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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금융투자

점점 현실화되는 위험의 전염, PF

by Spacewizard 2023.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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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무상태가 한계에 다다른 중소형 시공사들로 인해, 부동산신탁사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몇 년 간 신탁사는 책임준공의무를 부담하는 책임준공형관리형토지신탁(책준관토)을 대거 수주하였는데, 본PF에 도급순위가 낮은 시공사를 포함시키는 과정에서, 대주단이 신탁사에 추가적인 신용보강인 책임준공확약을 요구했던 것이다. 원자재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발생한 추가공사와 공사비 유보금(통상 10% 내외, PF한도 미포함)을 포함한 준공필수비용을 조달하지 못한 시공사들로 인해 준공지연(공사 지연·중단, 사용승인 미접수 등)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준공을 위한 자금부족분을 시행사·시공사 대신하여 신탁사가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는 우발부채위험이 현실화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건설경기가 드라마틱하게 회복하지 않는 한, 신탁사의 자산건전성이 나아지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는 현재 PF시장에서 시장참여자들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재앙의 근원, 원자재가격 상승

 

2022년 말부터 상당수의 책준관토 사업장에서 공사가 지연·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책준관토가 추가적인 본PF 신용보강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신용·시공실적·재무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부실한 중소시공사들도 PF-풀(pool)에 들어왔다. 2022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원자재가격(철근·시멘트·레미콘 등)의 상승은 사업수지를 악화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번 건축원가(원자재가격·인건비)의 급등은 사업이익을 파괴적으로 녹이면서 왠만한 개발사업을 적자로 만들었다. 물론 이미 원자재가격이 오른 시점인 2023년 상반기에 체결된 공사도급계약은 그 상승분을 반영하면서 시공사의 재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공사원가 상승분을 분양가(매출)에 반영할 수 없는 시행사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익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분양가의 상승이 없다면, 공급부족이 뒤따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신탁사의 시간, 시공사 교체 + 자금보충

 

책준관토에서는 시공사의 책임준공기한(책준기한) 외에 신탁사의 책준기한도 추가적으로 설정되는데, 보통 시공사의 책준기한으로부터 1~6개월로 책정된다. 시공사가 부도날 경우에는 대주단에게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신탁사가 대체시공사를 선정하여 공사를 계속해야 한다. 신탁사가 주어진 책준기한 내에 사용승인을 득하지 못하면, PF대주단에게 손해배상을 부담해야하는 우발채무가 발생한다. 참고로 최근의 대출약정서에는 시공사가 책임준공의무를 미이행하는 경우, 시공사가 시행사의 채무를 중첩적으로 인수해야 하는 조건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채무인수를 부담해야 하는 시공사가 손해배상을 부담하는 신탁사에 비해 큰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사실 PF사업에서 대주단의 손해금액을 확정짓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 제3자(법원)의 개입이 필요할 수도 있다.

 

현재 대주단에 대한 손해배상과 투입한 고유계정 미회수라는 2가지 위험에 봉착한 신탁사는 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 바로 신속한 시공사의 교체이다. 하지만 부동산경기 침체기에는 부도·타절된 시공사를 대신할 만한 대체시공사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대체시공사를 섭외했다 하여도, 최근의 원자재가 상승을 반영한 대체공사비는 20~30% 늘어난 상태이고, 공사기간도 늘어난 만큼 금융비용도 증가하였다. 이러한 사업비의 급증은 PF사업장을 한 순간에 수익성이 없는 현장으로 만들면서, 시행사·시공사가 가지고 있는 사업의지를 꺾을지도 모른다. 결국 추가자금 보충을 시공사와 신탁사 순으로 부담해야 하는데, 시공사가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결국은 신탁사가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신탁사의 계정대는 PF보다 후순위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로 신탁사 계정대는 추가수수료가 발생하고, 은행대출보다 이자가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아직 사업이익의 여유분이 있는 상황이라면 시행사·시공사는 신탁사의 투입자금 규모를 최소화하는 것이 유리하다.

