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도시

고대관습이 정한 생일날, 크리스마스

by Spacewizard 2024. 12. 25.
728x90

[Music] 거리 위의 첫눈

https://www.youtube.com/watch?v=KUngWUA2kj4

First Snow on the Street_거리 위의 첫눈

어렸을 적에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전날(이브)이 더 설레였던 기억이 있었는데, 역사적으로도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이 크리스마스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하루 단위를 전날의 일몰에서부터 다음 날 일몰까지로 여겼는데, 즉 전날의 저녁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크리스마스(chrismas, 그리스도의 미사)는 크라이스트·매스가 합쳐진 단어이다. 크라이스트(christ)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메시아」를 번역한 고대 그리스어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의 영어식 표현이다. 참고로 그리스도의 한자음역이 기리사독(기독)이다. 매스(mass)는 라틴어 미사(missa, 파견)에서 유래되었다. 크리스마스의 약식표기인 X-mas에서의 X는 알파펫이 아닌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를 줄인 것이다.

 

예수의 탄생에 대하여는 신약성서 「마태오의 복음서(Gospel of Matthew)」나 「루가의 복음서(Gospel of Luke)」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그 날짜에 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3세기 들어 예수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을 치르기 시작할 때에도, 고정된 날짜 없이 3개 일자(1월 6일, 3월 21일, 12월 25일) 중에서 하루가 선택했다고 한다. 성탄절이 12월 25일로 자리잡은 배경에서는 여러 설들이 있는데, 태양숭배사상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부터 동지 이후에는 축제를 개최했다. 336년 서방교회(로마교회) 대주교 율리우스1세가 성탄절을 12월 25일로 공식선포하면서 크리스마스가 시작되었다. 379년 동방교회(그리스교회)가 서방교회의 성탄관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켈트가 모셨던, 셀틱

 

켈트족이 신앙대상으로 삼던 신목이 훗날 크리스마스 트리로 변모했다는 설이 있는데, 샤머니즘에서 「하늘의 신이 내려오는 나무」를 의미하는 신목(神木, celtic)은 한반도에서는 당목(堂木)으로도 불렀다. 켈트(셀틱)족은 심장이 아닌 머리에 영혼이 담겨 있다고 믿었으며, 당시 야만의 시대에는 자랑스러운 풍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트리를 장식하는 마블(Marble)도 전쟁포로의 머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베어진 머리를 나무에 걸어 장식했다가 동지(12월 22일)에 불태웠다고 한다.

 

동지로부터 3일 동안 해가 뜨지 않았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동지날에 태양이 죽었다고 생각하였다. 동토지역에서 그나마 온기를 안겨주는 태양이 소멸했다는 사실은 고대인들에게는 당황·두려움 그 자체였을 것이며, 이러한 심리적 위축을 해결하기 위해 영적인 해결방법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인들은 태양을 여자와 동일시했는데, 모두 만물·사람을 낳고 기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죽은 태양을 되살리기 위해 직관적으로 떠올린 방안이 여자(특히 미인)를 인신공양(人身供養)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고대 시베리아 샤먼부족은 동지날에 신에게 인신공양을 행했는데, 참고로 고대에는 지구상 모든 집단·종교에서 인신공양이 존재했다고 한다. 신목 꼭대기에 처녀를 묶어두고 주위에 모닥불을 피웠는데, 이렇게 불에 탄 여자가 하늘로 올라가 태양이 부활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전쟁을 치른 해에는 전쟁포로의 목을 신목에 매달아 두었다가 불에 태웠는데, 순장(殉葬)이 태양의 부활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자연의 섭리로 3일 뒤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고대인들은 인신공양의 효과라고 믿었다. 이전 글 <현대종교 뒤에서 여전히 숭배되는, 태양신>에서는 12월 자연현상에서 시작된 시베리아 태양신에 대해 언급했었다.

 

영적진화가 가져 온, 미니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진리인 마냥 여기며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천년 동안 인신공양이라는 형식으로 내려온 고대의 영적의식은 엄청난 수의 인명피해를 가져 왔는데, 인간의 영적진화가 인신을 대체공물(동물 등)로 대신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영적진화는 통챨력 넘치는 제안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어느 날 관찰력이 좋았던 한 아웃사이더가 공물과 무관하게 3일 뒤에 태양이 떠오른다는 과학적 사실을 눈치챘던 것이다.

