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1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상업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영업정지(사실상 파산) 명령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SVB는 2022년 말일 기준 약 209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인데, 지난 3월 8일 자금 확보 목적으로 매각한 국채에서 대규모 손실이 났다는 발표를 한 뒤 얼마 안가서 문을 닫게 되었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신규법인을 설립하여 SVB의 예금 등을 모두 옮겼다고 한다. 모회사 SVB 금융그룹의 주가는 80% 이상 하락했고 결국 뱅크런(대량예금인출) 사태에 직면했으며, 그 후폭풍으로 미국 4대 은행의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약 520억 달러가 증발했다.이번 영업정지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 무너진 워싱턴뮤추얼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은행 영업정지라고 하는데, 향후 은행 영업정지가 미칠 영향들을 과거 워싱턴뮤추얼 사례와 한국 저축은행 사태를 통해 알아보자.
연준(FED) 금리인상의 여파
SVB 영업정지의 배경에는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내놓은 FED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으로 촉발된 불안·혼란이 있었다. 최근 금리인상은 스타트업(SVB 주고객)의 기업공개(IPO)시장을 위축시키면서 자금조달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스타트업들은 경영자금 마련을 위해 SVB에서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고, 결국 SVB의 자본부족이 드러났다. SVB는 자본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며 매도가능한 보유채권을 매각하는 것은 물론, 보유주식과 회사자체를 매각하는 것까지 고려하게 된다. 이 소식은 바이럴(viral)로 이어지면서 뱅크런을 가속화시켰고 주가폭락으로 이어지며 결국 금융당국이 개입하였다. 이번 SVB 사태의 여파로 스타트업들은 예금지급불능에 빠지며 자금조달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데, 이미 금리인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기술업계는 더 깊은 불안에 직면할 수 있다.
대형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파산
2008년 9월 25일, 미국 감독당국은 워싱턴뮤추얼(WaMu, Washington Mutual)의 영업을 중단시키고 FDIC의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주택시장은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며 거품을 형성하였고, 이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서는 신용도가 낮은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모기지대출(SML, Subprime Mortgage Loan)을 발행하고 있었다. WaMu는 SML시장에서 많은 대출을 진행하면서 큰 성장을 이루어 냈으나, 이러한 대출채권들은 기본적으로 높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SML과 더불어 금융시장 전반에서 많은 문제들이 드러났다. 결국 WaMu는 큰 부도 위기를 맞이하며, FDIC 개입으로 대형 상업은행 JP모건체이스에게 대부분 자산이 인수되면서 하면서 파산한다. WaMu의 파산과 함께 진행된 대규모 자산평가손실은 많은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야기했다.
위싱턴뮤추얼 파산의 파장
2008년 9월 영업정지 당시 WaMu의 자산은 약 3070억 달러로, 이는 당시 미국 은행 중 6번째로 큰 규모였다. 대형 은행의 파산은 경제적으로 큰 영향들을 일으키게 된다.
파장 1) 금융시장 내 신용위험 확대
금융시장은 2008년 당시 주택시장의 버블과 SML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고, WaMu의 파산은 이러한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투자은행(IB)들처럼 WaMu도 구조화금융상품을 많이 발행했었기 때문에, 파산으로 인한 구조화금융의 신용위험이 금융시장의 혼란을 가속화시켰다. 구조화는 단순현상을 단계화·체계화·고도화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구조화 금융(structured finance)은 특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존의 단순구조로 된 금융(자금 조달·운영)을 특수한 방법(파생상품·유동화·증권화)을 사용하여 단계화·체계화하여 고도화된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대규모의 은행 중 하나였던 WaMu의 파산은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를 대폭 축소시켰고, 이는 미국 내의 다른 은행들에 대한 불안을 조성하면서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파장 2) 실물경제 침체
WaMu의 파산은 미국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WaMu는 미국 중소기업·개인들에게 대출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출이 줄어들면서 경제활동이 저하되었다. 그리고 WaMu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하는 은행으로, 그 파산은 미국의 주택시장에 큰 타격을 주면서 많은 주택들이 경매로 강제출회되었다. WaMu의 파산은 미국의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당시 타은행들도 위험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금융시장은 대량매도·하락세로 이어졌다. 그리고 미국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세금도 피해를 입으면서 재정정책의 경기부양 기회가 축소되었다.
뱅크런 제대로 보여준, 한국의 저축은행들
2011년 많은 상호저축은행이 영업정지 명령을 받게 되는데, 이는 2000년대 초중반에 본업인 서민대출 시장 대신에 부동산PF 시장에 주력한 것이 원인이었다. 2005년부터 저축은행의 부동산PF가 집중적으로 실행되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부동산경기가 침체되면서 PF대출 부실이 발생했다. 사실 당시 부동산PF대출는 규제가 느슨하여, 몇몇 공격적인 저축은행들은 제대로 된 사업성 검토도 없이 토지대금의 계약금을 무담보대출로 실행하기도 하였다. 현재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거론되는 이전 글 <금리와 인플레에 무너진 다리, 브릿지론>에서의 브릿지론의 경우에는 시행사가 금융기관에 따라 토지대금의 계약금과 중도금 일부를 자기자본으로 투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2008년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부동산PF구조가 규제화·선진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1월 14일 삼화상호저축은행이 뱅크런으로 인한 영업정지로 무너지기 시작하자, 불안감이 증폭된 저축은행 예금자들이 저축은행들로 달려가면서 뱅크런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였다. 뱅크런이 발생하면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본은 급격히 줄어들게 되면 BIS비율이 급격히 낮아지는데, BIS비율이 금융당국이 지정해 놓은 영업정지 기준인 5% 미만으로 떨어지게 되면 영업정지 명령으로 이어지게 된다. BIS비율은 국제결제은행에서 정한 은행의 자기자본비율로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저축은행 사태, 10만 명의 피해자와 27조 원 공적자금
2011년 2월 17일 부산저축은행이 금융위원회로 부터 영업정지 명령을 받으면서, 부산2저축은행 해운대지점에 뱅크런이 발생하였다. 정부가 원금을 보장하는 5000만 원 이하 예금자까지 인출을 요구하면서, 고객 예금의 대부분을 부실대출에 실행한 저축은행들은 대량 인출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삼화상호저축은행에서 시작하여 국내 최대인 부산저축은행그룹에서 점화된 뱅크런는 이후 정상영업 중인 90여 개 저축은행으로 전이 되었는데, 이 중 저축은행 24개가 영업이 정지되었다고 한다. 약 10만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예금보험공사는 공적자금 27조원를 긴급투입하였으니, 이는 저축은행사태라 불리며 대형 금융비리 수사로 이어졌다.
은행은 예금, 대출 및 자산관리의 역할을 하면서 경제 발전과 안정에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다. 이런 은행이 경영 위기에 빠지게 되면 금융시장에서 전반적인 신용 위기가 발생하게 되고, 점차 실물경제로 위기가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들이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개선하고 있지만, FED의 금리인상이 초래할 여러 결과들의 시작이란 점에서 이번 SVB의 파산이 어떤 경로로 영향은 미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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