 

20년 만에 찾아온 신탁사의 위기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2개의 부동산신탁사가 공기업 형태로 차입형토지신탁(차입형) 영업을 영위하였다. 바로 한국부동산신탁(한부신)과 대한부동산신탁(대부신)이다. 이 두 신탁사는 차입형을 진행하면서 늘려나간 과다한 차입금이 부메랑이 되어 워크아웃를 거친 후, 모두 2001년 부도 처리되었다. 부동산개발사업은 많은 이해관계인이 얽혀 있기 때문에, 그 중심에 있는 신탁사의 부실로 인한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다. 신탁구도의 이해관계자들로는 위탁자, 시공사, 하도급업체, 수분양자, 금융기관(브릿지론, 본PF, 중도금, 유동화 등)이 있을 수 있고, 신탁사업이 준공 내지 분양 실패로 망가지면 대규모 민원이 동반되게 된다. 여기서 하나 더 유념할 부분은 신탁사는 하나의 개발사업만 하는 것이 아니고, 수백 건의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업장의 위험이 신탁사를 매개로 다른 개발사업장과 더 나아가 부동산시장으로 전염(contagion)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후순위 투자자들의 수난시대, 증권사

 

2023년 6월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의 2023년 1분기 신규 대손충당금 설정액은 2365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9% 증가하였다. 충당금은 대출채권이나 우발부채(보증) 부실에 따른 위험노출(exposure)에 대비해 손실이 예상되는 금액을 회계상 미리 비용에 반영하는 것으로, 부실의 우려가 커질수록 대비적 차원에서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PF 관련 익스포저는 자기자본과 신용공여액 규모와 비례한다. 하지만 최근들어 중소형 증권사가 대형사에 비해 부실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더 높은데, 이는 위험성이 높은 브릿지론과 중·후순위 대출에 많은 북(book)을 할애한 탓이다. 금리 상승, 분양가 하락, 공사비 인상 등 사업성 악화로 브릿지론이 본PF로 전환이 어려워지면서, 북 손실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전 글 <성과를 위해 필요하지만 과한, 성과급>에서 본PF의 신용보강이나 후순위 투자에 많은 북을 투입하여 유동성 리스크에 직면한 중소형 증권사들이 2022년 말 인력조정을 했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충당금의 감소를 긍정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이유는, 위험이슈가 현실화되기 전까지 충당금을 보수적으로 적립하는 경향과 이미 대손상각을 통한 손실처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부실기업의 마지막 희망, 기업회생

 

법원 주도의 구조조정인 기업회생(법정관리)는 민간(채권단) 주도의 자율협약이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보다 강도가 높다. 보통 기업회생은 대표이사가 법원에 신청하는데, 이는 대표이사가 마지막까지 책무를 다함으로써 본인의 경영책임을 경감하려는 의도와 더불어 2가지의 결론(파산·회생인가) 중에서 회생인가로 가게 해달라는 의지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법원은 신청회사가 제출한 보전처분·포괄금지명령 신청서 등을 검토한 후, 그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회생절차 전까지 채권은 동결되고 기존 채무에 대한 상환의무가 없어진다. 참고로 대부분의 구조조정은 채무자(기업·개인)를 살려보자는 취지로 이뤄지기 때문에 채권자에게 불리한 면이 많다.

 

2022년부터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시공사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대표이사가 아닌 노조가 임금채권에 기반하여 기업회생 신청한 곳도 있다. 회생개시 결정이 나면, 법원이 지정한 (법정)관리인만이 일방적인 선택권 가지게 된다. 시공사의 공사도급계약은 쌍무미이행 쌍무계약이라는 법적성격으로 인해 「채무자회생법」상 관리인의 판단(이행과 해제 중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실무에서 나도는 얘기로는 시공사의 자체사업인 경우에는 관리인이 이행을 선택하고, 단순 도급사업은 해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지금처럼 공사를 계속하여도 추가 공사비만 늘어나는 상황이라면, 관리인이 도급계약의 이행 대신에 해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하다. 다만 회생개시 결정 전에 시행사가 도급계약 해제권을 취득한 상태라면, 회생개시 결정 이후라도 도급계약 해제는 가능하다. 따라서 시행사나 신탁사 입장에서는 시공사의 부실징후가 보일 경우, 시공사가 기업회생을 신청하기에 앞서 계약상 해제요건을 완성시켜 놓을 필요도 있다.

 

금융시장 내 위험은 예측하거나 헤지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고, 경기가 하락·침체를 통과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경제주체에게 전염되곤 한다. 2022년부터 시작된 건설경기 불황에서는 시행사, 시공사, 증권사, 심지어 신탁사에 이르기까지 리스크를 온전히 피해갈 수 있는 플레이어는 없어 보인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전 글 <금리와 인플레에 무너진 다리, 브릿지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난 PF위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선된 PF시장의 위험분산(risk diversification) 기전이 작동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과거 시공사가 전적으로 부담해야 했던 큰 부담을 금융기관(증권사와 신탁사)가 일부 공유한 것인데, 문제는 금융기관의 부실이라는 측면과 나약한 시공사의 허무한 녹다운이다. 이번 위기 이후 새롭게 선보일 PF구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2022~2023년에서와 같이 갑자기 등장한 블랙스완(black swan) 앞에서는 그 어떤 답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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