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전하지 못한 말
https://www.youtube.com/watch?v=9QxdQNKuihQ
몇 일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의 공지사항·투표함이 눈에 들어왔다. 5년차 하자보수 관련 채권양도 동의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각 구분소유자가 가지는 5년차 하자보수청구권과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을 입주자대표회의에게 양도하는 것을 말하며, 소유자의 80% 이상이 동의할 경우 이를 근거로 입주자대표회의가 시공사와 합의서를 작성하고 합의된 보수공사를 실시하게 된다. 다만 동의율이 80% 미만일 경우에는 재협상·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게 된다고 한다. 5년차 하자는 사용승인일로부터 5년 이내의 하자를 말하며, 이 기간 내에 하자보수청구를 해야만 보수를 받을 수 있다. 다만 하자청구기간 내에 청구하였으나, 미보수건은 하자기간이 경과해야 유효하다. 사용승인일로부터 벌써 7년이 훌쩍 경과한 상태이니, 아마도 5년차 하자보수청구는 기간 내에 해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침 최근 누수사고를 겪은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하자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세상에 없을 수 없는, 하자
흔히 하자(瑕疵)는 흠·결점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하(瑕, 티가 있는 옥)와 자(疵, 흠)이 합쳐진 단어로, 실제적으로는 두 단어 모두 흠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흠결의 대상으로 옥(玉)이 거론되었는데, 이는 살짝만 부딪혀도 긁힌 흔적이 남는 예민한 때문이다. 아래와 같은 말이 있기에, 흠집없는 옥이나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세상에는 하자 없는 물건이 없다"
엄청난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4대 미녀(양귀비·서시·초선·왕소군)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양귀비의 암내, 서시의 긴 목, 초선의 못생긴 귀, 그리고 왕소군의 큰 발이 옥의 티였다고 한다.
공동주택은 주어진 예산·시간으로 인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하자가 반드시 발생하기 마련이다. 「공동주택관리법」에서 하자는 공사상 잘못으로 인해 발생하여 건축물·시설물의 안전상·기능상·미관상의 지장을 초래할 정도의 결함(균열·침하·파손·들뜸·누수 등)을 의미하는데, 크게 2가지(내력구조부별·시설공사별)로 구분하고 있다. 내력구조부의 하자는 공동주택 구조체의 일부·전부가 붕괴된 경우 또는 구조안전상 위험을 초래하거나, 그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정도의 결함이 발생한 경우를 한다. 내력구조부는 「건축법」에 따른 건물의 주요구조부·내력벽·기둥·바닥·보·지붕틀·주계단을 말한다. 시설공사별 하자 공사상의 잘못으로 인한 균열·처짐·비틀림·들뜸·침하·파손·붕괴·누수·누출·탈락 또는 여러 불량(작동·기능·부착·접지·결선·고사·입상 등)이 발생하여 초래된 결함이다.
가장 빈번한 하자, 누수
천정·바닥·벽을 맞대고 사는 공동주택에서는 이웃 간의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주요 원인으로는 층간소음·누수가 있다. 누수(漏水)는 물이 새는 현상으로,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배관의 노후화(부식·크랙·이음불량), 외벽의 균열, 그리고 방수층의 손상이 있다. 누수는 천정·벽의 도배지에 외관상 얼룩·들뜸을 발생시키고, 물이 이동했던 보이지 않는 경로를 따라 곰팡이·백화현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 백화(白化)는 콘크리트 내에 존재하는 가용성 성분(수산화칼슘, 알카리황산염 등)이 물에 용해되어 구조물의 표면으로 운반된 후, 물이 증발되어 가용성(알카리황산염)·난용성염(탄산칼슘)의 형태로 석출되는 현상이다. 마치 하얀 우유를 뿌려놓은 모습과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누수는 윗집(원인제공자·가해세대)의 문제로 인해 아랫집에 피해를 준다. 집합건물인 아파트의 구분소유권은 전유부·공용부로 나뉘는데, 공용부(공용배관·건물외벽·옥상 등)의 하자로 인한 누수는 공동주택 관리주체인 입주자대표회의 책임범위이다. 얼마 전 주방의 상부장을 타고 물이 흘러 내려와서 당황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양의 물이 천정도배 일부에 흔적을 남겼다. 누수상황을 관리사무소에 알린 후, 천정 조명부를 해체하여 석보보드 위쪽을 관찰한 관리사무소 직원은 윗집에서 물이 내려왔다고 판단했다. 즉시 윗집을 방문하여 주방 싱크대 하단을 살펴본 결과, 하수배관의 연결이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하수배관 밖으로 흘러 나온 물이 하수배관·콘크리트 사이의 틈을 타고 흘렀던 것이다.