 

그럼에도 자연을 두려워했던 고대인 기득권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공물의 변화를 실행하는데 주저했을 것이다. 이렇듯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상상력이 풍부해지면서, 영적진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거대한 신목과 처녀는 아담한 나무와 북극성 모양으로 미니화(대체)되었으며, 작은 트리가 북극성에 다다르는 은하수가 된 것이다. 결국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골동네에 서 있는 당목이 오늘날 크리스마스 트리의 원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대종교들은 12월 25일을 중요시했는데, 이는 천문현상에 의미가 부여하던 것이 우상화를 거치면서 종교가 된 것이다. 고대 모계사회에서는 태양(여성성)은 이클립스를 통해 작은 금성을 낳았고, 금성이 태어난 시점을 새해라고 여겼다. 이클립스는 월식(lunar eclipse)과 월식(solar eclipse)이 있는데, 고대인은 태양·달이 겹치는 이클립스를 성관계로 받아 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태양으로 성장한 금성은 1년 동안 살다가 동지(12월 22일)에 죽고, 새해(12월 25일)에 부활한다고 생각했다.

728x90

크리스마스를 악습으로 바라본, 종교개혁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개신교도)는 16세기 초 로마카톨릭교회 내부의 부패·타락을 고발하는 교회개혁에서 시작된 종파로, 「항의서를 제출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라틴어 프로테스타티오(protestatio)에서 유래했다. 라틴어 프로테스타리(protestari)는 「항거·입증하다」를 의미하는데, 사실 주장을 공적으로 입증·선포하는 일에 항거는 부수적으로 따르게 마련이다. 1529년 스페예(speyer) 국회에서 소수의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이 다수의 결정에 반대·항거한 것에서 시작하여, 이후 로마가톨릭에 맞서는 종교개혁 진영을 통칭하게 되었다.

 

16세기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에서 기원한 성공회(聖公會, 거룩한 공회)는 양극단(로마카톨릭·프로테스탄티즘)을 지양하는 중용을 표방하였고, 「개혁하는 보편교회(Reforming Catholic Church)」를 표방했다. 성공회는 지금까지 영국의 국교회 지위를 이어오는 있으며, 감리회·침례회·장로회의 일부는 성공회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비국교파이다. 17세기 초 영국 전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크리스마스 풍습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청교도(淸敎徒, Puritans)는 영국 성공회 신도 중에서 순결(purity)과 복음(福音, 기쁜 소식) 중심주의를 추구하는 신앙심이 깊은 개신교도로, 그 기본정신은 다음과 같았다. 

 

성경중심(sola scriptura, 오직 성경)

금욕주의

반가톨릭

 

엘리자베스 여왕은 청교도의 깊은 신앙심을 「순진한(pure) 사람들」이라 비꼬면서 탄압햇으며, 결국 청교도는 영국에서의 종교탄압을 피해서 북아메리카로 이주했다. 1645년 올리버 크롬웰을 중심으로 한 청교도들이 영국의 모든 악습을 폐지할 것을 결의했는데, 그 악습의 정점에는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성경에는 예수탄생일이 12월 25일이라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1659년 미국 보스턴에 정착한 청교도는 크리스마스를 금지시키기 위해 벌급형을 도입했지만, 크리스마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19세기 들어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는 전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휴일이자 홈커밍데이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과거 영국의 크리스마스처럼 난잡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종교적이지도 않았다.

 

산타클로스의 모델, 성 니콜라스

 

4세기 동로마제국 소아시아(현 튀르키예)의 파타라(Patara)에 살던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 주교를 산타클로스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 성 니콜라스는 아이를 사랑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선행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선행스토리는 결혼지참금이 없어서 3명의 딸들을 결혼시키지 못한 가난한 사람을 도와준 얘기이다. 니콜라스 주교는 그 집 굴뚝을 통해 금주머니를 떨어트렸고, 그 금주머니는 벽난로에 걸어둔 양말 속으로 들어 갔다고 한다. 기근으로 죽은 아이들이 12월 24일 부활한다는 풍문이 퍼지면서, 성 니콜라스는 아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인식되었다.

