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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나이가 들면서 실감나는 독한, 독감

by Spacewizard 2024.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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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에 온 가족이 B형 독감에 걸렸었는데, 아이들과 부모가 4일 정도 간격을 두고 감염되었던 것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통상 3일 가량이라고 하니 얼추 들어맞는다. 여기서 더 충격적인 것은 작은 아이가 B형 독감에 감염된지 2주 만에 다시 A형 독감에 감염된 것이다. COVID-19가 끝난 후라 그런지 몰라도 통상적인 독감유행 대비 7~12배 가량 더 많은 독감감염자가 나온다고 하니, 가히 대유행이라고 불러도 될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성인이 된 이후 독감에 감염된 적이 없어 그 증상·치료에 대한 경험치가 없었다. 그래서 막연히 일주일 정도의 고생을 예상했는데, 페라미비르 성분의 주사제(수액)의 효과는 드라마틱했다. 1시간 가량의 투약을 마친 후에 몸이 상당히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상용화된지 10년 갓 넘은 페라미비르는 비급여임에도 많은 이들이 찾는 이유는, 경구복용제(타미플루)보다는 확실히 효과가 빠르고 실비보험 청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은 독감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감기와 원인이 다른, 독감

 

40년 이상 인생을 살면서, 감기와 독감을 명확히 구분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은 지난 10년 동안 수없이 독감예방과 독감치료에 주의를 했을테니, 아빠의 무관심과 안일함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감기증상이 심해진 상태가 독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하여 많이 있을 것이나, 감기와 독감은 원인, 증상, 합병증 등에서 차이가 나는 전혀 다른 질환이라고 한다. 라틴어로 「독」을 의미하는 비루스(virus)에서 유래된 바이러스는 유전체(게놈, DNA·RNA)와 이를 둘러싼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한 개체의 모든 유전정보를 의미하는 게놈(genome)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가 합쳐진 말로, RNA에 저장되는 일부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보통은 DNA에 저장된다.

 

감기는 200여개 이상의 서로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환으로, 대표적인 바이러스로는 리노(rhino)바이러스와 코로나(corona)바이러스가 있다. 섭씨 33~35도에서 활발한 리노바이러스는 환절기(늦봄·초가을)에 많고, 코로나바이러스는 한겨울에 주로 유행한다. 얼마 전 고열로 병원을 방문하니, 의사는 COVID-19보다는 독감의 위험성을 더 강조했었다. 독감은 인플루엔자(influenza)바이러스가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질환이다. 리노·코로나·인플루엔자는 모두 호흡기바이러스로, 상부호흡기 감염(감기·인후염·비염 등)을 일으킨다. 이전 글 <당연하지만 숨은 코로 쉰다는 걸 알려준, 구강호흡>에서는 세균·바이러스가 체내에 들어오기 전에 필터링하는 자연방어기능이 없는 구강호흡이 감기·독감의 감염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언급했었다.

 

감기라고 다 같은 감기가 아닌, 호흡기증후군

 

얼마 전 COVID-19의 대유행으로 알려진 코로나는 사람·동물(조류·포유류)에게 흔히 감염되는데, 사람은 오랜 세월 코로나와 함께 진화했기 때문에 충분한 면역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과거 동물에서만 감염되던 코로나가 우연히 사람에게 감염되면 중증대유행을 일으킬 수 있다. 최근 들어 역전사중합효소연쇄반응(RT-PCR, Reverse Transcription Polymerase Chain Reaction) 기법의 발달로 신종 RNA바이러스의 확인이 수월해지면서, 변이코로나의 출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전사(transcription)DNA에 적힌 유전정보를 RNA중합효소에 의해 mRNA로 옮기는 과정인 반면, 역전사RNA의 유전정보가 역전사효소에 의해 DNA로 전달되는 과정이다. 역전사를 통해 합성된 DNA를 cDNA(complementary-DNA,  상보적 DNA)라고 부르는데, 이는 주형인 mRNA와 상보적 배열을 가지기 때문이다. PCR은 증폭을 통해 많은 수의 DNA서열을 만들어내는 기법으로, RT-PCR은 RNA가 역전사되어 cDNA를 만들고, 만들어진 cDNA가 기존의 PCR을 통해 증폭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변이코로나는 다음과 같다.