누수 하자, 전유부
전유부의 누수는 주로 배관·방수층(화장실)에서 발생한다. 아파트 전유부에는 외관상 드러나지 않은 많은 배관들이 있는데, 온수(급탕)·냉수(급수·상수도)·난방·오수·우수·잡배수(씽크대·욕실·베란다·세면대 등)가 있다. 화장실 내의 배수관·오수관이 손상되면서 누수가 발생할 경우, 일반적인 누수와는 차원이 다른 불편·불쾌를 겪을 수 있다. 보통 타일·메지(색시멘트)로 시공되는 화장실 바닥은 노후화·리모델링 등에 의해 방수층이 손상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아파트에서는 상수도배관보다 온수·난방배관에서 누수가 자주 발생한다. 온수배관은 냉·온수의 온도에 따라 확장·수축을 반복하면서 배관피로도가 쌓이게 된다. 난방배관은 과거 동관(銅管)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최근에는 폴리부틸렌(PB, Polybutylene)·엑셀관(XL, PE-Xa)이 사용된다. PB은 표면손상 내지 이물질(석유화합물질·녹 등)과의 접촉으로 인해 크랙이 발생할 수 있다. 엑셀관도 빛노출 내지 이물질과의 접촉으로 크랙이 생길 수 있다. PB·엑셀관 매립에 있어서 최선의 방법은 이음매 없이 하나의 롤로 시공하는 것이다. 참고로 PB를 에이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정산애강(PB업계 1위)의 이전 사명이 에이콘이었기 때문으로, 공사현장에서 회사명으로 지칭하면서 고유명사로 자리잡은 사례이다.
창가·외벽 등에서 발생하는 결로가 누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결로(結露)는 실내·외의 온도차로 인해 발생하는 물방울로, 온기 쪽에 생기게 된다. 여름철 내부의 내부한기와 외부온기가 만나서 건물벽 외부에 결로가 생기는 반면, 겨울철 내부온기와 외부한기가 만나서 건물벽 내부에 결로가 생긴다. 이는 자동차 앞유리에도 동일한데, 결로가 생기는 면은 여름(외부)과 겨울(내부)가 다르다. 비가 내리는 날은 습도가 높아서, 결로의 강도가 더 커진다. 건물결로의 대표적인 3가지 원인은 부실설계·부실시공(단열재)·사용과실이다. 부실설계·부실시공은 설계사·시공사에게 하자보수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많은 경우에서 습도조절(환기·개조)을 제대로 못한 입주민의 사용상 과실로 판단되어질 가능성이 높다.
누수 하자, 공용부
공용부분의 누수는 주로 외벽·옥상방수층에서 발생한다. 이전 글 <수 많은 구멍 속의 정전기력, 숯>에서는 다공성을 지닌 숯의 넓은 내부단면적이 독소흡착 외에 탈취·제습·가습·여과 등의 편리한 기능을 제공한다고 언급했었다. 콘크리트도 수 백만 개의 공극(空隙, 미세구멍)과 모세관(미세균열)을 가진 다공질 구조로, 물이 스며들기 좋은 구조이다. 물이 콘크리트의 공극·모세관 사이로 침투·동결을 반복하면, 부피팽창으로 인해 공극·모세관이 확장된다. 이렇게 발생한 균열이 점점 깊어져 내부철근에까지 닿게 되고, 철근이 부식되면서 녹이 생긴다. 녹슨 철근의 팽창한 체적(體積, 부피)이 균열의 크기를 넓히면서, 더 많은 수분을 흡수하게 된다. 결국 점점 커진 외벽의 콘크리트의 균열을 통해 아파트 내부로 누수가 발생하는 것이다.
