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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이 쉽지 않은 보양식, 장어

by Spacewizard 2024.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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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허약한 자식의 몸을 보양하기 위해, 어머니는 다양한 음식들을 구해왔다. 그 중 역겨운 냄새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토끼·장어이다. 시골에 사는 막내 외삼촌에게 부탁하여 구한 토끼 한 마리가 솥에서 고아진 후의 잔해를 본 어린 나는 기겁을 했었다. 물론 맛과 노린내도 최악이었다. 아무런 양념·향신료를 첨가하지 않은 장어탕도 그 맛과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일단 입으로부터 10센티 가량 다가오면, 바로 구역질이 바로 나온다. 회유책으로 준비한 사탕도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인이 되기 전까지는 가족외식 메뉴는 주로 양념갈비였는데, 이는 자녀에 위한 부모의 배려였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횟집·장어구이를 더 자주 찾았었다. 이 때부터 먹기 시작한 붕장어 숯불구이는 정말 최애음식이 되었다. 최근 부천 상동에서 바다장어(붕장어) 숯불구이를 먹으면서 감동한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수도권에서는 처음 먹어보는 바다장어 구이였다. 고향에서 주로 먹던 붕장어처럼 실크처럼 부드럽고 통통한 맛을 낯선 곳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래서 찾아보니 많지는 않지만 서울에도 붕장어를 파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갯장어집은 서울에도 유명한 가게가 많다보니 샤브샤브·회로 자주 즐겼지만, 붕장어집 찾기는 쉽지 않았다. 10대 이후 장어를 태우면서 피어 오르는 구수한 연기를 잊을 수가 없는데, 참고로 민물장어 구이의 향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오늘은 장어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서울에서는 낯설지만 익숙한, 바다장어

 

바다장어는 자연산만 있지만, 민물장어(뱀장어)는 대부분 양식이다. 바다장어집은 산지에서 재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은 날에는 그 날 영업을 하지 않거나 일찍 문을 닫는 경우를 봤을 것이다. 민물장어(뱀장어)과는 달리, 바다장어에는 껍질에 점선이 있다. 바다장어는 아래와 같이 3가지가 있다

붕장어 : 아나고
먹장어 : 꼼장어
갯장어 : 하모

 

붕장어의 대표적인 산지는 부산 기장군 일광면 칠암마을로 알려져 있는데, 붕장어 숯불구이는 마산(어시장·구산면)을 비롯한 부산 일대에서 자주 찾을 수 있다. 「물다」라는 의미의 일본어 하무(はむ)에서 유래한 갯장어는 날카로운 이빨로 닥치는 대로 물어댄다. 갯장어의 산지로 전남 여수가 유명하지만, 최상품은 경남 고성 자란만에서 잡힌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갯장어하면 여수가 떠오르는데, 이는 즐겨찾는 테헤란로 포스코사거리 인근의 갯장어 샤브샤브 가게는 여수산을 사용하며, 여름 골프일정으로 몇번 들렸던 여수에서의 갯장어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눈이 퇴화한 장어」를 의미하는 먹장어는 부산 영도다리 아래를 중심으로 자갈치시장이 원조라고 한다. 먹장어는 꼼장어(곰장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껍질을 벗겨 내도 한참을 꼼지락거리는 모습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구이용은 붕장어, 샤브샤브용은 갯장어를 쓴다. 둘다 횟감으로 훌륭한데, 개인적으로는 꼬들꼬들한 아나고회를 선호한다. 가격 면에서는 갯장어가 가장 비싸다. 

 

민물장어의 대명사, 풍천

 

서울에 살면서 바뀐 식성 중의 하나가 민물고기인데, 바닷가에서 성장하다 보니 다음과 같은 인식을 가졌었다.