 

2003년 :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CoV

2012년 :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CoV

2019년 : 2형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CoV-2)

 

SARS-CoV-2가 COVID-19이다. 사람에게 질명을 유발하는 인간코로나바이러스(human CoV, HCoV)는 총 7종이다. 4종(HCoV-229E, HCoV-OC43, HCoV-NL63, HKU1)은 감기 정도의 가벼운 증세를 보이지만, 나머지 3종(SARS, MERS, COVID-19)은 중증폐렴 동반하는 심각한 호흡기증후군을 일으킨다. SARS-CoV는 박쥐-사향교양이-사람 경로로, MERS-CoV는 박쥐-낙타-사람 경로로 전파되었다. 라틴어로 「왕관」을 의미하는 코로나는 그 인지질 껍질에 스파이크 단백질이 촘촘히 박힌 왕관모양이며, 각각의 코로나들은 유전정보와 단백질이 일부 다르다. 코로나는 인지질 껍질로 인해 외부 단백질의 변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스파이크 단백질에 의해 호흡기 점막에 잘 부착되는 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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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구분은 못 했던, 독감타입

 

인플루엔자는 4가지 타입(A·B·C·D)으로 구분되는데, A형이 대부분(70% 이상)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주로 B형이며, 발생빈도가 매우 낮은 C형은 주로 소아에서 발생한다. D형의 경우 아직까지 사람에게 전염이 보고된 사례는 없다. 주로 한겨울(12월~1월)에 발생하는 A형 독감은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을 통해서도 감염이 가능하며, 다양한 감염형태와 빠른 변이속도로 인해 예방·치료가 어렵다. 그래서 매년 새로운 독감백신의 접종이 필요하다. 감염 후 잠복기(1~4일)가 지나면, 고열(38℃ 이상)과 함께 독감증상(근육통·관절통 등)이 나타난다. 오직 사람을 통해서만 감염되는 B형 독감은 독성이 약하고 변이속도가 느려 몇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유행하는 편이다. A형 독감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나, 상대적으로 합병증·사망률은 낮은 편이다. 이전 글 <관심을 가져야만 구분되는, 간염>에서는 바이러스성 간염이 5종류가 있으며, 독감과 다르게 B형이 감염성이 높으며, C형이 변이속도가 높아서 백신개발이 어렵다고 언급했었다.

 

유형과 무관하게 처방되는 독감치료제는 복용제(오셀타미비르 성분), 흡입제(자나미비르 성분), 주사제(페라미비르 성분)로 구분되는데, 모두 NA를 저해하는 기능을 한다. 인플루엔자는 감염 후 3일(72시간) 내에 증식 일어나므로, 초기증상 발현 또는 감염자와 접촉한지 2일(48시간) 내에 약을 복용하는 것이 해야 한다. 복용제·흡입제는 5일(1일 2회) 투여하고, 주사제는 1회만 투여해야 한다. 독감치료제 투여받은 소아·청소년에게서 신경정신계 이상반응(경련·섬망)과 그로 인한 추락사고가 보고된 바 있어, 병원에서는 보호자의 각별한 주의와 관심을 당부하고 있다. 1996년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시스(Gilead Sciences)가 개발하고, 스위스 오프만 라 로슈(Hoffmann–La Roche)가 판매 중인 타미플루(Tamiflu)는 오셀타미비르(oseltamivir) 성분의 상품명이다.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에서 개발 및 생산 중인 리렌자(Relenza)는 자나미비르(zanamivir) 성분의 상품명으로, 타미플루를 대체하여 NA를 저해하는 기능을 한다. 페라미비르(peramivir)를 성분하는 하는 상품으로는 GC녹십자가 오리지널사인 페라미플루(peramiflu)가 있다.