옥상에서의 누수 요인으로는 녹화시설, 배수로 부족, 그리고 콘크리트 균열이 있을 수 있다. 옥상의 방수시공에는 보통 우레탄(Urethane, 유레세인)이 쓰이는데, 햋빛에 노출된 우레탄은 시간이 지날수록 들뜨거나 파손·균열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또한 배수구 주변이나 바닥·벽이 만나는 부분에 실리콘 작업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누수분쟁 해결, 피해세대의 입장
누구나 누수사고의 가해세대·피해세대가 될 수 있는데, 각 입장에 따라 고민거리가 다르다. 가해세대는 수리비의 규모를 걱정할 것이고, 피해세대는 가해세대의 책임회피 가능성을 우려할 것이다. 누수흔적이 발견되면, 누수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윗집을 찾아가서 상황을 전달해야 한다. 누수원인이 윗집의 전용부분이라는 사실이 판명되면, 적절한 조치와 적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계획은 높은 확률로 벗어날 가능성이 높으며, 이 때 아래와 같이 읊조린다.
"세상 일, 내 맘 같지 않네"
공감능력이 부족한 가해자(윗집)이 누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누수는 대부분 아랫집의 과실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굳이 윗집이 책임을 부인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직 우리 주변에는 「일단 우기거나 피하고 보자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물론 사적 대화로 해결이 안되면, 소송을 통해 법적으로 대응하면 된다. "설마 같은 아파트 주민끼리 얼굴 붉히면서 소송까지 가지 않겠지"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는 경우도 많다. 아파트에서 이웃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가 꽤 오래 전임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아쉬울 때는 이웃을 찾는다. 하다하다 안되면 누수원인이 전용부임은 인정하지만, 그 넘친 물이 아랫집까지 내려간 것은 층간 콘크리트 하자라는 이상한 호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초동대처에서 피해자를 배려·공감하지 않는 태도를 보일 경우에는, 소송을 염두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소송 전 압박전략, 내용증명
일정기한 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가 진행될 여지를 남겨 둘 필요가 있다. 민사소송 단계 이전에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바로 법적 효력이 있는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것이다. 내용증명은 발송인이 작성한 등본을 우체국으로 보내서 시간·수신자에 대해서 우체국장이 증명하는 제도로, 수신자 이름·주소가 명기되어야 한다. 내용증명을 보내기 위해서는 동일한 문서 3부가 필요하며, 발신자·우체국·수신자가 각각 1부씩 보관한다. 발신자는 3년 이내에 한하여 우체국에 관련 증명을 요구할 수 있다. 누수와 관련한 내용증명에는 다음의 상황을 상세히 기록해야 하며, 최대한 감정요소를 배제해야 한다.
사실관계 : 발생시점, 피해상황
해결을 위한 요구사항 : 수리비·복구비 조치, 해결기한
내용증명은 그 자체로는 강제성이 없지만, 법적 조치가 예상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해세대에게 충분한 압박을 줄 수 있다. 내용증명 단계에서도 법적 요건를 갖추기 위해 변호사의 자문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소규모 금액을 다루는 일상영역에서 굳이 법률자문까지는 필요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중언부언(重言復言)·횡설수설(橫說竪說)로 산만하게 작성한 글은 상대방을 압박하기 보다 오히려 안심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문서의 형식·내용·표현에 있어서 짜임새 있는 느낌을 줘야 한다. 또 다른 압박수단으로 부동산가압류도 있으나, 이는 아파트 내의 평판이나 갈등금액 규모를 감안하면 자제하는 것이 낫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최선의 방법은 대화·합의이다.
