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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서울] 잠실과 함께 쓸모 있어진, 탄천

by Spacewizard 202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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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서울시는 2029년까지 잠실 일대 수변공간(한강·탄천)에 생태·여가문화공간 조성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탄천하류 동쪽의 잠실운동장 복합지구 개발계획(스포츠·문화·MICE)과 함께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탄천하류의 서쪽에는 현대차 부지(국제업무·MICE)와 영동대로 복환환승센터가 개발 중에 있기 때문에 탄천을 중심으로 한 동서의 개발시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서울시는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탄천하류의 미래는 현재의 모습과 비교하여 확연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미 현재의 탄천하류도 불과 몇 십년 전과 비교하면 너무 많이 변한 모습이다. 탄천의 변화가 수십년이 지나도록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은 그만큼 지리적·도시공학적인 가치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강북에 붙어 있었던, 잠실

 

원래 잠실은 강북(광진구 자양동) 아래에 붙은 육지였다가, 1520년(중종 15) 대홍수로 인해 신천강(광진교-뚝섬 구간의 새내)이 생기면서 하중도가 되었다. 하중도는 하도·하폭이 변하는 지점에 상류에서 내려온 퇴적물이 쌓여 유로변동으로 고립되어 형성된 하천 내부의 섬이다. 한강은 홍수가 발생할 때마다 유로를 변경하면서 자연제방이 침식되었는데, 과거의 한강은 홍수와 퇴적물들로 인해 수시로 모습이 변했을 것으로 보인다. 섬이 된 잠실도에는 아래의 3개의 마을이 있었다.

 

신천리 : 신천강에 면한 북쪽마을

잠실리 : 송파강에 면한 남쪽마을

부리도(부렴) : 서쪽마을

 

부리도(浮里島, 물 위에 뜬 마을)는 농경지와 오래된 뽕나무가 있었다. 1970년 이전까지 잠실은 홍수의 대명사였는데, 특히 을축년대홍수(1925년) 당시 잠실도 마을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래에 뒤덮였다고 한다. 하지만 한강폭을 거의 덮은 모래섬은 교통면에서는 이점이 있기도 했는데, 병자호란 당시 인조 일행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최단코스가 신천나루-송파나루(현 석촌호수)를 건너는 루트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중은 양잠을 장려하여 부리도에 뽕나무숲을 조성하고 동잠실을 설치했으며, 도성 서쪽 밖 연희궁(현 연세대학교)에는 서잠실을 두었다. 동잠실의 뽕나무숲이 홍수에 의해 자주 황폐화되자, 신잠실(현 잠원동)을 설치했다.

잠실의 변화
잠실의 변화

 

1971년 잠실도의 남쪽으로 흐르던 송파강을 매립하는 육속화는 잠실의 대전환을 가져왔는데, 가장 큰 변화는 홍수취약지역에서 주거(아파트)지역으로의 변모였다. 이전 글 <위기의 영수증을 받기 시작한, 조합원>에서 현재 송파구 잠실은 전국민이 금싸라기 땅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언급을 했었다. 또한 마치 배로 이동이나 한듯, 잠실을 단기에 강북생활권이 강남생활권으로 전환되었다. 잠실도는 육속화 전까지만 해도 다음과 같이 행정구역상 강북이었다.

 

조선시대 : 양주

1914년 : 고양

1949년 : 서울시 성동

 

잠실도를 원래의 자리였던 강북이 아닌 강남과 연결시킨 이유는 한강 연안의 홍수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 과거의 한강은 구리에서 크게 휘어져 내려오는 물길이 잠실도에 막혀서 범람수량이 증폭될 수 밖에 없어, 잠실도의 북동쪽 돌출부를 제거하여 직강화함으로써 물길을 뚫어줄 필요가 있었다. 이는 결국 신천강의 폭을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용인 골프장에서 발원한, 탄천

 

탄천은 용인시 법화산(기흥구 청덕동) 기슭에서 발원하여, 용인시(기흥구)-성남시(분당구·중원구)-서울시(송파구)를 거쳐 청담교에서 한강과 합류한다. 서울 근교에서 자주 찾는 88cc가 탄천의 발원지이다. 조그마한 실개천으로 시작한 탄천은 분당구 구미동에서 <동막천>과 합쳐지면서 강폭이 넓어지고, 대치동에서 <양재천>과 합류하면서 또 한번 강폭이 넓어진다. 광교산·바라산에서 발원한 동막천은 낙생저수지와 그 아래 동막골을 지나서 탄천과 합류하고, 관악산에서 발원한 양재천은 과천 막계천과 합류하여 강남구·서초구를 가로질러 탄천과 합류한다.