 

인플루엔자 생존전략, 변이

 

외피를 보유한 인플루엔자는 8개(HA·NA·PB2·PB1·PA·NP·M·NS)의 분절된 단일가닥 음성 RNA(positive-sense single-stranded RNA)을 가지고 있는데, 이 RNA가 숙주세포 안으로 침투하면서 본격적인 증식활동이 일어난다. A형 인플루엔자의 아형(subtype)은 표면당단백질 혈구응집소(hemagglutinin, HA)·뉴라미니데이스(neuraminidase, NA)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는 18개의 HA아형과 11개의 NA아형이 있다고 한다. 인플루엔자는 항원 대변이(shift)소변이(drift)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신종·변종이 생겨난다. 대변이는 유전자가 재조합되며, 소변이는 특정 유전자의 점 돌연변이에 의해 일어난다. 대변이는 종간감염(spillover)을 일으킬 수 있으며, 면역력이 없는 숙주에서 감염이 폭증하며 팬데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인플루엔자 백신의 목표는 HA인데, 이는 HA가 숙주세포 표면의 시알산(sialic acid)과 결합·침투하는 역할하기 때문이다. 동물감염 인플루엔자의 HA는 사람감염이 가능하게끔 진화·변이될 수 있는데, 이 변이바이러스를 가진 동물이 사람과 접촉하면 사람에게도 감염되는 종간전파가 일어난다.  것이다. 즉 지속적인 변이전략으로 출현한 인수공통 바이러스가 면역력 공백을 찾아서 신속하게 중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잊혀질 만하면 뉴스에 등장하는 특정지역의 닭이나 돼지의 살처분은 바로 종간전파를 차단하는 가장 확실한 조치임을 보여준다. 20세기 이후 다음과 같이 4번의 인플루엔자가 대유행을 했는데, 그 원인은 항원 대변이로 인해 면역방어기능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18년 : 스페인 독감(H1N1형)

1957년 : 아시아 독감(H2N2형)

1968년 : 홍콩 독감(H3N2형)

2009년 : 신종 인플루엔자(H1N1형)

 

A형(H1N1) 인플루엔자에 의한 스페인 독감은 1918년 봄의 1차 유행과 가을·겨울에 걸친 2차 유행으로 구분되는데, 2차 유행이 세계적인 재앙으로 기록된다. WHO는 2차 유행으로 4~5천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세계인구의 약 2%에 달했다. 일반적으로 독감의 연령별 사망률은 노인(65세 이상)이 가장 높은데, 1918년 당시에는 전체 사망자의 대부분이 65세 이하였다고 한다. 특히 20~45세의 젊은 사망자의 비율이 60%를 차지했다. 면역력이 강한 젊은 사람들에게 면역과잉반응인 사이토카인 폭풍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만큼, 스페인 독감의 주된 사망원인으로 사이토카인 폭풍이 지목되기도 했다. 이전 글 <잃어가는 총명을 잡고자, 뇌 영양제>에서는 과다하게 분비된 사이토카인이 폭발적인 염증을 일으키며, 그 과정에서 정상세포들의 DNA까지 변형시켜 2차 감염이 발생한다고 언급했었다. 1957년 아시아 독감은 스페인 독감보다 독성이 덜한 A형(H2N2)에 의한 것이었는데, 야생오리에서 기인했다고 알려져 있다. 스페인 독감과 달리 2차 유행보다는 늦여름·초가을에 발생한 1차 유행에서 더 큰 피해가 있었다. 연령별 사망자는 55세 이상의 고연령층이었다. 20세기 3대 독감 중에서 독성이 가장 경미했던 1968년 홍콩독감은 A형(H3N2)에 의한 것이었는데, 세계적으로 100만명 가량의 사망자를 발생시켰고, 이후 매년 겨울 유행하여 큰 희생을 가져왔다.

 

이번 독감감염으로 결심한 것이 있는데, 매년 가을에 독감예방주사을 맞아야 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배에 맞게 추천되는 대상포진·폐렴구군 예방접종을 두루 맞아 놓을 생각이다. 특히 이번 독감은 목 부위의 잔기침과 가래가 3주 가량 지속되면서 치료기간이 길었는데, 이 과정에서 백신접종으로 병을 예방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백신비용·기회비용 훨씬 클 수 있겠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병도 문제지만, 후유증까지 남길 가능성이 있는 대상포진·폐렴은 상상만 해도 두렵다. 젊은 시절에는 몸살과 함께 오한이 엄습하면,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몸을 움츠리고 한숨 자면 개운하게 회복되었다. 오한의 근융수축운동이 심부온도를 상승시키면서, 체내 면역세포들을 감염부위로 유도하여 감염원을 제거시키기 때문이었다. 아. 자연회복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영원한 육체는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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