사고발생 직후, 누수현장과 그로 인한 피해증거(사진·동영상)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내용증명을 발송한 후에도, 상대방의 반응을 계속 주시하면서 추가적인 증거수집을 계속해야 한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할 경우에는 보수비용과 별도로 손해배상까지도 청구가 가능하지만, 제소에 앞서 않은 계산이 머리를 스쳐간다. 최근에는 소액소송도 최소 1년은 걸리는 추세이며, 낮은 소가와 함께 소송비용(감정비용·현장검증비용·변호사비용 등)·번거로움이 소송을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 향후 스케줄을 어떻게 가져가든, 피해증거의 확보가 보상책임을 묻기 위한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증거자료가 부실할수록 보상금액은 줄어들 것이다.
가해세대가 소유자가 아닌 세입자라면, 세입자·소유자 간의 비용부담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차인의 과실로 인한 누수가 아닌 건물노후화로 인해 발생한 누수라면, 소유자가 보수공사비용·손해배상까지 전부 부담해야 한다. 「민법」제623조에서는 임차인이 그 사용·수익에 필요한 생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가 임대인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소유자에게 청구하면 된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세입자에게 선보수를 요청할 수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세입자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향후 세입자가 소유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수분쟁 해결, 가해세대의 입장
피해세대에서 요구하는 과도한 피해보상은 가해세대의 입장에서 고민이다. 「민법」제393조에서는 통상의 손해를 손해배상 범위의 한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과도한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 통상의 손해는 인과관계가 있는 누수로 인해 발생하는 부식이나 그 밖의 문제에 대한 손해만을 의미한다. 견적금액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피해세대가 원하는 공사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낫지만, 견적금액의 차이가 과할 경우 이에 응할 의무는 없다. 당사자 간의 견적금액이 다를 경우, 법원은 전문가를 통해 산정한 감정가격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원만한 피해보상을 위한, 보험특약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고로 입히게 될 타인의 피해를 담보하기 위해 가입하는 실손보험이 있는데, 바로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일배책)이다. 일배책은 보통 다른 보험상품(화재·실비·운전자 등)의 특약사항으로 저렴하게 가입되며, 한도는 1억원 이하이다. 일배책은 타인의 피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보험가입자(가해자)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청구가 불가하다.
하지만 보험가입자(가해자)가 청구할 수 담보도 있을 수 있는데, 바로 일배책 특약에서 보장하는 손해방지비용이다. 손해방지비용은 사고 발생시 추가적인 손해를 막기 위해 지출되는 비용으로, 사고로 인한 손해와 보험사의 배상책임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누수사고에서 아랫집의 피해를 차단·확산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윗집배관을 수리하는 비용은 손해방지비용에 해당될 수 있다. 보통 손해방지비용 범위는 누수검침·철거·교체까지만 지급하고, 복구에 관한 부분은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과거 일부 수리업체들이 공사비를 과다청구하는 사례가 많았고, 이로 인해 보험사 손해율이 높아졌다. 최근에는 손해를 방지하려는 노력범위를 벗어나는 손해방지비용은 까다롭게 보는 경향이 있다.
누수로 인해 보험가입자(가해자)가 보상받을 수 있는 담보로는 급배수시설누출손해특약이 있는데, 이는 일배책과 달리 아랫집(피해자)가 아닌 윗집(가해자)의 피해를 보상한다. 동파·수조·급배수설비·수관의 누수로 인해 가재도구 건물에 발생한 손해를 보상범위에 속한다.
살다보면 이웃과의 분쟁없는 시간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로 인한 마찰·갈등은 그 해결과정에서 큰 파문을 남기게 된다. 하자없는 주거환경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된다. 사건사고를 겪지 못한 사람은 보험의 필요성을 알기가 쉽지 않은데, 이는 책·미디어와 같은 간접경험으로는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하자가 없을 수는 없으며, 문제가 생겼을 때 슬기롭게 풀어나갈 줄 아는 것이 삶(인생)이다.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원만한 대화기술은 기본이고, 불가피하게 소송에 돌입할 수 있는 지식·자세·용기도 필요하다. 나의 일상에 던져진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한 보람은 그 어느 삶의 가치보다 소중하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문제가 발생했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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