 

본래 양재천은 현재의 SETEC 부근에서 송파강과 직접 맞닿았었지만, 1970년대 개포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구불구불하던 곡류하천이 직강화면서 탄천의 지류가 되었다. 양재(良才, 쓸만한 인재가 모임)에서 유래한 양재천은 그 상류를 <공수천>이라 불렀고, 탄천과 만나는 하류갯벌은 학탄(鶴灘, 학여울, 여울에 학이 빈번히 남아듬)이라 하였다. 본래 탄천은 청담교에서 남쪽으로 약 3km 지점에 있는 현재의 대청역 부근에서 송파강과 합류했었다.

 

하지만 을축년대홍수로 인하여 신천강이 한강의 본류가 되면서 송파강의 수량이 크게 감소했는데, 하나의 홍수로도 뭍의 모습과 수로의 위상이 바뀔 수 있는 것이 하중도의 특징이었다. 잠실도 육속화 과정에서 송파강은 매립이 결정되었고, 이 때 탄천합류부·신천강합류부·석촌호수만 남겨 두었다. 이후 한강·탄천·양재천을 직강화하면서 현재와 같은 강류를 보였으니, 결국 잠실구간의 한강은 과거의 샛강에 불과했던 신천강인 것이다. 연장된 탄천 옆의 부리도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대회를 대비한 종합운동장이 건설되었다.

 

탄천에 베팅한, 정태수

 

탄천·양재천의 자연적 특성을 기회로 삼아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였는데, 1970년 이전까지 뻘밭이었던 탄천·개포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1974년부터 구로동·신림동에서 주택개발사업으로 성공한 정태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부지를 헐값에 매입했는데, 당시 양재천·탄천의 유수지 역할을 하고 있던 대치동 저지대는 가격이 저렴할 수 밖에 없었다. 정태수가 특유의 로비력을 통해 탄천제방 축조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후, 수몰지역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에 베팅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정태수의 모험은 큰 위기를 초래할 뻔 했다. 우선 1979년 완공된 은마아파트는 탄천제방 축조에도 불구하고 침수가 계속되었고, 정부의 부동산투기 억제조치로 인한 미분양으로 한보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었다. 다행히 1980년 1월 제2차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유가·환율이 급등하자, 미분양분들이 채 1달도 안되어 완판되었다. 현재 강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파트인 은마아파트·타워팰리스는 준공 당시에는 미분양으로 사업주체의 애간장을 태웠었다. 하지만 시장참가자들의 외면을 받는 와중에도 미래가치를 정확히 내다 본 소비자(일각에 따르면 투기꾼)들이 있었다는 부분은 부동산시장에서 자주 회자되는 일화로 남아있다.

 

오랜 시간 주목받지 못했던 탄천은 지난 50년간 국내의 여타 물줄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인프라를 갖추게 되었고, 앞으로 발전해 나갈 예정이다. 한 마디로 서울 동남권역의 젖줄이라고 할 만하다. 남쪽에서부터 1990년대 초반 조성된 분당신도시, 2000년대 후반 조성된 판교신도시, 2010년대 중반 조성된 위례신도시·문정법조단지, 그리고 현재 탄천 주변에는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국제교류복합지구(종합운동장-코엑스), 수서·복정 역세권 개발이 진행 중이다. 탄천에서 저승사자에게 체포된 동방삭의 오랜 수명만큼이나, 탄천과 그 인근의 지역들이 오랜 세월 영광을 누릴 수 있을런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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