 

그의 선행이 후대로 구전되면서, 12세기 프랑스 수녀들은 성 니콜라스의 축일(12월 6일) 전날에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자선행사를 확산시켰다. 이는 크리스마스 전날에 아이들에게 선물 주는 풍습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미국 뉴암스테르담(현 뉴욕)에 정착한 네덜란드인들이 성 니콜라스 축일에 맞춰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관습을 미국에 소개하면서 산타클로스가 알려지게 된다. 네덜란드인들은 라틴어 「상투스 니콜라우스(Santus Nicolaus)」를 「신터 클레스(Sinter Claes)」라고 불렀고, 영어식 발음으로 변하면서 「산타클로스」가 된 것이다.

 

19세기에야 만들어진, 산타클로스 이미지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도 19세기에 만들어졌으며, 산타클로스 외에도 순록썰매, 굴뚝, 양말주머니 등이 성탄절의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1809년 미국 소설가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의 저서 「A History of New York, by Diedrich Knickerbocker : 뉴욕에 정착한 네덜란드 후손들의 역사」에서는 산타클로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후덕한 체형에 유쾌한 웃음을 가졌으며, 테가 넓은 모자를 쓴 채로 긴 담뱃대를 물고 있다. 이 책은 디드리히 니커보커(Diedrich Knickerbocker)라는 가상인물이 뉴욕 초기 네덜란드 정착민들의 모습을 유머·풍자를 섞어 묘사하고 있다.

 

1823년 미국 문학가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Clement Clarke Moore)의 시 「A Visit from St. Nicholas : 성 니콜라스의 방문」은 「The Night Before Christmas : 크리스마스 전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산타클로스와 그의 순록썰매,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 밤의 따뜻한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으며, 미국 크리스마스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고전적인 시로 평가받는다. 1863년 미국 만화가 토머스 내스트(Thomas Nast)가 미국잡지 「Harper's Weekly : 하퍼스 위클리」를 통해 삽화 「Santa Claus in Camp : 야전에서의 산타클로스」를 게재했는데, 당시 미국 남북전쟁에서 산타클로스가 8마리의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북군들을 찾아다니며 선물을 나눠주고 응원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삽화는 산타클로스의 현대적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확립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토머스 내스트가 묘사한 산타클로스, 하퍼스 위클리 표지 1863년(좌) 1881년(우)

성 니콜라스의 옷은 오랫동안 자연적인 색상(녹색·갈색)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자연 풍요를 상진하는 중세유럽의 민속적 전통과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1860년대 내스트가 산타클로스의 옷을 녹색·갈색·노란색·빨간색으로 다양하게 묘사하기 시작했고, 점차 빨간색을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그러다가 1931년 코카콜라(Coca-Cola)가 겨울광고로 빨간색의 산타클로스를 부각시키면서 오늘날 산타클로스의 모습이 굳어지게 되었다. 당시 코카콜라는 일러스트레이터 헤든 선드블롬(Haddon Sundblom)에게 산타클로스의 이미지 제작을 의뢰했는데, 산타클로스의 빨간옷·흰수염은 각각 브랜드와 흰색 기포를 상징했다.

 

사라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 캐롤

 

프랑스어 캐롤(carole)중세 프랑스에서 원을 만들어 춤을 추었던 원무를 의미하는데, 이는 이교도의 동지축제에서 사용되던 무곡이었다. 본래 교회절기에 부르는 모든 노래를 캐롤이라 부르지만, 특별히 크리스마스 노래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들어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새벽에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캐롤링(Carolling, 집집마다 방문하여 캐롤을 불러주기) 관습이 있었다.

 

1980~90년대 크리스마스는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캐롤이 그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 어머니가 사주신 「똑순이(김민희) 캐롤」을 겨울마다 들으면서 산타클로스를 기다렸었는데, 성탄절 아침이면 커다란 양말 안에 과자와 초콜렛이 담겨 있었다. 어릴 적 소중한 추억들이 어른이 된 나에게 주는 교훈이 있는데, 바로 어른의 작은 행동들이 아이들에게는 큰 영향력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나의 아이들도 작고 소중한 추억들이 가득한 인격체로 자라길 바란다. 오늘날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급속히 퇴색되어 가는 이유 중 하나로 캐롤의 실종을 꼽을 수 있으며, 여러 성문법적 문제(저작권·소음·에너지 등)가 천년 넘게 이어오는 전통을 단번에 관습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이 실로 대단하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