기는 가톨릭이 경쟁관계에 있던 이교문화·이방풍습들을 대거 흡수합병하면서, 당시 로마인구의 80% 정도가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특히 가톨릭이 발생하기 전부터 이미 로마제국 내에서 유행했었던 미트라교의 교리·의례가 가톡릭에 의해 수용되면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밀라노 칙령 이후 70여년 만인 39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카톨릭을 로마의 국교로 지정한다.
미트라교가 유행했던 수세기 동안 미트라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대한 축제가 12월 25일에 열려 왔었는데, 로마카톨릭은 민간에 널리 퍼져있는 미트라교와의 화합은 위해서라도 예수의 생일(1월 6일)을 12월 25일에 맞출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후,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내용도 미트라교의 교리를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미라미스는 해마다 40일의 애도기간을 정했는데, 40세에 세상을 떠난 담무스의 죽음을 국가적으로 애도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바벨에서는 봄에 땅에서 부활한 담무스가 땅을 비옥하게 하고 풍년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는데, 유대력으로 4월이 담무스월이다. 325년 로마가톨릭이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에서 유월절을 없애고 부활절을 절기로 정하면서, 담무스의 부활을 애도하는 바벨풍습인 사순절(lento)을 따르게 되었다. 이후 부활절이 되기 전 40일(6번의 주일 제외) 동안을 사순절이라고 하여 금식·특별기도를 행했는데, 사순(四旬)은 40일을 의미한다.
사순절과 연계되는 유럽문화가 카니발(carnval, 사육제)로, 사순절을 앞두고 미리 고기를 실컷 먹어두는 3~7일 간의 축제기간이었다. 이 축제의 마지막 날을 「육식금지」를 의미하는 라틴어 카르넴 라바레(carnem lavare)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카니발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긴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동물적 본능
12월 22일 기나긴 어둠이 시작되면, 죽은 태양을 되살리기 위해 샤먼은 하늘에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샤먼들은 부족사람들을 동굴 속에 가둔 후, 음식과 술은 물론 환각제(광대버섯)까지 제공하면서 일출을 기원하는 축제와 함께 성관계를 맺게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설화로는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샤먼이 순록썰매를 타고 민가를 하나하나 방문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샤먼은 식량·비상약재·환각제 등을 큰 자루에는 담아서, 은거 중인 부족민들에게 선물배달을 한 것이다. 당시 시베리아는 폭설로 인해 집 전체가 덮여버리니, 오직 눈 위로 솟아오른 굴뚝으로 집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으니, 굴뚝을 매우 크게 만들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클로스가 굴뚝을 통해 선물을 전달하는 스토리와 일맥상통한다.
아마 샤먼의 배려로 12월 22~24일 사이에 잉태된 아이들은 태양신의 기운을 받았다고 하여, 부족을 대표하는 리더로 자라났을 수도 있다. 바벨종교의 담무스가 그랬던 것처럼. 부족민들에게 공식적인 성행위를 권장하고, 이를 통해 부족의 미래를 이어갈 아이들을 출산하게 했다는 점에서, 샤먼이 훗날 「산파의 여신」인 삼신할미의 기원일 수 있다. 오늘날에도 크리스마스는 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날로 인식되는데, 아주 오래 전의 종교적 관행이 지금까지 우연찮게 이어지는게 신기하다.
1982년 1월 5일 밤12시 야간통행금지(통금)이 해제되기 전까지, 한국에는 1945년 9월 7일 맥아더의 포고령에 의해 실시한 야간통금이 37년간 시행되었다. 물론 조선시대 이전에도 통금은 있었다. 이전 글 <조선 기생과 일본 접대가 만나서, 요정>에서는 1980년대 들어 경제성장 및 통행금지 해제 등의 유화조치와 더불어 현대판 요정이라 할 수 있는 룸싸롱이 대거 등장했다고 언급했었다. 통금시절에도 1년에 2번(크리스마스, 제야)은 통금이 없어, 해방감을 느낄려는 이들로 밤거리가 붐볐었다. 그 때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청년들 사이에서 크리스마스는 성(性)탄절로 인식되었고, 크리스마스 이브의 실수로 태어난 아기들을 「크리스마스 베이비」라 부르기도 했다. 현대판 샤먼의 아기이자 담무스가 아닐 수 없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기 전부터 종교라는 영적 행위는 시작되어 왔을 것이며, 오늘날 알려지지 않은 태초의 종교들로부터 시작하여 수없이 많은 종교들이 서로가 서로를 카피하면서 성쇠를 반복했을 것이다. 사료나 구전에 따르면, 오늘날의 주류종교들은 약 3000년 전에 바벨에서 생겨난 태양신 숭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확신은 아니다. 하나님이 바벨에 모인 인간들의 언어를 혼돈케 하자, 대화가 통하지 않은 인간들을 여러 곳으로 흐트렸다. 그리고 바벨종교의 원형인 남신(니므롯), 여신(세미라미스), 모자(세미라미스·담무스)도 전세계 도처로 퍼지면서, 여러 변형된 형태로 현재까지 숭배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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