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은 오랜 세월 특정된 지역을 기반으로 생활을 영위해 온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다보니 조합원 간의 공감대가 크게 형성되어 있는 반면, 지역주택조합은 업무대행사가 제3의 지역에 대한 기획과 더불어 초기 지주작업을 진행하는 등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이후에서야 조합원들을 모집하는 형태라서 조합원들이 사업부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부족한 편이다. 이전 글 <수업료 비싼 내집마련, 지역주택조합>에서는 지역주택조합의 개괄적인 내용을 언급했었는데, 오늘은 업무대행사의 역할과 함께, 업무대행비의 성격 및 문제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망한 사업에서 아직은 채권보전이 묘연한, 조합의 채권자
지역주택조합은 법적 성격이 '민법상 조합'이 아닌 '비법인사단'으로, 권리능력는 없지만 채무부담은 가능한다. 일반적인 사업흐름에서 조합의 채권자로는 금융기관과 업무대행사를 포함한 용역회사들이 있는데, 이들 채권자는 조합을 상대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조합원들에게 조합에 대한 채권을 청구할 수는 없었다. 1998년도 대법원 판례에서는 "조합원 총회 등에서 조합의 자산과 부채를 정산하여 그 채무초과분을 조합원들에게 분담시키는 결의를 하지 않는 한, 조합원이 지역주택조합의 채권자에게 직접 채무를 부담하지는 않는다"는 판결을 하였다. 조합의 자산과 부채를 정산하는 결의는 대부분 조합의 해산총회에서 이뤄지는데,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경우라면 조합원들이 분담금을 우려하여 해산총회를 결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 조합의 채권자가 채권을 변제받기 어려운 이유이다. 개발사업에 대한 이해가 빠른 조합원들 중 일부는 조합에 가입한 것을 후회하거나 사업성이 없음을 직감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조합원들이 조합과 절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조합원 지위를 박탈하는 「지역주택조합 탈퇴 소송」을 통해 조합을 탈퇴하는 것이다. 물론 동시에 납입금을 돌려받기 위한 「납입금 반환 청구 소송」까지 함께 진행한다.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업무대행사
지역주택조합 사업에 있어서 사업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조합이므로, 지역주택조합이 사업 관련된 업무들을 처리할 자원과 초기자금을 조달할 역량이 있다면 업무대행사를 두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부분의 추진위원회와 지역주택조합은 업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없을 뿐더러 초기비용 조달 역량도 없기 때문에, 업무대행사를 통해 업무처리 및 초기자금을 확보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혹여나 조합 내부에 역량을 갖춘 개인과 자원이 있다고 한들, 개인의 이익이 아닌 특정 다수(조합)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횡령과 배임의 이슈는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며, 같은 비위를 저질러도 외부인(업무대행사)가 아닌 내부인(조합장)이 연루되었다면 조합원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더 클 것이다.
펀드구도와 비교해 보자. 언뜻 보면 업무대행사는 투자와 관련한 발굴과 펀드 운용의 전반을 맡는 주체로서 무한책임조합원 GP(General Partner)이고, 조합·조합원은 펀드에 출자하는 투자자인 유한책임조합원 LP(Limited Partner)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업무대행사는 무한책임은 커녕 용역을 수행하는 업체에 불과하고 사업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지역주택조합(구체적으로 조합원)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펀드구도와는 비교 불가이다. 지역주택조합이 파산한다고 가정했을 때, 조합원은 지역주택조합이 지닌 채무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할 수도 있다.