"민물고기는 먹을 것이 못된다"

 

하지만 경기도·강원도의 강들 근처에서 여러 민물고기(쏘가리·빠가사리·송어 등)를 먹다보니, 나름 민물고기 만의 매력이 있었다. 요즘 보면 도시 내 도처에 민물장어집이 즐비하다. 대표적인 상호가 「풍천장어」인데, 처음에는 "풍천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길래 민물장어 출하량이 이렇게나 많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풍천장어는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강」에서 자라는 장어로, 풍천(風川)은 뱀장어가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부는 바람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오르기에 붙여진 단어이다. 즉 풍천은 지명을 의미한 것이 아닌, 강물·바닷물이 만나는 강하구를 의미한다. 적당한 염도로 장어의 맛이 좋으며, 담수교차와 갯벌의 영양은 장어의 서식지로 최적이다. 또한 바다에서 태어난 민물장어는 민물로 이동·성장한 후에 바다에서 산란하는 회귀성 어류로, 풍천의 짠물은 산란기의 장어가 적응하기에 수월한 환경이다. 하지만 복잡한 생애환경에서는 수요를 충족시키기가 현저히 부족하다 보니, 민물장어는 양식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풍수지리적으로 풍천은 2개의 하천(서→동, 남→북)이 만나는 지점을 의미한다. 풍수적 조건과 함께 강하구에 위치한 공간적 조건이 부합되어, 풍천으로 불렸던 곳은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 인근의 주진천·선운천 합류지점이다. 곰소만으로 흘러 나가는 주진천에서 바다·민물이 섞인 구간은 약 10km에 달한다고 한다. 1911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인천강의 명칭이 주진천으로 바뀌었는데, 주진(舟津)은 「배가 드나들었던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고창 풍천 [지도:카카오맵]

1760년(영조36년) 관에서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필사본은 전국 읍지(8주·296읍)에 관한 인문·사회·군사·지리 등의 자세한 현황을 종합수록하고 있는데, 이 지도에 인천강이 최초로 표시되어 있다. 강의 경치에 매료된 변성진이 큰 호리병처럼 튀어나와 바위 옆에 초당을 지은 후 자신의 형과 함께 지냈는데, 이 때 강이름에 자신의 호를 따서 인천(仁川, 어진 내)강이라 하였다고 한다. 변성진의 형도 호를 호암(壺巖, 호리병 바위)으로 하였다. 인천광역시도 같은 한자를 사용하지만, 원래는 고려시대 인종이 외가가 있던 이 곳을 인주(仁州, 인종의 고을)로 승격시켰었다. 하지만 조선 태종시대 격하되면서 점을 3개를 뺀 인천이 되었다.

 

민물장어집에서 익숙한, 자포니카

 

국내에서 식용으로 이용되는 민물장어는 아래의 5가지이다.

 

자포니카(Anguilla japonica) : 국산·동남아시아산

비콜라(Anguilla bicolor) : 필리판산·인도네시아산

말모라타(Anguilla marmorata, 무태장어) : 동남아시아산

유럽장어(Anguilla anguilla, 은장어) : 유럽산

북미장어(Anguilla rostrata) : 북미산

 

자포니카·비콜라·말모라타가 가장 많이 유통된다. 가장 비싸고 맛있는 품종은 자포니카이며, 비콜라는 자포니카의 대용으로 많이 쓰인다. 자포니카는 마리아나 해구(Mariana trench) 근처의 심해에서 올라와서, 일본·한국·중국의 하천으로 거슬러 올라온다. 이전 글 <압력과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 심해>에서는 평균 해양깊이는 약 3,800m이며,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는 약 11,000m 이상이라고 언급했었다. 자포니카는 중국산도 많은 편이며, 중국산 치어를 국내에서 6개월 이상 성장시킨 후에 국내산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자포니카는 밝은 배와 뾰족한 삼각형의 코가 특징인데, 어두운 배와 뭉툭한 코를 가진 비콜라와 명확히 구분이 가능하다.

 

외국산 민물장어는 뭘 먹여서 키웠는지를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는데, 특히 중국산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민물장어 양식과정에서 항생제를 먹인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18년 12월 민물장어 양식장에서 니트로푸란(Nitrofurans)이 검출되기도 했는데, 1995년까지 니트로푸란계 항생제는 가축·어류의 위장관 감염의 예방·치료를 위하여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니트로푸란계 항생제는 동물실험에서 발암성·생식독성 등의 위험성이 발견되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는 사용이 규제되었다.

 

민물장어를 인공적으로 부화하는 기술은 아직 개발단계에 있기 때문에, 강하구에서 실치를 채집하여 양식장에서 길게는 3년까지 키운다. 성체는 마리당 300g 가량 성장하며, 1kg 저울에 보통 3~4마리(대형 2마리)가 올라간다. 민물장어의 수율이 70~80%인 점을 감안하면, 1kg의 장어는 손질 후의 순살무게가 700~800g 가량이 나와야 한다. 요즘은 민물장어집들은 손질된 순살을 랩포장한 상태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2마리 700g을 가장 많이 추천한다.