일부 업무대행사가 만들어 놓은, 오명
추진위원회 단계에서는 업무대행사가 존재하지 않는 조합을 대신하여 초기 사업비와 위원장의 인건비 등을 지급하고, 이후 설립된 조합이 업무대행사의 기지출 비용을 별도로 정산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정리된 기지출된 비용항목들을 과대계상할 수도 있다. 계약상 업무추진비의 지급 시기·비율도 주목해야 할 부분인데, 조합설립인가-사업계획승인-착공-사용승인-조합청산총회 각 진행단계 별로 지급비율이 일정한 조건이 적절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많은 업무대행사들은 사업리스크가 큰 점을 우려한 나머지, 초기단계(특히 착공 전)에서의 지급비율을 높이려는 경향이 있다. 토지매입 과정에서 이탈한 일명 '먹튀 업무대행사'의 조건을 보면 대부분 착공 전까지의 지급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초 업무대행사의 장미빛 조건 제시도 경계해야 한다. 최초의 업무대행사가 과대 계획한 부지면적을 바탕으로 추진위·조합에 호의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초기 조합원들이 발목 잡히는 경우인데, 이후 현실적인 토지매입의 한계로 확보 가능한 토지면적과 사업면적이 축소되면서 종국에는 조합원의 추가분담금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갑작스런 기대수익의 감소는 추진위·조합을 난감하게 만들면서, 후속 업무대행사가 오히려 공격적인 계약조건을 제시할 수 있게끔 하는 토양을 마련해준다.
업무대행비의 법적 성격, 위임계약
조합과 업무대행사 간의 업무대행계약의 법적 성격은 용역보수인 업무대행비의 지급의무가 언제 발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민법 제664조」에서 '도급'은 당사자 일방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효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임에 반해, 「민법 제680조」에서 '위임'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하여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 성립되는 계약이다. 도급과 위임은 그 본질적 특성이 다른데, 도급은 일의 완성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하는 계약이므로 일이 완성되지 못하거나 지연되거나 문제가 생긴 경우 도급인은 수급인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므로 위험부담을 전적으로 수급인이 지게 된다. 반면에 위임은 일의 완성이 아니라 사무처리를 위탁하고 그 일의 진척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는 계약이므로 비록 일이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일이 진척된 만큼의 노무제공에 대해서는 위임인이 보수를 지급해야 하므로 일의 결과에 대한 위험부담을 위임인이 지게 된다. 가장 흔한 도급계약의 성격을 가지는 것은 건설업(건설도급계약)이 있고, 물량으로 측정이 가능한 제조업도 이에 해당된다. 그 외 물량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서비스업에서의 용역은 대체로 위임계약의 성격을 가진다.
2014년 대법원은 "업무추진비는 지역주택조합 가입 알선의 대가로 교부받는 금원이라기 보다는 조합업무의 대행이라는 위임사무처리에 대한 보수로서 교부받는 금원이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주택법 제97조 7호」 '지역주택조합 가입 알선의 대가'를 위반한 행위가 아닌, 조합과 업무대행사 사이의 적법한 위임계약으로 보아 업무추진비를 인정한 것이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돈의 흐름, 조합원 납입금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자금관리를 하는 신탁사는 통상 2개의 계좌(분담금 계좌, 업무추진비 계좌)를 개설하게 된다. 통상 분담금은 조합원들이 사업 준공 후 취득하게 될 주택의 소유권 이전을 위해 납부하는 대금으로, 토지 매입비용 및 건축비 등 사업 자체에 사용되는 금전을 의미한다. 실무에서는 업무추진비와 업무대행비가 혼동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업무추진비는 추진위·조합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넓은 범위의 행정적 비용을 의미하고, 업무추진비의 한 항목으로써 업무대행비는 추진위·조합의 업무 대행 및 지원을 위해 고용된 업무대행사가 수행하는 대가로 받는 보수라고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조합을 탈퇴하는 경우에도 업무추진비는 반환을 받지 못하는데, 이는 업무추진비가 사업비로 사용된 분담금과는 달리 소모성 경비 명목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조합 설립 전에는 주택법이 아닌 조합가입계약서가 적용되는 바, 업무추진비 반환이 불가하다는 조항이 있다면 이를 부정하기 쉽지가 않다.
분담금 계좌(사업비 용도) : 토지비, 설계비, 인허가비용, 공사비, 금융비용 등
업무추진비 계좌(행정비 용도) : 업무대행비(PM·컨설팅), 조합운영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담금 계좌에 입금된 금원을 그 용처에 따라 개별분담금과 공동부담금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공동부담금에 해당하는 금원은 탈퇴한 조합원이 환불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 통상적인 지역주택조합 규약에서의 환불금액 상당액은 조합원이 납부한 총금액에서 ①업무추진비와 ②공동부담금을 제한 금액이 된다. 조합들이 규약 및 조합원가입계약에 공동부담금의 범위를 애매하게 명시하거나 아예 공동부담금에 대한 명시규정이 없다면, 공동부담금에 대한 분쟁은 따라 다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판례는 개별분담금으로 명확하게 분류될 여지가 있는 향후의 주택가치에 포함되는 비용(토지비 포함)은 공동부담금에 포함하지 않고, 조합원 모집과 분양을 위한 인건비·광고비와 부동산 취득세 등은 공동부담금으로 인정하고 있다.
조합이 분별하기에는 애매한, 업무대행비 용도
업무대행비는 용역보수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업무대행계약에서 업무대행비의 용도가 별도로 특정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특정된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업무대행비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불법영득의 의사를 실현한 것으로 보아 횡령죄가 성립될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법리를 꿰뚫고 있는 업무대행사들은 업무대행계약에서 업무대행비의 특정 용도들을 누락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주택법 11조의2 제2항」에 명시된 업무대행사의 5가지 업무(대행업무 및 지원업무)에 근거하여, 이와 관련된 업무들을 업무대행사의 업무대행비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법문상으로 '대행'은 조합을 대신하여 업무를 책임있게 처리해야 한다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서, 책임 없이 단순히 업무처리를 '지원'하는 것과는 명확히 구분될 수 있다.
업무 1) 조합설립을 위한 업무의 대행 (조합원 모집, 토지 확보, 조합설립인가 신청 등)
업무 2) 사업성 검토 및 사업계획서 작성업무의 대행
업무 3) 설계자 및 시공자 선정에 관한 업무의 지원
업무 4) 사업계획승인을 위한 업무의 대행 (사업계획승인 신청 등)
업무 5) 그 밖에 총회의 운영업무 지원
위 업무에 따라 업무대행사의 업무와 관련한 지출 항목을 나열해 보면,
지출항목 1) 조합원 모집 비용 (홍보관 건축비·운영비, 광고비, 모집수수료 등 용역비)
지출항목 2) 토지확보 비용 (브릿지대출 수수료·이자, 지주작업비 등 용역비)
지출항목 3) 조합설립인가나 사업계획승인을 위한 인건비 등 용역비
지출항목 4) 사업성 검토 및 사업계획서 작성을 위한 인건비 등 용역비
지출항목 5) 설계자 시공사 선정, 총회 등 지원 비용
위 모든 지출항목을 업무대행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뿐더러, 사실 조합의 역할과 업무대행사의 역할 사이에서 상당히 애매한 지출항목도 많아 보인다. 그래서 지금까지 업무대행사들은 해당 지출항목을 최대한 줄이면서, 이러한 지출들을 조합이 별도로 부담하게 했을 수도 있다. 실제 2021년 3월 제주시가 지역주택조합 자금운용 실태 점검을 실시한 결과, 업무대행사들은 계약서에 명시된 업무대행비와 별도로 조합원 모집 대행수수료를 책정하였고, 제주시는 주택법상 조합원 모집이 업무대행사의 역할임에도 별도의 수수료 수취가 위법이 되는지를 검토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보면 일부 지자체들은 주택법상 업무대행사의 역할에 대해서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성공률을 10%가 채 안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많은 수의 조합원들이 업무대행사의 권유를 덥썩 믿고 투자하였다가 큰 낭패를 본다는 의미이다. 조합원을 모집하는 역할을 맡은 업무대행사는 사업의 성패와는 무관한 용역업체에 불과하다. 최근 들어 많은 업무대행사들이 필요자본의 상당 부분을 직접 투자하거나 외부 조달하는 등 조합과 한 배를 타면서 사업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가는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재무부담을 느끼는 업무대행사, 그 업무대행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조합원들, 나아가 침체된 분양시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업진행이 지지부진한 지역주택조합 사업장들은 협동조합형 민간건설임대주택 구도로 전환되어 가는 추세이다. 이전 글 <금리와 인플레에 무너진 다리, 브릿지론>과 <내려 놓을테니 살려만 줘, PFV>에서 언급했듯이 개발금융시장의 경색으로 인해 공급 가능한 개발구도 찾기가 마땅치 않은 지금, 지역주택조합이 주택시장에서 대안의 공급처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계속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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