 

대표적인 일본 보양식, 민물장어

 

일본에서는 바다장어와 민물장어의 단어 자체가 다른데, 흔히 알고 있는 우나기(うなぎ, 鰻)는 민물장어이다.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여름보양식인 우나기는 1700년대 후반부터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을·겨울이 제철인 우나기를 여름에 즐겨 먹기 시작한 배경에는 한 가게의 광고카피가 있다고 한다. 에도시대 후반의 어느 여름, 민물장어집 주인은 다음의 문구를 가게 앞에 붙였다.

"금일, 토왕의 소날(本日,土用の丑の日)"
(혼지쓰, 도요노 우시노히)

 

토왕(土旺, 땅기운이 왕성한)을 의미하는 도요(土用)는 절기가 바뀌는 날(입춘·입하·입추·입동) 직전의 18일을 말한다. 우시노히(丑の日)는 12지신으로 표시하던 날 중의 하나이다. 토왕의 소날은 4계절마다 있지만, 오늘날에는 여름을 연상하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 "우시노히(丑の日)의 '우'자로 시작하는 우나기(민물장어)를 먹으면 여름 타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는데, 축(丑, 소)은 일본어로 '우'로 발음된다. 이후 여름철 민물장어집은 성황을 이뤘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여름철 풍습이 되었다. 물론 여기서 '우'자로 시작하는 음식은 우나기 외에도 우동·우메보시(매실을 소금에 절인 것) 등도 있다. 장어 조리법은 관동(도쿄 중심)과 관서(오사카 중심)이 다른데, 장어를 가를 때 각각 등(관동)·배(관서)를 가른다고 한다. 배를 가르는 행위에 대해 무사문화가 강한 관동은 꺼렸던 반면, 상인문화가 발달한 관서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속(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을 선호했기에, 배를 가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향집에서 일년에 한두번 직접 손질한 바다장어(붕장어)를 택배로 보내주시는데, 일주일 가량은 장어국과 장어구이를 실컷 먹는다. 사실 장어를 팬에 굽기만 하는 입장에서는, 장어요리가 크게 어렵지 않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일본의 격언을 보면서, 구매·손질·포장하는 어머니의 정성이 장어요리의 전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꼬치 끼우기 3년,
손질법을 익히는데 8년,
굽는데 평생"

 

서울에서 자유로 끝까지 가면, 장어로 유명한 곳이 나온다. 일명 반구정 장어마을이다. 원래 임진강변에서는 장어 외에도 황복이 많이 잡히기로 유명했는데, 오래 전 마포에도 황복이 많이 잡혔다고 한다. 관직엥서 물러난 86세의 황희는 파주 임진강변에 누정(樓亭)을 세워 낙하정(洛河亭)이라 하였고, 이 곳에서 강물 위 갈매기를 벗 삼아 시를 읊으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과거 낙하정 근처에 낙하진이 있었다. 황희가 죽은 후에는 없어졌다가, 400여년 후에 후손이 다시 세워 「갈매기를 벗삼아 즐기는 곳」이라는 의미의 반구정(伴鷗亭)이라 이름 지었다. 1915년 반구정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원래의 자리에 황희의 유덕을 기리는 육각정을 세워 앙지대(仰止臺)라 하였다. 양지대 상량문에는 황희를 추앙하는 문구들이 쓰여져 있다.

 

이전 글 <뒤늦게 만들어진 배신의 아이콘, 신숙주>에서는 남은 여생을 유유자적하기 위해 한강변에 압구정을 지었다고 언급했었는데, 이 이름에도 갈매기가 등장한다. 전근대에는 강가에서 갈매기와 노니는 것이 화려한 노년의 상징이었나 보다. 하지만 이전 글 <머리와 처세로 출세한 얼자, 하륜>에서는 황희가 수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명재상으로 이름을 남겼으며, 뛰어난 행정력 못지 않게 세속적인 물욕도 큰 인물이라고 언급했었다. 후세들의 후한 평가(심지어 청렴)로 보아, 시대를 뛰어 넘는 황희의 처세술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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